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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Feb 28. 2024

안녕, 잘 있어. 또 올게

섬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배가 달랐다. 조금 더 놀고 싶은 마음에서 다른 배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차는 우리가 탄 배로 싣고 내리기 때문에 포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도 쉽게 승선할 수 있었고, 울진에서 내리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에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입도할 때의 선착장이 아닌 다른 곳에 내리는 배를 예매했고, 발권하면서 친구들이랑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조정을 마쳤다.


한두 시간의 머무름이 아쉽기 때문에 귀찮아도 이렇게 계획을 세웠다. 만양 우리가 울릉도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배를 같은 선사로 했다면 조금은 이른 시간에 울릉도에서 나가는 배를 타야 했을지 모른다. 배도 비행기처럼 손님을 모시고 울릉도를 들어오면 간단히 객실을 정비하고 청소하는 시간을 가진 뒤 울릉도에서 나가는 사람들을 태워서 나가는 스케줄이다,


우리의 울릉도를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빨리 울릉도에 배가 들어가는 선사였다. 객실에서 밤을 잘 수 있으니 좋은 조건의 스케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배는 조금 특별하게 샀다. 울릉도에 몇 시간이라도 더 있어 보겠다는 계획은 환상적으로 들어맞았다. 울릉도에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쾌적한 객실을 예약했고 네 명이서 한 방에서 잘 수 있는 객실을 배정받았다. 


물론 그렇게 배정받은 방에 각자의 짐만 던져놓고 우리는 객실에서 모두 빠져나와 배의 갑판으로 모여들었다


 

울릉도에 들어간다는 들뜬 마음으로 배에 처음 올랐을 땐, 음악과 노래가 쉴 새 없이 우리의 흥을 북돋아 줬다면 울릉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른 배는 너무나 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아마 울릉도에서 나가는 사람 대부분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 흥이 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 타는 배는 조금 신기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울릉도를 들어갈 때와 거의 비슷한 모양의 배였고, 내부의 시설이 조금 다른 거 말곤 거의 같았다. 하지만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기차를 타다 보면 입석표를 가지고 탄 사람들이 좌석을 못 구해서 복도나 통로칸에 앉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런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기차도 아닌데 이렇게 큰 배에 자리가 없어서 그렇지 않은 거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복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정보가 있었는지 충전기를 연결할 수 있는 콘센트와 창문이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돗자리를 펴놓고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복도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피곤함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고자 각자의 자리에 최대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장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보았던 돗자리뿐만 아니라 작은 담요와 에어 베개까지 동원하며 각자의 여정 끝에 지친 몸을 장비들에게 맡겼다. 


이런 상황이 되자 울릉도에 들어가는 배는 노래와 춤의 분위기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배는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어쩌면 난전에 가까운 모습이기도 했다. 객실이 조금 부족한 탓이었는지 다인실이 많아서였는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복도에 자리를 하고 있었고 처음엔 호기심으로 다녔던 선실 내부가 사람들로 가득 차면서 부산스럽고 복도를 걸어 다니기 어려워졌다.

그들을 피해 어느새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한 번에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네 명이 모였다. 항상 하루에 일정을 마치고 네 명이서 숙소에 들어올 때면 맥주나 가벼운 간식 같은 것들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배위에선 특별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미리 사온 작은 간식들과 음료수를 마시면서 여행에 기억들을 정리했다. 물론 사진들 도주고 받으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못한 게 더 많은 여행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노트북까지 챙겨 오면서 일을 하려고 했지만 친구들과의 수다와 울릉도의 매력에 빠져 단 한 번도 노트북을 가방에서 꺼낸 적이 없었다. 책을 챙기기도 했다. 


원래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여행 권태기 같은 게 생기기도 한다. 꼭 긴 여행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모두가 잠든 밤엔 내가 잠이 들지 않을 수 있고 모두가 밖으로 갈 나갈 때 나는 혼자 집에 있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을 보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도 작은 책 한 권을 챙겨 왔다. 이 또한 무용지물이었다. 장르 없는 대화와 눈뜨면 울릉도 여행을 했던 그 시간 속에 책이 자리 잡을 틈은 없었다. 심지어 카페를 갈 때도 전혀 책에 대한 생각은 나질 않았다.

이번 여행은 나에겐 조금 특별한 느낌의 여행이었다.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내가 기획하고 이동하고 구입했었는데, 이번 여행에선 내가 당당히 뒷짐을 지고 있어도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웠다.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먹고 즐기고 누렸다. 이게 다 친구 덕분이다.


여행 내내 운전을 담당했던 친구는 어쩌면 정말 많은 체력을 소진했을지 모른다. 본인에 안전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만 했고 일정상의 운전이라는 아주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그래서 늘 고맙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 고마움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 내가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친구는 바로 고리의 역할을 하는 친구이다. 모두와 친한 그 친구는 늘 사람 좋은 웃음으로 우리를 연결시켜 줬다. '친하고 덜 친하고'의  문제보다 역시나 분위기를 띄우는 게 중요하고, 릴랙스 시키는 힘이 있었다. 힘들어도 서로 웃으면서 힘듦을 이겨 내려고 했다.


여행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추진력 있게 행동했던 친구는 일찍 번 아웃이 왔다. 여행 메이트가 아닌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해야만 했던 친구들 중에서 가장 결단력이 있던 친구. 그래서 우리가 아마도 여행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친구의 한마디가 아니었으면 그저 그런 여름휴가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물론 친구들에겐 따로 인사를 전했지만 내가 쓴 글은 잘 안 읽어 본다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읽어 보면서 여행에 이야길 꺼내면 친구들은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었다. 벌써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이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살 수는 없다. 나 역시나 이렇게 작은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다 기억하지 못했던 이야기 들인데,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 어떻게 추억을 기억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런 여행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또 한 번의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전혀 가 본 적이 없는 특별한 섬으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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