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백수 과로사에 대한 고찰

by SseuN 쓴


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특별히 내세울 경력이 있거나, 학벌이 있지도 않았다. 그나마 한 가지는 여행 전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경력뿐이었다. 나라에서도 나의 밥벌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구직 알선 기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며칠의 상담이 이어지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아갔다. 상담해 주시는 분은 최대한 나를 배려해 주셨고, 당시엔 생각보다 기회가 좋아서 취업을 중개해 주는 곳에서 ***스 바리스타 자리를 추천받았다.


부푼 꿈을 안고 서류제출 했고, 맞춰서 면접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아마 여백이 많았던 나의 이력서는 그들이 원하는 사람과 부합하지 않았는지 정성스럽게 쓴 서류와 두근거리면서 봤던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


사실 나라에서 걱정을 같이 해줘서 면접도 보고 이력서도 들고 다녔지만 막상 나의 마음은 상황과는 조금 달랐다. 긴 여행을 다녀온 직후라서 그랬던 것인지 취업에 대한 고민보다는 뭘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주로드는 생각이 일을 하면서 행복 느낄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는 고민이 제일 컸다. 한때 유행이었던 제주에 한 달 살이 하면서 숙소 청소를 해도 좋을 것 같고, 오랫동안 비어 있는 집을 빌려서 비엔비를 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즐거운 일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고, 그 일로 수입을 얻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구직자 훈련 과정으로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받아 놓기는 했지만 식당을 차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리저리 고민만 하던 찰나. 여행 전 경비 마련을 위해 일했던 공사 현장 형님과 연락이 닿았다. 워낙 인력이 귀한 시기였기 때문에 며칠이라도 일을 할 수 있냐는 물음에 흔쾌히 승낙하고, 여행 가면서 신발장에 넣어 둔 작업화를 꺼내 신었다. 다시 한번 작업화 끈을 동여 메었다. 역시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노동의 결정체였다. 여행으로 편안함을 쫒던 나의 몸뚱이는 이전과는 달랐고, 체력적으로도 여행 전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일하는 중에 조금의 쉬는 시간이 있다면 쪽 잠을 정하는 것이 나의 육체 피로는 푸는 현명한 행위였고, 점심을 먹는 시간이면 딱 점심만 먹고 바로 구석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수영 바구니를 챙겨 수영장으로 향했다. 처음 수영장을 등록할 때는 자신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수영장에 들러 개운하고 운동을 마치면 잠은 잘 오겠다 싶었던 것이다. 늘 이상은 현실과 많이 달랐다. 저녁 수영을 들렀다가 나오면 녹초가 되어버린 축 늘어진 몸을 침대에 눕히기 바빴다. 몸을 누이면 마트의 자동셔터가 내려오듯 스르륵 하고 닫혀 버린다. 이렇게 하루를 마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몇 주간의 노동은 그 강도가 줄어들지 않았고 나의 육체는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당장에 현금이 필요한 일이 많았고, 정신은 없었지만 나름 부지런히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얼마간 매일 아침, 같은 곳으로 출근해서 일은 하던 현장이 마무리가 되어 가면서 다른 지역으로 현장이 옮겨질 무렵에 나는 일을 그만뒀다. 힘든 것도 큰 이유였지만, 이 일을 다른 지역으로까지 가서 할 만큼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이었는데, 딱 누군가를 쓰기엔 애매하고 안 쓰기엔 일 할 사람이 없는 그런 곳 들이었다. 그렇게 연락이 오면 나는 낮이고 밤이고, 손이 필요한 곳이라면 달려가 일을 도와주곤 했다. 오히려 그렇게 일을 하니 정해진 퇴근이 없고 출근이 없어졌다. 심지어 서로 부탁을 하는 바람에 시간도 겹치는 일이 많았고, 이동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가게에 아르바이트생이 쉬는 날이라 일을 봐달라는 형, 부부가 외출할 일이 있어 아이를 봐달라는 형님네 부부, 할머니 병원을 모시고 가는 것은 물론이고, 제사에 쓰는 음식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을 따라나서는 것도 내 일이었다.


