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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Jan 24. 2024

안녕하세요. 독도 주민입니다.

독도 주민이 되었습니다.


1984년,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그 후로 호주에서 일 년을 보냈어도, 수많은 나라를 다니면서도 결코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면 우리나라는 나를 지켜주고 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한다.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중에서도 대구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 중에 대구시에 살고 있는 대구 주민이다.


많은 나라와 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도 그 도시 주민이 되어 살았던 적은 없었다. 여행자라는 신분으로 여행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원래 나의 신분으로 돌아간다. 울릉도 여행도 역시 똑같았다.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조금 특별한 곳이다. 독도를 다녀와서 독도 사진을 보여주기만 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독도 주민이 될 수 있다. 이중 국적까지는 아니고 이중 거주자가 된다. 

울릉군 독도 명예주민증은 10분 정도만 투자하면 발급받을 수 있다. 사진은 증명사진이나 혹은 독도에서 찍은 사진이라면 가능하다. 혹시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마음만은 뿌듯하다. 


이럴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떨어진 나뭇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면서 나뭇잎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초록이었던 잎색을 붉게 물들인 단풍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이라 '풍이'라고 이름을 붙여준다. 그럼 이제 길에 떨어져 말라 버리면 지나가는 차들에 치이거나 사람들 발에 걸리면서 부서질 걱정이 없다. 풍이는 그렇게 나와 함께 나의 집으로 가게 되고 집에 도착하면 두꺼운 책 하나를 꺼내 그 사이에 풍이를 넣어둔다. 


앞으로 어느 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느 날 문득 그 페이지를 열었을 때 풍이는 길가에 떨어진 한낱 흔한 단풍이 아니라 특별해진 단풍잎이 되어 있다. 빳빳하게 잘 말려진 풍이는 나의 손에서 누군가의 손으로 전해지면서 나와 인연이 다한다. 

처음엔 독도가 그랬다. 주민이 되기 전까지 그냥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에만 의미를 다 했다면, 이젠 내가 독도 주민이 되면서 독도가 조금 더 큰 의미를 가진 섬이 되었다. 한 번 다녀왔기에 특별한 섬이라고 생각했지만, 섬이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다른 섬을 다녀와서도 독도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독도는 나에게 주민증을 내어주었고, 나는 독도의 주민이 되었다. 그렇게 주민이 되어 버리면 '풍이'처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나라 수많은 섬들 중 하나가 아니라 이제 나의 고장이 되었고, 나의 마을이 되었다. 의미가 거창하고 오글거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재 나의 마음을 표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민증을 만드는 짧은 시간은 이제 나의 인생에서 긴 울림을 줄 예정이다. (다녀와서 이야길 해도 될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독도 주민증을 들고 신분증으로 사용할 뻔 한 실수가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만물상 전망대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고 싶으면 여길 추천 합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마시면서 귀로 듣기 좋은 곳이라 날씨만 좋다면 이곳에서 시간을 머물러도 좋을 것 같다. 커피를 한잔 들고 그저 내다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 좋은 곳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숙박을 하면서 아침부터 이 장관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공원을 품은 숙소에서 일어났다면 이곳에 묶고 있는 사람들은 바다를 품은 숙소에서 눈을 뜬 것이다. 우리도 첫날엔 바다를 보면서 일어났기에 아쉽지는 않았지만, 이 절경은 내가 본 풍경이랑 너무 달랐다.


인공적인 건물이 보이지 않는 곳. 멀리 절벽은 깎아지는 듯 가파르게 자리하고 있다. 그 틈을 메우듯 풀들과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절벽의 가파름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는 풀들이나 꽃은 제법 용기 있는 친구들이었다. 조금 완만한 언덕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계절의 힘을 받아 더욱 초록의 실크로 언덕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이렇게 한눈에 하늘의 맑은 색과 바다의 색, 절벽의 흙 빛과 거길 덮고 있는 풀색이 들어온다. 거기에 구름이 한몫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풍경을 자랑한다. 그걸 보고 있으니 어찌 쉽게 발을 떨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한참을 경치에 취해 벗어날 수 없어서 발이 묶여 있다가 풀려났다. 여전히 다음의 목적지는 없었지만 한번 시선을 자연에 뺏기다 보니 더 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조금 높은 곳에서 더 멀리까지 보고 싶어 다음 목적지를 태하등대로 정하고 자리를 떠났다. 만약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이후로도 한참을 그곳에서 머물렀을지 모른다. 


전망대에서 다시 전망대로 가는 게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울릉도의 좋은 날씨는 울릉도를 마음껏 즐기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의 목적지도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누구는 보고 싶어도 없는 최고의 자연을 마음껏 누릴 있으니 오늘은 끝까지 이렇게 울릉도를 탐험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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