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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Feb 20. 2024

용산책문구(독도문방구)

여행을 하는 네 명의 친구 중에 세 명이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연락을 하며 지내온 터라 어른이 되어 같이 여행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뭐 굳이 따지자면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술 한잔을 먹고 싶을 때 연락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 늙어가는 이 시간이 덜 외로운 것이 사실이다. 


제목에 언급한 '용산책문구점'은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에 있던 가장 큰 문구점이었다. 초등학교 정문을 두고 양쪽으로 문구류와 간단한 분식을 팔았던 가게들이 서너 개쯤 있었는데, 생겼다가 없어지고 그러면서 그 수는 변동이 있었다. 하지만 '학생사', '용산책문구점'이라고 하는 두 곳은 학교가 생길 때부터 자리하고 있었다는 오래된 가게였다. 내가 11회 졸업생이었으니 초등학교 1학년 때 5년 정도 된 가게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 가게는 어린 시절 내가 느끼던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곳이었다.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문제집이 출판사 별로 있었고, 문구류는 말할 것도 없이 다 있었으며 심지어 작은 과자들도 종류별로 있어서 절대 그냥 지나 칠 수 없는 매력적인 가게였다. 밖에서 보는 가게 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욱 큰 공간이 있어서 엄청 넓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맞벌이로 우리 형제를 키웠기 때문에 평소 준비물을 잘 챙길 수 없던 우리 형제는 용산책문구점에서 외상으로 준비물을 가져가고 나중에 어머니께서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드리는 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군것질거리나 게임기에 들어가는 돈을 외상 할 수 없었으니 아침에 머리맡에 놓인 용돈을 사용했고, 준비물처럼 가격이 정해져 있고 물건으로 그게 증명이 될 수 있는 것에서만 외상이 되는 것 같았다. 아침 등굣길에는 큰 평상에 물건을 두고 팔았지만 하교시간에는 그 물건들이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공간이 생긴다. 큰 평상 옆에서 동생은 작은 오락 게임기에 한참을 앉아서 게임을 했고, 나는 친구들과 그 평상 위에서 동그란 딱지를 가지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독도문방구

독도 문방구는 그 이름처럼 작은 문구류를 파는 곳처럼 보였다. 울릉도에서 학용품을 파는 곳이 여긴가 하고 들어간 곳이었다. 진짜 너무 모르고 온 건지 그곳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문방구가 아니었고 울릉도와 독도의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장기 여행이라 마그넷이나 스타벅스 머그컵을 사들고 다닐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방의 무게가 여행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가방의 무게를 경계해야만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기념품들이 그렇게도 눈에 밟힌다. 


그나마 내가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기념품으로 엽서가 있었는데, 사서 바로 집에 부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점점 더 물건을 집어 들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번 여행을 달랐다. 울릉도에서 집으로 바로 가기도 하고, 타고 다니는 차에 기념품을 실어두면 되기에 조금 욕심이 부려보기로 하고 물건을 집었다. 


생각보다 종류가 많이 있어서 놀랬다. 머그와 엽서 그리고 각종 인형들까지 없는 게 없었다. 그리고 가게를 기념할 수 있는 스티커들도 다양하게 있었는데, 그냥 가지고 갈 수 있게 둔 것이라 학원 학생들을 위해 몇 장 집어 들었다. 

나는 연필과 지우개처럼 학용품에 먼저 눈이 갔다. 친구들이나 동생을 위해서는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독도 소수를 몇 병 구입했고, 호박엿도 구매를 마쳤다. 아이들은 마땅히 좋아하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만 하다가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구입을 하지 못했었다.


여길 들어오길 잘한 것 같다.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노트 몇 권을 보는데 한 번에 학생들에게 딱 맞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개들 집어 들고 계산을 마쳤다. 잘 샀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오는데, 나오면서도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가게로 들어갔는데,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엽서가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엽서를 집으로 보냈다. 가끔 내가 보낸 엽서를 보고 있으면 그곳에서 내가 겪은 일들도 생각이 나고, 어렵게 우체국을 찾아 안 되는 영어로 손짓 발짓을 섞어가면서 보낸 것도 무사히 집으로 보내졌을 때의 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도 집으로 보낼 엽서를 하나 골라잡았다. 

일부터 독도를 다녀온 기념으로 독도에 관련된 엽서를 골랐고, 몇 글자 적으면서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잘 넣어 두었다. 나오면서 작은 지 피츠를 집어 들었다가 괜히 할 것도 아닌 거 같은 마음에 다시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가게가 그리 크지 않아 금방 둘러보고 나올 수 있는 자리였고, 우리가 들어갈 때 몇 없던 손님은 우리가 계산하고 나올 쯤엔 꽤나 많아졌다. 다 사기도 했지만 점점 좁아지는 공간에 2인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는 스스로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왔다. 

울릉도 여형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긴 하지만 또다시 오징어 볶음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이건 다녀와서 사족을 붙이자면 나는 그 이후로 오징어 두루치기는 전혀 먹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왠지 울릉도에서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따뜻한 음식 같아서 밥도 두 공기나 먹고 남은 양념도 삭삭 긁어서 밥을 비벼 먹었다. 


뭔가 익숙한 가게 문에 이끌러 들어간 문방구는 나의 친구들과 초등학교 그 시절의 장소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학교 앞 작은 문구점에 들러 학교하고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놀다 보면 친구들을 하나 둘 집으로 가고 우리 형제만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는 엄마가 조금 더 늦게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에 잠긴다. 울릉도의 작은 문방구 하나가 이렇게 감성적이었다고, 이런 생각까지 하는지 모르겠만 작은 문구점 덕분에 친구들과 그때 이야기로 하고, 어릴 적 생각도 나는 그런 촉매가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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