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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Feb 24. 2020

혼자서도 잘 먹고 있습니다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게 부끄럽고 쑥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시간표가 맞지 않아 식사시간이 묘하게 어긋날 때면 밥을 혼자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 어느 것보다도 부끄럽고 무섭 느껴곤 했었다.


결국 고픔을 참다 참다 더 이상 식사 건너뛰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나는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도서관 휴게실 구석에 앉아 숨어서(?) 먹기도 했고 그것도 자신이 없을 때면 빈 강의실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혼자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웠보다는 내가 혼자 먹는다는 사실을 내가 아는 그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해서 나에게 익숙해진 것이 있다면 하나는 운전고 또 다른 하나는 혼밥이었다.


외근업무가 잦은 업무의 특성상 차를 운전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회사 밖에서 점심시간을 맞이할 때가 많다.


처음 몇 번은 답답한 차 안에서 빵이나 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곤 했었지만 매번 그러는 것도 무리가 있었기에 점차 나는 난이도 낮은 단계의 혼밥을 시작으로 점점 혼자서 먹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왁자지껄 무리를 지어 상대방의 속도에 맞출 필요 없이 그날의 메뉴부터 먹는 속도까지 내가 선택할  있는 혼밥은 비교적 혼밥 행렬이 많은 패스트푸드점을 시작으로 대형마트의 푸드코트 합석이 가능한 분식을 거쳐 다양한 메뉴와 장소들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새 학창 시절 느꼈었던 혼자 먹는다는 대한 부끄러움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한 끼 정도는 혼자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원들과 함께 하는 식사서 혼밥이라는 것을 최근 들어 더 간절히 갈망하게 된 것은 회사에 대한 마음이 떠난 데에도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회사 돌아가는 꼴(?)은 전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한 험담을 나누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바꿀 의지도 거의 없는 상황 속에서 바뀔 가능성도 없는 얘기를 하고 있자니 그저 을 다물고 듣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정을 떼어버린 나에게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오히려 식사시간 내내 한 번도 본적 없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대한 스포를 늘어놓거나 아님 팔불출 같은 자식 자랑을 늘어놓 것이었다면 이 정도까지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 이유 없는 승진 누락이라는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는 내 앞에서 옛날에는 회사가 안 그랬네 그 직원이 나쁜 놈이네 하는 식의 뒷담화성 대화들은 나에게는 그다지 공감 가지 않을뿐더라 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기보다는 입가가 씁쓸해지는 것이 대다수였다.






며칠 전부 업무가 바빠진 나는 다시 외근을 다니기 시작했고 외근지 근처의 식당들에서 혼밥을 하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른 후 주문한 메뉴를 찾아 테이블에 앉으면 괜스레 차가워진 몸과 마음이 녹는 듯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비록 식당 안에서는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수다를 떨며 즐겁게 식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상대방과의 수다가 없는 나의 식사시간 또한 그에 못지않게 즐겁기는 마찬가지이다.


"최대리 식사는 하고 왔어?"


외근을 마치고 들어온 나를 향해 팀장님이 가끔 묻곤 하신다.

형식적인 그 물음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겠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도 혼자서도 잘 챙겨 먹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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