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사실 별거 없어.

by SseuN 쓴

아침에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낯설기만 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도 중간에 멈춤 없이 12년을 달려온 나에게는 휴학이라는 시간이 전혀 익숙하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해진 시간표 대로 움직이는 쳇바퀴를 돌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지만 다시 텅 빈 방 안에 개지 않은 이불 위에 다시 누워 버렸다.


내 인생에 휴학이라는 것을 해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남자라면 꼭 가야 하는 군대를 못 가게 된다는 통보를 받은 이후, 심리적으로 조금 혼란했다. 누군가는 군대를 안 가면 좋은 거 아니냐고 비아냥 거릴지 모르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고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싶었던 나였다. 아니, 건강하다고 자부하고 자라왔지만, 군대를 갈 수 없는 정도로 몸이 안 좋은 상태였다는 사실이 충격인 것이다. '조금 불편한 정도야' 라며 생각했지만 확정된 신체검사 결과를 받으니 '넌 불편한 게 아니라 아픈 거야'라고 판정을 받은 것 같아 마음적으로 위축되어 버렸다.


머리가 아파왔다.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해 볼 수 있는 시도는 해 봤지만 군대를 입대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니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참전 군인이었고, 아버지는 만기 제대, 나중에 일이지만 동생도 백골부대 병장 만기 제대의 내력은 집안에서 맏이 인 나 스스로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군휴학이 없으니 바로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는 '인생 시간표'를 세우게 되었다. 대학을 입학해서는 그렇게 세워진 시간표 대로 차근차근 준비했다. 영어 공부도 하고 전공 공부도 열심히 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학과 과대표를 맡으면서 분주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날도 어떤 날과 다름이 없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영국으로 이민을 갔던 친한 형이 한국에 부모님을 만나러 나오는 길에 나를 만났던 날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시간표는 전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니다. 결국엔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형은 결혼 전까지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던 가장 보동의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도 당연히 나중에 크면 형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보통 사람의 본보기가 되는 형이었다. 그런 형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한국의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이민을 준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송별회를 했다.


그런 형이 들어와 나에게 건넨 첫마디가

"야 너 짐 싸서 바로 영국으로 와라"였다. (너무 인상적이라) 지금도 그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듯하다. 초 봄, 날씨라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해는 따뜻한 그런 날이었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흔하지 않았던 그때엔 밥을 같이 먹는 게, 지금의 카페를 같이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입국한 형이 먹고 싶다던 대구의 매콤한 찜닭 집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나에게 건넨 말이다.


난 갭이어라는 단어를 보고 난 다음이었다. 그래서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고민과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막상 준비해야 하는 것 하나하나가 어려운 일뿐이었다. 삶이 여유롭지 않았고,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런 가난의 연속적인 삶이었다. 난 내 신이 주신 나의 삶을 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기 시작한 순간부터 차분하게 시간표 대로 살고 있던 나의 잔잔했던 마음이 움직였다. 마치 고인 물을 장화 신은 아이가 두드려 대는 듯,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처음 외국으로 나가 본 유일 한 사람이었던 형이 한 말이어서 더 그랬다. 그 형도 사실 슈퍼에서 일을 하면서 어렵게 가정 경제를 이어나가고 있던 중이었지만, 늘 그곳의 생활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안부로만 들었는데. 형이 건넨 한마디에 다시 그 영국에서 보내온 사진들과 편지들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마치 내가 그곳에서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의 진로를 내가 스스로 결정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영어는 그냥 가서 하면 될 것 같았다. 뭐 영어를 잘 못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취업을 위해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던 터라 영국으로 가는 준비는 특별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무슨 자신감이었지?) 다만 돈이 문제였고, 가족들의 허락이 문제였다. 그리고 영국이라는 나라를 전혀 모르던 터라 뭐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형은 일정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가고 옆에 없으니 메일로 질문을 하고 답을 받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늦어진다는 게 아쉬웠다. 조금 더 방법을 찾고 싶어서 대구 동성로에 자리하고 있는 유학원을 방문상담을 받기도 했다.


