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풋살장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집트는 모래가 가득한 사막이 떠오르는 도시임엔 들림이 없다. 실제로 모래사막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다합이라는 도시는 전혀 사막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생겼고, 우리나라 작은 어촌마을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맞다 딱 그렇게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봐도 수도 카이로에서 차로 한참을 달려와야 할 정도로 먼 거리에 있고, 다합에서 나가는 버스는 진짜 하루에 두 세대 밖에 없는 시골 중에서도 깡 촌이다.
그럼에도 바닷가에 많은 카페들과 식당은 시종일관 장사가 잘 되는 게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불편한 교통이 오히려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 뒤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막아주는 개미지옥과 같은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않아서 몰랐을 뿐.
이곳에서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뭐라도 인프라가 있으면 좋겠는데, 막상 이곳에 도착해서 하루를 둘러보고 나면 이곳에서 물놀이 말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이 생기게 된다. 그나마 바다가 가까이 있고, 해변이 가까이 있다는 장점이 유일한 장점인 곳이지 때문이다.
개미지옥과 같은 이곳에서 한참을 묶여 지내다 보면 다른 재미있는 것을 찾아다니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축구다. 축구는 하고 싶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물론 공이 없이 못하는 운동이지만 공이 있다고 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다. 경기는 사람이 숫자가 맞아야지만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여느 스포츠가 그렇듯 풋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만 경기를 할 수 있다. 적은 수의 인원도 아니고 열이 이나 되는 사람을 모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다합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이다. 단언컨대 사람이 없어서 경기를 못하는 경우는 다합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은 소위 스포츠를 좋아하고 '운동짱'들만 모여 있다. 운동을 사랑하는 사람에서부터 특전사 출신, 소방공무원 준비생, 스쿠버 강사 등등 몸 쓰는 일을 주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경기를 함께 뛸 사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만 걱정하면 된다.
지금에서야 여자분들도 축구를 많이 하는 분위기지만 그때엔 주로 남자들의 스포츠로 여기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풋살 하는 날이 되면 풋살장으로 서너 팀 인원에 해당하는 15명-20명이 모여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많아서 경기를 할 수 있는 것까진 좋은데, 사람이 많아지면 조금 아쉬운 게 내가 뛸 수 있는 시간이 조금 짧아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함께 땀 흘리고 뛰어다니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버린다. 만약 4팀이 만들어지는 날이면 한 경기씩 정도만 뛰면 시간이 넘어가 버리기도 한다. 경기장은 시간당 대여를 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으로 사용하는데, 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면 한 번씩만 뛰어도 금방 시간이 간다.
언제나 결승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적극적인 편이다. 여행이 사람들로 하여금 적극성을 북돋아주는지, 원래 적극적인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성격들이 아주 좋은 편이다. 그런 성격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그 사람들이 모여있는 와중에 풋살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은 승부욕도 강한 편이다. 그럼 적극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사람들이 모이면 어떨게 될까?
매주 정해진 날엔 꼭 풋살경기가 있다. 여행지의 특성에 따라 내일을 알 수 없는 배낭여행자은 팀이라는 것을 만들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여행하는 사람들과 팀을 만드는 것이 아이러니겠지만 경기를 마치고 다음 경기가 오기 전에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거나 이곳으로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매주 팀은 새로운 멤버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오늘의 최고 팀도 다음주가 되면 사라지고 없다. 승부욕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 말곤 전혀 같음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경기를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이기고 싶어 하니 경기가 있는 매주 결승전과 같은 열기를 가지고 승부를 가린다.
다음 주엔 같은 팀으로 경기를 할 수 없으니 오늘 만난 팀원들과 최대의 호흡을 맞추고, 경기를 많이 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을 최대로 활용한다. 운이 좋으면 4팀이 4강전과 결승전을 한 번에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를 연상시킨다.
경기는 경기일뿐
그렇다고 챔피언스 리그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승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날의 영광이 있을 뿐이다. 축구를 한다고 해서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다. 경기장을 나와 끈끈한 팀워크를 과시하며 맥주를 파는 식당을 찾아 뒤풀이를 하거나 화덕 피자집에서 피자 몇 판 사들고 집에서 모이기도 한다. 맥주 가게에서 맥주를 사고, 음료도 사서 친구들 집에 모여 한 잔 하는 그 시간이 경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축구라는 스포츠의 장점을 살려 여행지의 낯섦과 어색함을 한 번에 씻어 낼 수 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팀을 이루어서 협동하다 보면 어느새 친해진 동료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원피스라는 만화에서 '내 동료가 돼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웃옷을 입은 팀과 안 입은 팀은 이미 동료가 되어 있다. (형광 조끼가 없어서 팀 구별은 윗 옷을 입는 팀과 안 입은 팀으로 나눈다.) 그렇게 한 팀으로 뛰고 나면 일주일이 즐거워진다.
처음 이곳에 온 사람들과의 즐거운 운동. 그리고 완벽한 뒤풀이까지 마치고 나면 둘도 없는 동료가 된다. 친구가 된다. 친한 형제가 된다. 그렇게 다합 생활에 분위기가 더 좋아지는 것이다. 여행이 더 즐거워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