카페에서 일을 도와주는 것은 그래도 편한 일이었다. 형님네 아이를 보는 일보다는 말이다. 아이들을 키워 본 적이 없으니 그저 힘을 써서 놀아주는 게 전부였고, 씻기고 재워야 하는데, 내 옷이 먼저 다 젖어 버린 후에야 겨우 씻겼다. 만만하고 잘 놀아주는 삼촌이 왔는데 잘 수 있나? 조카들은 잠을 자지도 않고 나랑 놀려고만 했다. 감기는 눈을 억지도 뜨면서도 아이들은 놀아 달라고 하는데, 에너지가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역시 아이 보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그 일이 외에도 이사하면 짐을 옮겨주러 가기도 했고, 수확철이 되면 밭에 손을 빌려주러 갔다. 사람이 부족해서 못 갔던 세미나를 대신 참석해 주기도 했고, 수련회 운전기사로 투입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일을 했던 것 같다. 왜 백수가 과로사를 당하는지 몸소 깨닫게 되는 중이었다.


이 시대의 '홍반장' 혹은 '김 이장'으로 온 동네 일을 하고 있을 때, 평소 친했던 동료 선생님의 제안으로 작은 사무실 하나를 얻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준비했다. 전혀 고민이 없었던 일을 아니었다. 20대에 치기 어린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 다시 생각났다. 다 책임도 못 질 것 같으면 시작을 할 수 없다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해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을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버렸다. 과연 이 일이 맞을까? 스스로에게 수 없이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정말이지 사무실을 계약하는 그날까지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해야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신중을 기해야 했다.


무작정 퍼주기만 해서는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정확한 수입원이 없이 나의 노동으로만 일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준비하는 과정이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 이전의 나를 통해 투영되는 모습을 피해야만 했다. 물론 잘했던 일과 꼭 해야 하는 일들은 있었지만 이전의 나의 모습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으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준비해야 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우선 비워진 지 오래된 낡은 사무실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청소가 잘 안 되어 있던 사무실이라 우선 청소를 마치고, 아무렇게나 휘감긴 전선들을 정리해야 했다. 백수였으니 바닥을 다듬는 일, 벽지 도배하는 일. 형광등 LED로 교체하는 일은 다 내 손으로 해야만 했다. 나와 손이 맞는 사람을 저녁에 불러 같이 일 하기도 했고, 아침에 출근하고 아무도 없을 땐 혼자서 여기저기로 재료 사러 움직이기도 했다. 재료를 사 와서 하나씩 조립하고,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중고 에어컨까지 설치하고 나니 얼추 모습을 갖춘 공간이 되었다. 한결 나아진 사무실을 보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다시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설픈 실수는 없어야 했다.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이후로 3년 반이 지난 지금 내가 이 일을 잘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같이 하는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 년마다 보고를 해야 하는 곳도 없었다. 시간을 금방 지나고, 아이들은 내 손을 타고 커나갔다. 고1이었던 애들이 20살이 되어 지금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벌써 그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을 하니 세월이 참 쏜살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지금의 나를 평가할 수 없으니 스스로가 평가를 해야만 하는데, 단호하지 못한 나는 그렇게까지 단단하게 나를 제단 할 수 없다.


어찌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때론 그 문제가 내 삶의 전부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여행 후 돌아온 직후에는 직업이라고 정해진 직장은 없었지만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즐거웠다. 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만큼 쓰는 돈도 적었기 때문에 염려가 되진 않았다. 당장에 책임을 질 누군가가 없다면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가볍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정해진 밥벌이는 없을지 모른다. 친구들이 모두 삼*, 엘*, 현* 에 다니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두 의사나 간호사, 변호사나 경찰관이 아니다. 그냥 그들의 자리에서 그가 하는 일을 할 뿐이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일을 힘들어하는 볼멘소리를 하는 친구도 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나는 내가 했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많은 친구들이 원래 일하던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 아마 익숙함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새롭게 시작한 일이 이전에 했던 일이라도 이젠 본인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상황을 보는 자세와 태도 그리고 의지까지도 말이다. 처음이 어렵지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그런 일들도 쉬었다가 다시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조금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에서 더 힘든 길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같은 일을 한다고 더 나아짐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아직도 그렇게 사느냐고 손가락질하는 그 누군가가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나만 믿으면 되는 일이다. 가치를 조금만 다른 곳에 둔다면 돈을 좇아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 돈이 따라 들어온다. 사실 무슨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꽤나 중요하고 신중한 일이다.


유행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취해 적은 일을 하고 많은 돈을 벌 수단을 찾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많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그런 일을 하는 게 그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부디 낭비되는 시간을 조금 더 다른 쪽을 쓸 수 있게 움직이면 어떨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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