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기 Sep 08. 2021

우리 집이 없다│꿈을 꾼다

Episode 5. 작아도 단독이면 좋겠다. 빌라라도 괜찮아

집을 보기 시작했다고 사실 바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아니다. 내가 달라졌다. 내 마음속 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는 것이 수시로 느껴진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나만의 집을 고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집을 고르게 될까. 즐거운 상상들을 하게 된다. 


햇빛이 가득 찬 거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루 종일 밝은 남향이면 좋겠고, 그 밝은 기운을 가득 담을 수 있는 엄청 큰 창이 있는 거실이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은 옛날 구조로, 거실과 부엌 창문을 열면 앞 뒤로 환기가 팡팡 잘 되는 집이면 좋겠다. 


마당이 작게나마 있다면 좋겠다. 옥상이 있어도 좋겠다. 흙이 있고, 무엇인가를 심을 수 있는 땅이 있는, 그런. 더운 여름날에는 작은 수영장도 놓을 것이다. 작더라도 단독 주택이면 정말 좋겠다. 단독 주택이 아니라면, 개인 테라스나 옥상이 빌라라도 괜찮을 것 같다. 


부엌이라고 해야 할까, 다이닝룸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이건 그냥 엄청 크면 좋겠다. 세네 명이 동시에 무엇인가를 해도 부족하지 않게 넓은 조리대가 있는 부엌. 10인용 테이블을 놓아도 좁지 않은 전용 다이닝 공간이 있는 그런 주방을 갖고 싶다.


두툼한 마룻바닥이면 좋겠다. 은은한 갈색의. 맨 몸으로 누워도 따스함이 느껴지도록. 오래된 집의 오래된 마루라면 삐걱삐걱 소리도 날 수 있겠다. 어디에서나 소리가 난다면 고쳐야겠지만, 만약 혹시나 약 한 평정도, 어느 한 부부만 그렇다면 그냥 그런대로 좋을 것 같다. 고치지 않고, 비밀 공간처럼 나만 밟아야지. 그리고 바닥을 뺀 집의 나머지 모든 부분은 하얀색이면 좋겠다.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대로 걸어도 어색하지 않고, 어느 순간 어떤 색과 사람들로 채워도 불편하지 않게.


화장실에 욕조가 크면 좋겠다. 이왕이면 욕조 옆에 따스한 햇살이 잘 들어오는 창문도 있었으면 좋겠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겨울에는 겨울대로 계절의 변화를 보며 따끈한 물에 내 몸을 녹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동네였으면 좋겠다. 따뜻한 동네라는 것은 참 주관적일 텐데, 나한테는 연희동이나 경복궁 근처가 유독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많지만 정신없지는 않고, 활기차게 느껴지는 동네. 동네 슈퍼가 말 그대로 '동네슈퍼'로 남아 있는 곳들. 그런 곳에 살고 싶다.  


걸어서 5분 거리 내에 맛있는 빵집과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 지친 어느 날, 빵집에 들러 좋아하는 빵을 사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기에 꼭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꿈꾸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즐겁다. 좋아하는 것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여러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그리고 근거 없는 용기와 희망들이 차오른다. 때로는 현실보다 꿈이라서 차라리 좋기도 하다. 내가 정말로 집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아마도 다른 것들을 택해야 할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보다 역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큰 부엌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등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비교하겠지. 그런 현실을 상상하는 것 자체도 그것대로 즐겁지만, 역시나 꿈꾸는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아니다.


각자 모두가 꿈꾸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 매주 수요일마다 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지난주는 현생에 치여 한 주 건너뛰었습니다. 핑계입니다. 현실에서는 계약까지 끝냈고 이것저것 준비 중인데, 이곳에서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습니다. 조금 더 부지런히 현실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궁금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집이 없다│집은 생각보다 많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