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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Mar 13. 2019

한국이냐 독일이냐

내가 살고 싶은 곳

"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혹은 "한국에 돌아올 계획은 없으세요?"는

독일에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중 하나이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여기에 확실하고도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독일에 있고 싶다가도 한국에 가고 싶고, 한국에 가고 싶다가도 독일에 있고 싶었다. 그렇게 독일 생활에 대한 애증이 점점 쌓여갈 무렵 보내게 된 6개월의 한국과 독일 밖에서의 시간은 마침내 내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져다 주었다.


마지막 여정지인 시칠리아에서 나는 사실 또 다른 미지의 장소로 갈 수도 있었다. 백수이기에 시간이 있었고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만 빨고 살지는 않아도 되는 돈도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 곳이 아닌 독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이유는 "이제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경우 집은 독일, 그 중에서도 내가 애정하지 마다않는 도시인 하노버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한국이냐 독일이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감정을 가져다 주고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는 곳,
또 무엇보다 내가 원하고 선택해서 살 수 있는 곳 

그 곳이 내가 돌아갈 곳, 살아야 할 곳이었다. 


내가 밖을 여행하며 종종 그리워했던 것은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라기보다는 내가 독일에 마음을 둔 장소, 그 곳의 사람들, 삶의 편안함 그런 것들이었다. 또 덧붙이자면 나는 정말이지 독일식 아침 식사(특히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빵집 고소한 호박씨나 양귀비씨 빵에 크림치즈와 바나나를 올려 커피와 함께 하는 아침)가 그리웠다


이렇듯 독일로 돌아와 계속 살고 있는 이유는 <한국 vs 독일>의 문제를 떠난 것이었다. 이 곳이 파라다이스여가 절대 아닌 것이다. 고군분투는 꾸준히 있어왔고 앞으로 더 이상 없을거란 보장은 없다. 실례로,


1. 아 이제 독일을 다 알겠구나 싶다가도 종종 뒷통수를 가격하는 문화 충격을 먹을 때도 있고,

2. 평생을 배워도 어려울 것 같은 독일어와 늘 씨름을 하며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고,

3.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높은 세금으로 인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나라도 아니며,

4.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한국의 다양한 팔도 진미를 그리워 해야 하고,

5.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려면 1년에 한 번 15000km를 날아가야 하며,

6. 급한 성격의 내가 독일의 느림을 이해하기까지도 참 많은 시간이 걸렸을 뿐더러 (그렇다고 그걸 완전히 이해했단 소리는 또 아니다. 2월 초에 계약한 새 인터넷이 3월 초인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7. 한숨이 절로 나오는 독일 가을, 겨울의 날씨는 앞으로 계속 살게 되어도 적응이 될런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독일에서 사는 이유는 

1. 다양함을 인정하니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고,

2. 실수가 있다 할지라도 독일어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 없어졌으며, 

3. 높은 세금에도 불구하고 적은 월급은 아니기에 딱히 부족함 없이 살 수 있고,

4. 퀄리티의 차이는 있겠지만 요새는 아시안 마켓에서 웬만한 한국 재료를 살 수 있어 집에서 요리를 해 먹으면 될 뿐더러, 독일의 저렴한 식료품은 더 다양한 나라의 요리들을 부담 없이 해 보는 재미를 선사해 주기도 한다. 한국이면 비싸서 혀를 내두를 유기농 식재료도 독일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5. 한국의 사람들이 그리운 건 사실이지만 이 곳에도 따뜻하게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있으며,

6. 느긋하게 사는 삶의 여유를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고,

7. 며칠 째 계속 되던 비가 그친 후 찬란하게 반짝이는 해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만약 이 곳에 못 참을 정도로 이골이 난다면 내 의지로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다음 종착지가 한국이 될 지, 동남아가 될 지, 남미가 될 지, 아니면 또 다시 독일이 될 지 누가 알 일인가. 


나의 요가 선생님 S는 샌프란시스코와 파리 등에 오래 살다가 해를 좇아 발리에 쉰이 넘어서 정착하신 케이스이고, 피렌체에서 함께 지냈던 그 곳 토박이 S는 사시사철 넘쳐 나는 관광객 때문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하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그녀에게 "I love this city so much"를 얼마나 자주 들었는가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계속해 그 곳에 살 거라는 그녀의 단언(?)이 놀라울 일도 아니다.




내가 애정을 느끼고 선택해서 사는 곳.

그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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