여전히 빛나는 우리들의
"여러분~!"
활기차고 익숙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다. 우리들의 분위기 메이커 Y가 MC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오늘 이렇게, 랜선 신년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 우리들의 랜선 신년회가 있는 날이다.
"자, 지금부터는 순서대로 근황 토크를 해볼 건데요. 질문을 뽑아 답변해주세요!"
새로움 부문. 2020 나의 가장 큰 변화는?
기대감 부문. 올해 이루고 싶은 한 가지
아쉬움 부문. 소소하게 아쉬웠던 것
영업력 부문. 2020 FLEX : 가장 잘 산 물건
등등.
언제 이런 것을 다 준비한 건지, 정성이 가득한 프레젠테이션 화면과 함께 질문에 맞추어 각자의 근황을 공유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날처럼 다소 어색해하던 것도 잠시, 모니터 너머로 사랑스러운 호응들이 오고 가며 공간의 온도가 차츰차츰 올라갔다. 승진을 했다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에는 다 같이 우와아, 일이 너무 바쁘다는 이야기에는 으아아, 자녀분의 특별출연에는 귀여워! 를 남발하는 우리들. 모니터 안은 한겨울의 추위에도 절대 시들지 않는 싱그러움으로 가득 찼다. 꼭 우리들이 처음 만났던 그 계절처럼.
2년 전 봄이 막 시작하던 때에 만난 우리들은 그해 여름의 막바지까지 함께 했다. 대외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매달 미션을 받고, 그 미션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갔다. 경쟁 속에 있었지만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그냥 함께 무언가를 같이 알아가고 배워가는, 어떤 공동체라는 생각으로 그 시간들을 보냈다. 마침 인원도 서른 명 남짓에다, 담당하는 멘토님들이 있으니 나는 우리들이 꼭 고등학교의 한 학급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뭔가 아주 나이가 들어서도 매년 동창회를 열 것만 같은, 그런 친한 학급.
재작년에는 종종 모여 모임을 가지곤 했던 우리가 작년부터는 코로나로 인해 모임도 못 가지게 되었다. 그게 늘 아쉽다고 생각하던 차에, 추진력 있는 친구들이 나서서 올해는 랜선 신년회라는 행사를 기획해주었다. 먼발치서 마냥 보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질 정도로, 친구들은 맨 앞에 서서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들어오라고. 나는 때때로 그 용감한 다정함에 감탄하곤 한다.
그렇게 여덟 시에 열린 문은 열한 시가 훌쩍 지나서야 닫혔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잠시 동안 즐거운 게임을 진행하다, 다시 못다 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 즈음에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그 고민에 대해 함께 생각해주는 시간도 가졌다. 취업에 대한 고민에 선뜻 도와주겠다 말하는 우리들, 진로 방향성에 대한 고민에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이야기해주는 우리들,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해 아낌없이 축하와 응원을 보내는 우리들, 그런 우리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참 내 인생의 행운 같은 만남들이라고 말이다.
살아가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게 서로 당연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싶다. 그 고생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 고생이 귀함을 알아서. 그래서 서로 도우려 애쓰는 관계가 있다는 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겨주는 게 때때로는 이토록 감동스러울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늘에서야 알아차렸다.
오늘 밤 내 모니터 화면은 무척 밝았다. 화면 밝기를 최대한으로 높여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이 빛나서 말이다. 나는 우리들의 빛이 영영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어디서든 지금처럼 환하게 반짝거렸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사실, 이런 바람은 조금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주위의 모든 것들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당신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