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았다. 아기 때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엄마 품에서 떼어놓기만 하면 엉엉 우는 통에 친척집에 가든 어딜 가든 항상 엄마가 안고 있어야 했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눈물바람이었던 것 같다. 먹고 싶은 걸 못 먹어서, 사고 싶은 걸 사지 못해서, 형제들이랑 싸워서, 친구들이랑 다퉈서, 엄마, 아빠한테 혼이 나서. 나는 슬플 때는 물론이고, 서러울 때, 화가 날 때, 짜증 날 때, 아플 때, 놀랄 때 등등 수많은 상황에서 뻑하면 눈물을 보이곤 했다.
나는 특히 밥상머리 앞에서 자주 울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어이구, 또 운다, 또.'라고 하며 따뜻한 손으로 쓱쓱 눈물을 닦아주곤 했다. 아빠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울면 아빠가 바보라고 했지.'라고 말하며 혼을 냈다. 그럼 난 서러워서 더 끅끅 울어재꼈다. 그러다 진정하고 나면 아빠가 머쓱한 목소리로 '울보야, 울보.'하고 웃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그날도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서울에 올라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처음 꺼낸 날이었다. 며칠간 씩씩하게 말해야지, 하고 충분히 마음의 준비까지 마쳤음에도, 입을 떼는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왜 울었는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아마 엄마 아빠로부터 안 된다는 대답을 들을까 겁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날 부모님은 날 평소처럼 달래주지도, 혼을 내지도 않았다. 그냥 막 웃었다. 이렇게 울보인데 가서 어떡하려고 그래.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눈물의 힘이었는지, 나는 초등학교 졸업을 한 직후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꿈에 그렸던 서울살이였지만 겨우 중학생이 된 내게 타지에서의 생활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난생처음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해나가야 했다.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던 탓에 어린 나는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마저도 같은 침대를 쓰는 언니한테 들킬까 봐 소리를 꾹 참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는 내가 우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아는 척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자는 척했단다. 대신에 날 더 챙겨주려고 애썼던 언니의 노력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일찍 서울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라는 이름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눈물을 참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또박또박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남들 앞에서 철없는 어린애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어른스러운 나'를 흉내내기 위해, 더 이상 울보여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울어선 안 되는 상황에 눈물이 차오를 때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잠깐 심호흡을 크게 하거나, 웃긴 상상을 했다. '울지 마'를 속으로 수백 번 외쳤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터지는 날에는 스스로가 미워졌다. 고작 눈물 하나도 못 참는 한심한 나,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대학에 들어온 후부터는 제법 눈물과 먼 사이가 되었다. 2년 간 동고동락했던 동아리 활동을 마칠 때나, 몇 달 고생해 만든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던 날, 혹은 몸이 너무나도 아팠던, 그런 몇몇 날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울 일도 없었다. 더 이상 어디 가서 '울보'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고, 나 스스로도 이제는 어떤 일에도 울지 않는, 무덤덤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은 마음 한 구석이 너무도 불편했다. 특별히 슬프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고, 놀랍거나 불안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안절부절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이상하지, 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니 답답함만 커져갔다. 그날은 축 처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빨리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 누워있던 나는 플레이리스트를 뒤져 고등학교 때 듣던 노래를 찾아들었다. 공부를 하다가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들었던 노래였다. 놀랍게도 익숙한 가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어릴 때처럼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걱정 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 안고 있단다 나는 안단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아주 조금씩 넌 나아가고 있단다
특별히 눈물이 날 이유도, 울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지만 나는 그날 머리가 아프도록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한바탕 비워낸 후에는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유 모를 불안감도 어느덧 가신 후였다.
* * *
나는 그날 생각했다.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것들을 눈물로써 밖으로 내보낸 것이라고 말이다. 바닥까지 싹싹 긁고 나니 더 이상 무겁게 가라앉을 것도 없는 것이라고.
이후로는,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것을 조금 줄였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는 되도록 울지 않으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만큼은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고, 그날 하루 내 감정을 되돌아보면서 울었다. 그럼 무거웠던 마음도 서서히 가벼워졌다. 가족들은 또 나를 '울보'라고 놀렸지만, 이제는 새빨간 눈으로 웃으며 받아칠 수 있을 만큼 나는 의연해졌다. 눈물에 당당해졌다.
그렇게, 쏟아지는 것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감은 눈 너머로 밤하늘을 가르고, 나의 소원과 슬픔을 껴안고 떨어지는 이토록 수많은 별빛을. 언젠가 꿈 많던 아이가 속삭인, 두 팔 가득 안아도 삐져나와 발끝에 흩어지던 말들을, 그저 가만히 들어주기로 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혹은 어른이 된 후에 흘리는 눈물들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날의 내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슬프거나 힘든 마음, 분하고 억울한 마음, 감동적이거나 행복한 마음 무엇이든지, 눈밖으로 한가득 쏟아내도 괜찮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그 눈에서 떨어지는 것은 꼭 밤하늘의 유성우처럼, 반짝이고 따뜻함을, 또 아름답고 소중함을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유성우를 바라보면서 두 손 모아 기도할 것이다. 유성우가 내리는 날, 당신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당신의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 이 글은2018 서울시 지하철시 공모전에 당선된 제 창작시를 에세이 형식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