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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Sep 23. 2021

우리 집이 없다│운명적 만남① 아쉽게도 내 집은 아니다

Episode 6. 71년도에 지어진50년 된단독주택

그날도 집을 보던,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아, 헤매고 있는 우리를 위해 아빠가 도와주기 위해 같이 집을 보던 조금은 달랐던 날일 수도 있겠다.


아빠까지 합류해 하루 종일 집을 보고 배가 고파서 집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별 다른 소득 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걷던 중 갑자기 남편이 한 부동산 창문에 붙어있던 '단독주택 급매'라는 매물 소개를 읽었다. 나는 '단독주택'이라는 단어에 순간 혹했으나, 이미 완전히 소진한 체력으로 인해 모든 것이 귀찮았다. "그냥 얼른 가자."라고 했다. 제일 앞장서서 걸어가던 아빠는 갑자기 뒤돌아서서 "그래도 한 번 보자." 하고는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부동산에 들어가서 사장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익숙한 얼굴에 놀랐다. 그리고 매물로 나온 집을 보자마자 다시 한번 놀랐다. 


나는 원래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프로 의미부여러랄까. 어쨌든 갖다 붙이기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면-


작년 전세 대란 당시 집을 한창 보러 다니던 (그 당시 결국은 집 구하는 것을 포기했지만)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마음에 들어 얼른 예약하고 갔는데, 막상 갔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땅의 방향이 달랐다. 내가 지도상으로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집은 그 당시 나온 집의 옆집이었다. 당시 주인분은 그 집을 팔 생각이 없다고 하셨고, 판다고 하셔도 더 큰 땅이라 훨씬 큰 금액일 것이라 아쉬워만 했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 집이 바로 그 집이었다. 그래서 사장님 얼굴을 보자마자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놀랐고, 그 기억에 설마 했는데 막상 집에 가보니 정말로 그 집이라서 다시 한번 또 놀랐다.


그렇게 서로를 기억한 사장님과 우리는 한참 신나게 수다를 떨며 집을 봤다. 그 사이 사장님의 명함을 받은 아빠는 핸드폰을 보더니 '어?'하고 놀랐다. 알고 보니 작년에 아빠가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서 보러 오던 길에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움을 달랬던, 그 매물을 갖고 있던 바로 그 사장님이었다. 당시 아빠는 사장님에 대한 (얼굴도 모르지만) 긍정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사장님의 솔직함 때문이었다. 집을 자주 보던 아빠는 과거에 보려던 매물이 나가더라도 부동산에서 다른 매물 소개 등을 위해 그 사실을 숨기고 우선 보여주거나, 다른 매물을 어영부영 소개해주던 경험이 많았다. 그런데 이 사장님은 아주 담백하고 솔직하게 “보시려는 집 나갔다. 비슷한 다른 매물을 소개해줄 수 있는데, 우선 알고 오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린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 부동산을 통해 집을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의미부여러인 나는 그 집이 내 운명임을 느꼈다.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던 그 길을 하필 그날 걸었다는 점, 그리고 그날 하필 아빠가 함께 집을 봐준 덕분에 상담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 보게 된 집이 1년 전에 '저 집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집이었다는 점, 아빠와도 좋은 인연이 있던 부동산 사장님의 매물이라는 점 등. 여러 가지 상황들을 근거로 가뜩이나 마음에 든 집에 다시 한번 홀딱 빠지게 되었다.


그 집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일단 그 집은 현재 우리 집에서 약 5분 거리다. 지하철 역에서도 굉장히 멀고, 버스 정류장에서도 굉장히 멀다. 투자의 관점에서는 0점 같다. 경사진 언덕에 위치해있고, 땅 모양도 정사각형이 아니고, 그래서 집도 당연히 정사각형이 아니다. 71년도 지어진 50년 된 집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수리를 굉장히 크게 해야 했다. 단순히 낡은 부분을 고치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집 값만큼 들여서 주차장도 새로 만들고, 땅부터 다시 다져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그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우선 일단 길 끝 동남향 코너에 위치해 하루 종일 햇빛이 넘칠 정도로 들어왔다. 집의 모양이 효율적이지는 않았지만, 대신 지하 창고와 옥탑방 등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있었다. 넓지는 않지만, 앞마당은 작은 수영장과 바비큐 장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다. 남들에게는 별로일 수 있겠지만, 우리는 회사와도 가까웠고, 여러모로 좋았다. 뭐 이런저런 이유를 찾지 않아도, 그냥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지고 좋았다. 


집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우리 예산을 훌쩍 초과하는 집값에 어쩔 수 없이 빠르게 포기하고 집에 왔는데, 그 집이 계속 아른거렸다. 정말로 계속 아른거렸다. 정말 계속 아른거려서 그 집을 보고 온 거의 1개월 동안 퇴근하고 매일 그 집에 가서 어슬렁거렸다. 그렇지만 그렇게 집을 보면 볼수록 내 집이 아님을 알게 됐다. 내 집이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아무리 해도 예산을 맞출 수가 없었다. 물론 집 담보 대출에 신용대출에, 부모님께 최대한 빌리고, 카드론도 당기고 여차저차 한다면 닿을 수도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전원의 여유, 흙의 즐거움을 즐기고 싶어서 마당 있는 집을 선택하고 싶은 것인데, 마당의 여유는커녕 매달 대출금을 갚기 위해 풀 야근과 주말 알바를 따로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여유 없는 생활 속에서 그 집에 살 수 있게 되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꼬박 1개월을 그 집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포기하고 좋은 주인을 만나기를 응원했다. 그리고 정말로 얼마 뒤 우리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신혼부부가 그 집을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독주택을 포기한 것은 아니고, 조금 더 돈을 모아서 지금부터 10년 내 단독주택 입주하기로 목표를 조금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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