내 인생 시간표는 적극적인 수정이 필요했다.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군대 문제로 속앓이는 하던 시간이 무색해질 만큼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다.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도, 처음으로 가보는 한국 이외의 나라도 전부 두근 거리는 일 투성이었다. 문제는 생길 수 있겠지만 그런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를 두려워하며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도 문제다.


준비는 하나하나 시작했다. 학교를 다는 던 중이라 도서관을 주로 이용했고, 처음 가보는 여행, 유학 관련 도서대를 서성거렸다. 유학원에서는 금액을 산정해서 전해 주셨지만 현실적인 가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유학은 포기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게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으면 여행과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어학원도 나실 수 있다는 비자를 알게 되었다.


또다시,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형이 있는 영국으로 일정을 정했었지만 준비하는 동안 몇 번의 수정을 거치게 되면서 나라는 호주로 변경하게 되었다. 아직 호주라는 나라가 그렇게 유명하거나 주변에서 다녀온 사람이 없었던 터라 또 영국을 가기 위해 했던 준비만큼을 더 해야 했지만 비자를 적극적으로 발급해 주던 호주의 정책에 맞춰 빨리 준비할 수 있었다.


2학년이 되었다. 무슨 준비를 2년이나 했나 싶지만 쉽지 않았던 정보와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 시간이 나는 대로 준비를 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나는 인생에 처음으로 휴학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갔던 친구들이 한 번씩 해봤던 휴학을 나는 이제야 해보게 되었다. 휴학을 결정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군대를 간 친구들이 휴학이라는 거 별거 없다고 했지만, 학교 생활 12년 후 대학교 2년을 다니 던 총 14년 연속을 잠시 멈추는 서류를 내 손으로 작성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서류를 내려받기하고 그 안에 내용을 채워 넣고, 사유에 '호주 워킹 홀리데이'라고 쓰면서 서류의 종지부를 찍었다.


서명을 받기 위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확정된 서류를 다시 전공과 학생부로 제출하면서 휴학을 확정되었다. 뭐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서류 한 장으로 쉽게 휴학을 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학교도 안 가고 인터넷 접수로도 휴학이 가능하다는데, 암튼 서류를 직접 내는 그 순간이 클릭하는 순간이랑 같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느낌이 아주 낯설고 유쾌했다. 유쾌하다는 표현이 맞는 설명인지 모르지만 내가 한 최초의 내 생의 결정이었다. 별거 없었다. 내가 한 최초의 결정이지만 별거 아니었다.


그냥 뭐가 하고 싶다면 쉽게 결정해도 될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쉽게 해 버리고 새로운 걸 시작해도 되는 것 같다. 오롯이 주어진 나의 인생 시간표는 사실 내가 짜면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기 전이면 어김없이 하얀 도화지 위에 컴퍼스로 그린 커다란 원을 잘라서 만드는 '방학 계획표'와 같다. 보기 좋게 짜놓고 바꾸면 그만인 그런 시간표 말이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8시에 아침을 먹으며 9시부터는 공부를 시작한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방학중에 단 하루도 지켜본 적이 없던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내가 짠 인생 시간표라고 하지만 언제든지 나를 위해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자유로움 정도는 스스로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와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휴학이라는 결정을 언급할 정도로 내 인생의 휴학은 사실 생각지 못한 최고의 이벤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휴학으로 인해 지금의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믿는다. 휴학을 하고 호주를 다녀오고, 호주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를 보기 위해 다시 외국으로 여행을 다녔고, 더 큰 여행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지금은 전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 보면 그때 한 선택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그래서 해보지 못한 경험에 있어서 조금은 적극적인 편이 되었다.


지금 계속 시간표가 어긋난다면 과감하게 그 시간표를 찢어 버렸으면 좋겠다. 다시 새 종이를 꺼내 들고 그 위에 가능한 큰 원을 그린 후 다시 시간을 잘라보면 어떨까? 단 한 번도 당신의 시간표를 결정해 본 적이 없다면 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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