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의 연속
매 년 초가 되면 작심을 한다. 무엇을 하기 위해 작심을 하는 것인지 작심을 하기 위해 작심을 하는 것인지는 본인만 알고 있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그 '처음'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일이지, 그 '시작'을 폄훼할 수는 없다. 생각보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떨림은 그 유효기간이 짧아서 시작한 일을 길게 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다. 돌아보니 나도 수많은 다짐을 하고도 그 일을 끝까지 해 본 일이 많이 있지 않다.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자주 경험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사라지게 됨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무엇을 하면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고민을 하면 할수록 나를 바로 알기란 더욱 어렵기만 했다. 진정으로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들을 떠밀려 대학생이 되어 버렸고, 성인이 되었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엔 꿈을 꾸며 살기엔 다소 팍팍한 형편이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보다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하는 시간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고, 해야 하는 일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하면 안 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심리적 불안이 있었다.
갭이어(gap year)는 사전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는 시간을 말한다. 이 기간에는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직접 체험하며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한다. 영이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중등교육을 끝내고 고등교육을 받을 예정인 학생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시사상식사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갭이어'라는 단어를 도서관에서 처음 접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코너 속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에서 발견한 단어가 바로 갭이어라는 단어였다. 그 단어가 속한 책을 읽고 난 후부터, 나는 수많은 고민과 타협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당장이라도 갭이어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환경이 그렇지 못했고, 형편이 따라주지 못했다. 대학교 1학년이라는 나이에 뭘 해보지도 못하고, 휴학을 한다고 말하는 게 웃음거리가 될 것만 같았다.
이런 소심하고 의지도 없던 나에게 다행히도 옆에서 든든한 응원을 해준 친구가 있었다.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내용을 듣고 나서는 자신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같이 준비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준비라고 할 게 없었다. 대학교 전공은 내가 가고 싶었던 전공이었기 때문에 1학년에 시기에 해야 하는 공부는 곧 잘 따라갔었다. 성적은 걱정할 것 없이 잘 나왔기 때문에 학교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남은 시간을 활용해 준비를 하면 될 터였다.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준비는 다른 곳에서 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야 했는데, 그 부분이 가장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인식이 좋아서 나 같은 사람도 고용을 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지만 그때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가 쉽게 취업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더군다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에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지 않았다. 다닐만한 공장도 알아봤지만 시간이 너무 야간이라 다녀오면 학업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와중에 좋은 기회로 평소에 나를 귀하게 생각해 주시던 분의 자녀를 가르치게 되었다.
과외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면 과제나 조별 모임을 해야 하는데, 정해진 시간을 어길 수는 없으니 매일 시간을 쪼개서 살았다. 과외가 하나 둘 생기면서 바쁘게 살았던 보상이라고 할까? 돈은 조금씩 모을 수 있었다. 욕심이 생겨 여름방학이 되자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과외도 하나 더 늘렸다. 안 하는 것보다는 바쁘게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후회 없는 일 년을 보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갭이어를 시작했습니다.
라고 전개 되는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인생이 고비가 없으면 재미가 없는 법이니까.
내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도 몰랐던 아버지 카드 빚의 이자가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 더 이상 평범한 삶의 영위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국립대를 다니며 장학금을 받았던 나는 드는 돈이 없이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생활비는 그렇지 못했다. 가계재정이 어려우니 모은 돈으로 급한 불부터 끌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빚을 갚겠다며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일까지 생겼다. 지금은 인생의 고비였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시련이었고, 고난이었다. 비참한 인생이었다.
다시금 이겨낼 수밖에 없는 고통이었다. 삶의 무게는 결고 가볍지 않았고, 줄어들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일 년이 시작되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는 시간을 쪼개 쓰는 피로감은 있었지만 마음은 편했었다. 하지만 내가 번 돈으로 할머니 포함 다섯 명의 식구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생각에 하고 있던 일의 피로도가 심하게 밀려왔다. 일은 더욱 힘들어지고, 몸은 더 고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도 고3이 되면서 과외보다는 자습으로 공부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했기 때문에 몇 개 없던 수업이 줄었다. 물론 방학 기간 중이 아니라 주유소 아르바이트는 이미 그만뒀다.
긴 한 해였다. 방학이 되면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행인 건 계속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학비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돈이라도 아끼는 것이 그나마 숨을 쉴 수 유일한 구멍이었다. 그렇게 긴 한 해였다.
그런 내가 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처한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이곳에서 허덕거리다가는 꿈도 없이 떠밀려서 진학하고 취업하고, 다시 빚을 갚아 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발이 뺄 수 없는 늪에 담가진 것 같이 무거웠고, 빠르게 발을 내딛지 않으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현실에서 벗어나서 나를 봐야 제대로 나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급한 불을 끄고, 다시금 아버지가 파산신청을 하며 구제받은 그 빚을 갚아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나는 이미 2학년이었고, 긴 결심 끝에 휴학계를 내고 돌아오는 날 나의 계획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그때의 빚은 정부의 정책으로 무이자 원금 상환 신청으로 다 갚았지만 금전적인 고민은 현재에도 따라다니는 꼬리표와 같다. 하지만 그러한 금전적인 고민이 내 삶을 누르지 않고, 내가 숨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조금 더 길게 보는 습관이 생기고 어떤 일도 내가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성향이 되었다. 아직도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지만 자존감을 많이 높아졌고, 스스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잊고 살 때가 더 많아진 것이 좋은 변화라 생각한다.
지금은 갭이어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한 달 살이, 일 년 살이 처럼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일상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휴학을 하고 꿈을 찾아 여행을 하거나 전혀 새로운 일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갭이어라는 단에 얽매인 게 아니라 스스로 쉼을 주고, 나은 삶을 위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후 1년 ~ 3년 차에 이직률이 높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사회에서 정한 시간표대로 살다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던 회사생활을 연습 없이 시작하다 보니 그런 사회적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결정한 회사나 진로는 때론 나의 삶의 질을 떨어트릴 수 있다.
인생의 긴 시간 중 잠시 쉼표를 찍고, 여행 또는 봉사 혹은 인턴을 하던지 평소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경험함으로써 얻어낸 많은 재료들은 분명 인생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할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들어야 하는 레시피겠지만 당장은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 내가 이곳에서 아등바등 거리며 사는 삶을 한 치라도 위에서 본다면 지금 내가 하는 버둥거림은 한낯 작은 몸짓에 불과하지 않을까? 20대가 되었든 30대가 되었든 시간은 누구나 다 같이 흐른다.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지. 억지로 하게 되는지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은 늘 많아 보이지만 '어?' 하는 사이에 '어!' 하고 지나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