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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08. 2022

야식을 참고 조금의 뿌듯함과 조금의 심심함을 얻었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36│2022.03.07

결혼 후 참 많이 야식을 먹었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같이 살다 보니 아무래도 야식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저녁을 늦게 먹는달까, 아니면 쿠키나 과일 정도의 가벼운 간식을 늦은 시간에 먹는 정도였다. 그런데 결혼 후 야식의 세계에 입문했다. 우선 남편은 오랜 자취 생활로 야식과 외식에 도가 튼 사람이었고, 나는 원래 먹는 것을 몹시 좋아하지만 엄마의 관리(?)로 절제 중이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 합쳐진 경제력 속에 아무런 제약 없는 밤들을 맞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정말 많이 먹었다. 나는 술도 잘 못 먹으면서 핫하다는 포장마차는 발견하는 족족 갔고, 망원동으로 이태원으로 우동이고 닭발이고 생각나면 바로 달렸다. 코로나서 발생하고 나서는 나가지는 못했지만, 밖에서 먹던 야식은 고스란히 배달되는 야식으로 이어졌다.


야식을 먹는다는 것의 장단점을 분명한 것 같다. 우선 바깥에서 먹는 야식은 맛있고(조리되어 나온 음식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점과 맛있다고 소문난 곳을 찾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고, 즐겁다. 맛있는 곳을 발견하는 재미와 늦은 밤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것의 즐거움이 쏠쏠했다. 남편과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노는 기분이었다. 다만 돈이 굉장히 많이 들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피로가 쌓여갔다. 배달로 이어진 야식도 마찬가지다. 아니다. 배달로 먹는 야식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조금 더 많다. 우선 야식을 시켜놓고 3-4시간 동안 이어지는 남편과의 수다타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바깥에서 먹는 야식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돈이 든다. 그런데 야식 자체의 만족도는 더 낮다. (나는 공간과 분위기에서 얻는 만족도 큰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배달음식은 배달 시간이 소요되고, 또 집 주변 배달이 가능한 곳에서 매일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 또한 쓰레기도 엄청 나온다. 일회용품을 빼고 배달해달라고 요청해도, 기본적으로 오는 배달 용품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게다가 바깥에서 야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정리하고 씻는 시간 없이, 배달로 야식을 먹을 때는 배불리 먹고 바로 자게 된다. 단순히 늦게 자서 쌓이는 피로와 달리 소화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점점 저질 체력이 되어갔다. 그리고 당연히 살도 쪘다. 결혼 후 1년 새 10kg가 늘었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몸무게는 계속된 야식으로 인해 3년째 빠지지 않고,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쓰다 보니 장점은 없고 단점뿐인 야식인데 왜 삼 년 동안 먹고 있었던 건가 싶다. 하지만 야식을 좀 먹어본 사람들은 알 거다. 특정 시간에 특정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과 그 야식을 함께 먹는 사람들과의 수다타임이 얼마나 즐거운지. 


하지만 올해는 단순한 즐거움보다 조금 보람된 삶을 계획하고 있다. 돈도 모으고 싶고, 몸도 건강해지고 싶다. 그리고 나의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식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식을 당장 하루아침에 끊어버리자고 하면 나 스스로 못 견딜 것임을 알기에 야식 끊기 대신 건강한 식사를 목표로 삼았다. 대충 먹더라도 집밥을 먹으려고 노력 중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땐 배달 대신 꼭 나가서 먹으려고 한다. (나가서 먹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아무래도 결국 집 밥을 먹게 된다.) 그리고 야식의 대표 메뉴들-예를 들면 닭발이라거나, 치킨이라거나, 불족발이라거나-이 정말 먹고 싶을 땐 늦은 시간 대신 저녁 식사 시간에 먹기로 했다. 하루 이틀 참고 끝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내 식습관을 바꾸고 싶기 때문에 완벽한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 대신 변화를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문득 배달 어플을 들어가 보니 마지막 주문이 2월 22일 오후 10시 닭발이다. 벌써 2주 전이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 당연히 살이 빠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집 밥을 더 챙겨 먹다 보니 식비도 줄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2주나 지났다니. 뿌듯하다. 예전에 다이어트를 시도할 때 매일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며 잠들던 것과 달리 요 근래에는 억지로 참은 기억이 별로 없어서 조금 더 뿌듯하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야식이 먹고 싶었다. 저녁으로 카레를 만들어서 맛있게 먹어서 사실 배가 고프지는 않았는데, 오랜만에 먹태를 뜯으며 남편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싶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먹태 집까지 걸어가서 포장을 해오자는 방법까지 논의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먹으면 부담될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기분도 좋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그냥 참아보기로 한다. 대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잠들었고 아침이 되었다. 결국 참아낸 것이다. 비록 어제 남편과의 수다타임은 없었다. 일찍 잠든 탓이다. 어제 일찍 잔 것 말고 뭘 했지 싶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목표는 달성했다. (이렇게 긍정적인 것을 보면 나는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나는 야식을 참았고, 조금의 뿌듯함을 얻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의 심심함도 얻었다. 참는다는 생각 대신 야식이 생각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야식을 참아냈다는 것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대신 내가 이뤄낸 것들로부터 뿌듯함을 얻고 싶다. 그리고 야식을 먹던 시간의 공백에서 심심함을 느끼는 대신 그 공백을 온전히 나의 시간들로 채워나가고 싶다. 뭐.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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