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잃어버린 시대

봤다면 행동을 하세요.

by SseuN 쓴

나는 20대와 지난 30대를 지나왔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 그때의 나에게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만약 타임머신이라도 개발이 된다면 나는 내가 쓴 이 글들을 꼭 그때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삶이 고단했던 부모님은 마음 편히 통닭 한 마리를 먹을 시간도 없었다. 늘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시는 부모님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없으셨다. 심지어 맏이인 나는 형이나 누나가 없었고, 사촌들 중에서도 특별히 이야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이제 20대 시절 그때의 나와 공부했던(제자) 애들이(?) 30대에 접어드는 때가 되었다. 그런 아이들과 연락이 닿으면서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면 문득 나는 정말로 스승이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빠진다. 나의 경우 대학원 졸업을 하고 우연한 기회에 학교라는 곳에 들어와 교편을 잡게 되었다. 부족함이 많았던 치기 어린 그 시절의 나의 제자들에겐 나는 어떤 선생이었을까?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무렵에는 고등학교를 찾아가지 못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고등학교에 스승을 찾아간다는 것보다 고등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려웠을 때였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의 은사님을 찾아뵙거나, 교회에서 나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을 찾아뵙는 일이 많았다. 중학교 선생님들은 학교를 옮기시면서 많은 제자를 만나셨겠지만 내가 갈 때마다, 알아봐 주시고 반가워해 주셨다. 물론 교회 선생님도 마찬가지였고. 그럼 우리는 살아온 이야기, 사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하며 짧은 시간을 함께 한다.


생각을 해보면 단어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스승'이라는 단어는 '선생님'과는 살짝 다른 것 같다. 선생님은 일단 교육의 목적으로 학생들을 훈육과 지도를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다른 제자들을 받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학습에 관련된 지식을 전달하고, 학습시키는 일을 주로 한다. 반면 스승은 나의 일생에 많은 부분에서 나와 함께 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단어인 스승은 요즘 자주 쓰이는 멘토라는 단어로 대신할 수 있겠다. 일생을 거쳐 삶의 방향을 주고,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니 같은 뜻으로 보면 된다.


요즘 방송과 출판계에서 인기 높은 강사인 그녀는 자타공인 40대들의 멘토라고 불리며, 삶의 위로와 인생의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다시 그중에서 새로운 멘토가 생겨나고 있는 선 순환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그녀를 우리는 멘토라고 부른다.


12년이나 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만나는 선생님은 100명이 넘고, 다양한 성향의 선생님을 만나왔다. 그 선생님들의 가르침으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선생님은 참 대단한 분들이지만, 모든 스승의 모습을 본받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중,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선생님들이 교과를 가르치는 분들로 많아지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일생을 닮아서 배울 수 있는 경우는 극기 드물어졌다. 더군다나 요즘은 개인 정보나 사생활이 조금 더 보호받고 있던 터라, 진짜 일생을 따라 배워보고 싶은 사람을 찾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힘들어졌다. 그래서 시선은 학교 밖으로 미치게 되고, 더욱 미디어에 노출된 사람을 모방하거나 따라 하는 것이 편한 일이 되어버린 건지 모른다. 영상을 보는 시간이나 방송을 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의 시간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미디어에서 멘토를 찾는 이유가 된다.


스승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했지만 어쩌면 만나지 못할 뻔한 선생님까지 온라인으로 더 만나기 쉬워진 시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디어에 노출된 사람들의 한정이긴 하지만 주변에 찾기 어려운 스승을 찾는 것보다는 장점이 있고, 본받고 싶은 점이 많은 사람을 온라인으로라도 만나는 것이 더 쉬워졌다. 그래서일까? 간절하게 찾아 배우는 일이 줄어 버렸다. 유명한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겠구나' 싶다. 간절함으로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알려줄 수 있는 재미있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설령 어떤 이유에서 온라인에서 내가 구독한 사람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를 대신할 수많은 사람이 생겨나니 다급함과 조금함은 사라진다. 그러니 스승을 찾는 일은 다음으로 밀리고, 심지어 그다음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글을 기획할 때는 책을 스승으로 정해 많은 책 읽기를 권면하는 방향으로 기틀을 잡았다. 책이란 결국 만나는 못하는 스승의 삶을 보는 것이고, 오랫동안 쌓인 지식의 축적이라고 하지만 책장을 넘기지 않으면 결국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이건 영상으로 스승을 찾는 일이랑 같은 상황이다. 책을 아침에 주문하면 오후에 도착하는 완벽한 배송 시스템이 있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일 년에 몇 권 구입하지 않는다. 꼭 구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아니다.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도서관도 있고, E-book 도 있어서 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2019년에 통계를 보면 성인기준 52.5%가 책을 전혀 읽지 않으며, 전 국민 연간 독서량이 평균 4.5권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일본의 6.1권, 중국의 4.75권 보다 낮은 수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된다.


독서량이 미치는 영향이 지금은 미흡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점점 줄어드는 독서량은 개인의 능력차를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또한 주변나라와 벌어지는 일 인당 독서량의 격차는 우리나라 전체에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스승을 잃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떤 스승을 찾아야 하는가? 이미 관심도가 떨어진 독서는 어떻게 다시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심각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10대와 20대를 거치면서 부족했던 것에 대한 갈증과 배우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어야 한다. 단순하고 평범하게 시작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고 나서는 꾸준함으로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유튜브나 숏타임 플랫폼에서 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는 흥미로운 일은 아니지만 도파민의 중독에서 잠시 벗어나 정화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우리의 뇌는 다시 좋은 스승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상이든 독서든 배우자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양분이 된다.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제시하고 의지를 채워준다. 오랜 시간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가 움직이면서 시작이 된다. 한 유명한 강사가 자신의 강의 내용의 일부 중요한 내용을 영상으로 공개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돈을 버는 데 사용하면 어쩌냐. 하고 걱정을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행동하는 인간은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나도 공감하는 이야기다. 생각보다 행동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성공하는 사람이 적다.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실행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책을 읽지도 않지만 그 보다 더 적은 사람이 행동으로 옮긴다.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짐을 해도 어려운 일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지만 경계하기도 하고, 의지를 키워 줄 수도 있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서로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도 좋은 힘을 얻을 수 있고 좋은 동기를 얻을 수 도 있다.


뭐라도 좋다. 어떤 책이라도 좋고, 어떤 동호회라도 좋은 것 같다. 그러니 20대와 30대의 그대들 제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주길 부탁한다.

keyword
이전 04화알바를 몬(못) 구하면 천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