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다합엔 물범이 살아.
배낭을 메고 길게 여행을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아프리카에 자리 잡고 있는 이집트라는 나라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이집트는 모래 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 피라미드가 있고, 낙타를 타고 다니는 상인들과 주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오아시스 주변에 만들어진 도시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숙소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집트 도시를 상상하고 입국했다.
카이로 공항에 내려진 나는 가방을 들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입국장을 나와 얼굴에 닿은 뜨거운 공기는 8월 여름의 이집트 날씨를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습하진 않지만 뜨거운 공기, 저녁이지만 떨어질 기미가 없는 이집트의 여름 온도. 앞으로 내가 어떻게 여기서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뒤섞여 혼란한 도로를 걸었다. 그나마 우버 택시를 부를 수 있는 도시라 공항에 도착해서 연결된 와이파이로 택시를 불러 뒀다.
공항에 소란은 여행자들에겐 좋지 않다. 낯선 땅에 도착한 것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인데, 주변까지 소란하면 정신이 없어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럴 땐 잠시 조용한 공간을 찾아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공항에서 가장 조용한 곳은 입국 심사를 마치고 입국장 자동문이 있는 곳까지가 가장 좋다. 나는 주로 그곳에서 준비를 하고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챙겨 보곤 한다. 거길 빠져나가면 다시는 이곳을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좋다.
어수선한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우버에 올라 예약한 숙소로 향하는데, 낡은 승용차의 창밖으로 놀라운 모습이 스친다. 예상을 하고 도착해도 늘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는데, 여기는 다른 의미로 그랬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엔 각 대륙에 속한 나라의 대표적 브랜드 차량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경적을 내며 거북이처럼 앞으로 향했다. 내가 부른 우버도 이 대열에 합류해서 차 안에서 들었을 때 그나마 덜 크게 느껴지는 경적을 울리며 앞으로 향했다.
도로 위에 모래 한 알이 없다. 사막이라고만 생각했고, 오아시스 주변에 도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숙소 앞에 도착해서였다. 숙소로 향하는 내내 사막의 모래 한 알 본 적이 없고, 사람을 태운 낙타 한 마리 본 적이 없었다. 혹시나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나의 '상상 이집트'는 없었다. 다만 무단 횡단을 하기 위해 히잡을 쓴 사람들이 삼삼오오 손을 잡고 뛰어다니는 모습과 별 역시나 움직임이 없어서 지금 차선과 다를 것 없는 옆 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시도하는 자동차들만 도로에 가득했다.
이집트는 늘 상상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프리다이빙을 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중동의 모래사막 위에 있어야 하는 이집트는 아프리카 가장 북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심지어 오아시스 물가에 만들어진 도시가 아닌 단단한 바닥 위에 만들어진 서울과 같은 도심이었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대도시의 모습이고, 한 나라의 수도의 모습이라고 하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다합은 예외였다.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다합이라는 도시에 도착한 나는 바다의 모습에 더 이상 이집트를 상상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합은 지금은 속초나 강릉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니 조금 더 과장하자면 동남아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해변으로 자리 잡은 카페에서는 수영을 마치고 올라와 있는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과 수영을 들어가기 전 선블록을 얼굴과 몸에 바르고 있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오진 않았다. 다만 눈으로 보기 전까지 이 상황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골목엔 한국 사람들이 가득했고, 한글 간판에 치킨집도 있었다. 골목에는 한국 사람들과 소수의 그 밖에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광경이 생경했다. 이태원인가?
나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여행을 하면서 스쿠버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산호가 가득한 동남아를 추천하거나 사이판처럼 인기 있는 곳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지금 있는 곳은 아프리카 이집트의 다합이라는 소도시다. 전혀 상상이 안 되는 나라에, 처음 들어 본 도시까지 꿈에서도 예상 못한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프리다이빙은 호흡을 도와주는 장치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호흡으로만 물속을 유영하는 하나의 수중 스포츠이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관심이 많고, 스쿠버 다비빙 보다 가벼운 장비와 적은 비용으로 배울 수 있다는 장점에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이집트 다합의 나 역시 프리다이빙이라는 스포츠를 처음 듣고 간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앞서 이야긴 했듯, 나는 물을 진짜 좋아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한 명으로 바다에 들어가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물에 들어가 숨을 참아가며 바다는 봐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나는 호주에서 스쿠버 다이빙으로 자격이 있을 뿐이지 장롱면허와 다름이 없었던 상태였다.
호주 이후에 나는 수영장을 등록하고 수영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전혀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했던 나는 서서히 발전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여행을 나왔기 때문에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조금씩 나의 단점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좋은 강사를 만나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다. 수영을 잘못한다고 했더니 옆에서 심리적으로 불안하지 않게 코칭을 잘해주었다. 서서히 깊은 바다가 좋아지고 바닷속에서 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나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즐기기 쉬웠다. 조금만 헤엄치고 나가면 바닥이 30미터가 되고 다양한 구조물을 바닷속에 묻어 둔 다합의 앞바다는 스쿠버를 배우기도 매력적이지만 수경하나 들고 바다를 들어가 놀다가 오기엔 프리다이빙이 제격이었다.
수업 시간엔 슈트를 빌려 입고, 바다를 나가서 편하게 트레이닝을 받았고, 수업이 없는 날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 한참을 놀다가 다시 돌아오면 저녁 시간이 되었다 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늘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무서워하고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도전을 하고 즐기는 일들은 모두 내 주변의 사람들 덕분이다. 다합에서도 스쿠버를 했지 프리다이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코칭으로 두려운 물을 이겨 낼 수 있었다. 마치 호주에서 공기통 하나를 들고 바다로 들어갔던 겁 많은 나를 끝까지 지도해 주신 선생님처럼 말이다.
도전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조금씩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때부터는 오히려 즐거운 일이 되어 버린다. 같이 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를 위해 티칭을 해주는 좋은 선생님은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내 의지보다는 즐기는 시간이 나의 실력을 늘게 만든다. 지금은 내가 수영 강사 자격증에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돌고 돌아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분야에 자격증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스쿠버 자격이나 프리다이빙 자격이 주는 의미도 있겠지만 수영 강사를 도전하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면 많은 감정이 들 것 같다. 심리적으로 크게 두려워하던 분야에 당당히 내 몫을 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 들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도전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여러분도 이어 나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