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대리 May 03. 2020

나의 퇴사일을 결정했다


"전화 좀 해줘."


깜빡거리며 떠오른 회사 메신저 창으로 인사총무부장인 H팀장님의 메시지가 보였다.


몇 번 브런치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회사 안에서 친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분이기에 웬일인가 싶 서둘러 그분의 사내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그러자 그분의 음성이 들리고 내가 전화했음을 밝히자 그제야 편안해진 말투로 투덜거다.



"야, 넌 내가 전화 안 하면 네가 먼저 전화 안 하더라.

그냥 전화했다. 어떻게 지내는가 싶어서.."


같은 회사 안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연초 잠시 메신저를 통해  얘기를 나 것을 제외하고는 그분에게 업무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먼저 연락을 건넨 적은 없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업무가 바쁘기도 했고 그런 핑계가 아니더라도 굳이 말을 걸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다.



"바쁘긴.. 너만 바쁘냐?!

요즘 회사 사람들 다 바쁘지."


바빠서 그랬다는 핑계 섞인 대답에 팀장님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그냥 웃어넘길 일이었을 텐데 괜스레 그 말이 가슴속에 콕 박히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참 동안 대답을 잇지 못하는 나의 이름을 몇 번 부르시던 팀장님의 음성에 가까스로 대답을 하자 그제야 그분이 대화를 이어나가신다.



"야, 그냥 궁금해서 전화했어.

너랑 내가 그 정도도 못할사이냐.

그리고 너 여기 안 올래? 너 같은 인재가 와야지 누가 오냐."


팀장님의 농담 섞인 제안에 내가 냉소 섞인 말투로 대답다.


"거긴 인싸만 가는 데잖아요.

저 같은 쩌리가 거길 어떻게 가요.

저 같은 아싸는 그런 회사의 핵심부서에서 일 못해요."


나의 자조 섞인 농담에 팀장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신다.


"야, 네가 무슨 쩌리냐.

그리고 너도 변했냐?!

여기에 대해서 다른 팀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얘기한다.

아무튼 난 네가 여기 와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는데...

생각 있음 얘기하라고."






"그냥 간다고 하지 그랬어.

거기 가면 어찌 되었든 다음번 승진은 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어?!"


인사팀장님과 나눈 대화를 김대리에게 얘기하자 김대리가 대뜸 가보라며 나를 부추겼다.


"싫어. 가봤자 뭐하겠어."


"은근히 똥고집이야.

그래도 나름 친하다고 챙겨준 건데..

그냥 눈 딱 한번 감고 가서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해."


김대리는 그래도 인사팀에 가면 승진할 확률이 높아지는 게 요즘 우리 회사의 트렌드 아니냐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나를 나무랐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나의 대답에 그런 나의 똥고집이 이해가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거기서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견딜 자신이 없어..

여기 팀에서도 다른 어느 팀보다도 상식적이고 좋은 팀원들로 이루어졌는데도 회사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견디기가 힘들 때가 있는데..


거기 가면 더 많은 사람들을 마주쳐야 하잖아.

그런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속으로는 싫으면서 겉으로는 웃으며 좋은 사람인 것처럼 못할 것 같아.


거기 가면.. 내가 이곳에서 버틸시간이 더 짧아질 것만 같아.."





주말이었던 어제저녁,

괜스레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커피 한잔을 사러 간다는 핑계로 집 밖을 나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편의점과 카페가 즐비한 길거리로 들어서자 우리 회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간판이 달려있는 창가 안으로 환히 불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후배가 주말이었음에도 출근을 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많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평일 저녁에도 늦게까지 야근 하고 있는데 주말 저녁까지 출근하여 업무를 하고 있을 후배의 모습을 떠올리며 격려 섞인 응원은커녕 괜한 한숨이 밀려 나왔다.



"힘들지 않아??

맨날 야근에 거기다 민원인들도 힘들게 하는데.."


이제 입사한 지 일 년 반이 다 되어가는 후배에게 묻자 그 후배는 씨익 웃으며 사람들이 힘들게 할 때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일이 재밌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배를 보며 나도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일이 힘들었던 때도 있었고 그 후배처럼 재밌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누군가의 칭찬이 그 어느 것 보다도 값졌던 적도 있었고 주말근무야근을 견디는 순간이 당연하게 느껴졌던 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들을 견디게 했던 건 나에게는 그만큼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노력한 걸 알아줄 거라는 기대.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나도 그들이 그랬듯 이렇게 버티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런 기대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고 나를 뽑아준 회사의 존재가 감사하기까지 했다.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의 지시 민원인들의 날카로운 말들 오랜 시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자 나는 무언가를 도둑맞은 사람처럼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깝게만 느껴졌고 그런 나의 오랜 존버의 시간들이 눈물 나게 서글퍼졌다.


 

커피를 사 오겠다고 밖으로 나서기 전 나는 내 휴대전화 캘린더에 나의 퇴사일을 표시했다.



2024년 3월 7일.


40세까지만 이곳에서 일하고 그 이후부터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기대가 무너진 그 순간부터 나는 계속해서 해왔었다.


생일이 12월인 내가 40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두 번의 성과급 보너스가 주어지는 12월과 2월을 감안하여 퇴직금이 가장 두둑할지도 모르는 3월.

그리고 그 3월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키 세븐의 숫자가 들어있는 7일.


물론 그때가 돼서도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사정 생겨 다시 존버의 기능을 작동시켜야 할지도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내 마음이 달라져 이 모든 것들이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만 그날 난 나 스스로에게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 근무의 계약기간을 정해버렸다.


그리고 그 계약의 종료일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해나가며 회사 밖의 삶을 준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아니 내가 정한 퇴사일이 다가왔을 때 이곳에 그때 이렇게 결심하길 잘했다고 그때가 나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스스로를 뿌듯하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쩜.. 잘났다는 소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