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번 돈이 소중한 지금.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과외 아르바이트였다. 하고 싶어서 했던 것은 아니고, 여자 친구가 한 살 어렸는데, 여자친구의 어머니께서 밖에서 만나지 말고 집에서 만나라는 권유에 시작하게 된 것이다. 수능을 앞둔 그 친구와 또 다른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두 명의 학생을 받으면서 총 세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이 되었다. 과외를 하는 게 내가 전공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알게 되었다.
나에게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 나와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동생은 곧 대학을 갈 예정이고, 전체 금액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보증 빚이 있었다. 그러니 온실 속 화초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었다.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 학교를 마치고 남은 시간에 수업을 할 수 있었던 나는 생환비와 그 당시 쓸 용돈은 어느 정도 해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의 시간표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꾼 후, 호주 워킹 홀리데이라는 새로운 계획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생활비와 용돈을 벌 수 있는 돈으로는 전혀 충분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일자리를 알게 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에 일자리를 알아보는 방법은 일단 일간지로 찾아보는 방법이 있었다. 인터넷 구직사이트가 오픈되기 전이라 지역 생활 정보지에는 사람을 구하는 구인광고가 실려 있었다. 구직하는 사람과 구인하는 사람 모두 일일 생활지를 보여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던 시기였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과외가 끝나는 시간인 늦은 저녁시간대와 주말 시간이 있었다. 늦은 시간에 구인을 하는 가게는 주로 술 집이거나 편의점과 PC방 정도의 자리였다. 2500원대의 시급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지만 물가를 생각하면 당시엔 그 정도가 적정한 수준이었다. (이 금액을 다 주는 가게는 없었다.) 일간 생활 정보지에 나온 가게들을 차례로 전화해 보고 이미 구인이 된 곳은 제외시켰다. 그나마 몇 개의 가게에서는 면접을 보러 오라는 대답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면접의 문이 높았다.
주방을 뽑는데, 요리는 전혀 할 줄 몰랐다. 홀을 봐야 하는데, 좀... (못 생겼다.) 그랬다. 가게에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등등 일반 음식점의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면접의 문이 높았다. 면접을 보면 다 붙을 것 같았던 나는 면접의 문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일간 생활 정보지에 나온 곳은 더 이상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소개로 알게 된 주유소 새벽 아르바이트. 이곳은 아버지가 택시 운전을 하면서 가스 충전을 하는 단골 충전소였다. 밤에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나를 소개해 주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곳은 나와 동갑인 친구 한 명이 일하고 있었고, 야간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상사 한 명이 일을 하고 있는 자리였다. 이전 친구도 나와 동갑이었는데, 군대를 가게 되면서 빈자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다행히 면접을 통과했고, 이력서와 주민등록등본 그리고 급여통장 사본을 제출하면서 정식으로 채용이 되었다. 어찌 보면 낙하산과 같은 취업이지만 사실은 아르바이트가 넘치던 시절의 힘든 일에는 사람을 구하는 일이 더 어려웠기 때문에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는 역시나 힘이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과외를 하고, 저녁을 먹은 다음엔 밤 10시에 다시 출근을 했다. 시간은 저녁 10시 출근 혹은 저녁 8시 출근이었다. 저녁 8시에 일찍 출근 한 사람은 새벽이 되면 4시간 정도 취침시간이 주어진다. 대신 아침까지 일 해야 한다. 그렇게 일찍 출근한 사람과 늦게 출근한 사람이 '함께' 혹은 '혼자' 일하게 되는 방식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간밤에 기사님들이 태우고 아무렇게나 던진 담배를 치우고 밤 사이 떨어진 가로수 잎을 쓸고 있으면 아침 해가 뜨기 시작했다. 그러면 다시 집으로 가서 씻고 학교로 갔다.
여름 방학 때는 그나마 덜 힘들었다. 조기 졸업을 위해 계절 학기를 듣는데, 이 수업은 오전 수업이 전부였다. 아침에 학교를 다녀오면 저녁 수업 때까지는 쉴 수 있으니 방학은 그나마 나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괜찮아도 몸은 힘이 들었다. 피곤하고, 늘 잠이 부족했다. 그래도 수중에 돈이 생기니 집안 생활비 걱정은 줄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금방 지쳐버릴 것 같아서 2학기에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만 했다. 왜 주유소 야간이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지 직접 해보고 알게 되었다. 내 자리는 군대를 갔던 친구가 의가사 전역을 하면서 다시 채워졌다.
20살 꿈 많은 청춘의 잠을 못 채워서 그런 건지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되었다. 하지만 인생의 시간표를 바꿔 버린 지금 마냥 놀 수 없었기 때문에 2학기 기말고사를 치고, 소위 막노동이라고 하는 건설 현장 인부로 발을 담갔다. 이 일은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현금 수당에 중간 시간엔 생각보다 긴 휴식에 간식까지 챙겨주는 좋은 곳이었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다른 곳에서 받을 수 없는 큰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이라는 매력은 추운 겨울이지만 새벽에 눈을 뜨고 옷을 입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현장은 춥다. 11월 주말부터 시작했던 일이라 선선할 줄 알았던 날씨는 새벽엔 춥고, 낮에는 더워지는 이상한 온도를 선물했다. 현장에서 나오는 부스러기 나무를 모아 아침이면 태웠다. 장갑을 몇 장이나 끼고 있어도 손은 시렸다. 황무지에 바람 한 점 막을 수 없는 현장 일은 진짜 추운 1월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2월이 되면서 벌판에 새운 벽 안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매서운 바람은 피 할 수 있었다. 경기가 좋았던 그 시절엔 현장의 일이 계속해서 생겨 났다.
대학교를 가면서 조금은 달라진 환경에 처음은 설레고 행복하다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곧 사라지는 감정에 시간을 쏟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시작해 보면 좋겠다. 무엇인가 필요해서 시작하는 일자리도 괜찮다. 돈이 필요해서 스스로 벌어 그것을 마련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외국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에 쓰는 것도 좋다. 좋은 경험으로 준비한 돈을 또 다른 경험에 쓴다는 것은 작은 지렁이를 끼워 큰 바닷 고기를 잡아 내는 낚시와도 같다. 혹은 달콤한 과일을 먹고 남은 씨앗을 심으면 그 씨앗으로 더 많은 과일을 맺는 것처럼 말이다.
투자의 성공은 간단한 이치에서 시작한다. 내가 가진 것을 더 나은 것으로 교환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 하는데, 20대의 젊은 나이에는 누구나 가진 것이 시간과 노동력이다.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생각보라. 의외로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내 지인은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지금은 CJ에서 일하고 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누구에게나 많은 것을 만들어 낼 능력은 있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누군 저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돈을 버는데, 누구는 먹기만 해도 돈을 버는데, 싶지만 그들도 내가 하지 않은 수많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게 쉬워 보이면, 핸드폰을 켜고 먹고 싶은 것을 시켜보라. 그리고 먹는 것을 촬영해 업로드해 보면 알게 된다. 결코 쉽에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러니 삶이 조금 심심해지고, 당장 무엇을 하고 싶은데, 집안에서 도움을 줄 수 없는 환경이라 불평을 하고 있다. 당장 아르바이트 중개 어플을 켜보면 된다. 그곳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수 십 개의 일자리가 있다. 바로 당신이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지렁이를 줄 수 있는 수 십 개의 일자리 말이다.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을 줄 수 있는 그 일자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