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빈둥
What is this?
이집트에서 다합까지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라면 하루 이틀 다합을 보기 위해 오늘 사람들은 적다. 이집트에서 바다가 있고, 한국인이 많이 있는 다합은 여행자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만약 한국에서부터 이집트를 여행하고자 하려고 온 사람들은 여행 가방에 한국에서부터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식재료를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여행의 장기전을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처럼 다른 나라를 거쳐 이곳 다합까지 흘러들어 온 사람들도 물론 가방 가득 음식으로 가득 차있다. 우선 내 가방엔 아프리카 여행에서 장만한 미역이 들어있다. 미역을 최우선으로 들고 다니는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 미역국이기 때문이다. 어떠면 다른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이기 때문이라 미역을 들고 다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볍고 부피를 덜 차지하기 때문에 들고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미역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다.
시험 전날에도 생일이면 미역국을 먹고 갈 정도로 좋아하고, 마땅히 집에 밥이 없을 땐 미역국을 끓여 먹는 사람이 바로 '나' 다. 미역의 장점은 수십 개가 넘지만 외국에서 미역국은 대단히 건강하고 가벼운 음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트에 고기는 늘 있으니 국거리용으로 나온 조금 저렴한 고기를 사다가 끓이기만 하면 점점 맛있어지는 마법의 국. 일단 부피가 작고 가벼워서 배낭을 메고 다니는 배낭여행자의 입장에서 효율적인 음식이 아닐 수 없다.
토마토나 닭을 이용한 국물요리를 많이 먹는 외국은 내가 끓이는 미역국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로 이상한 사람으로 보거나(원래 이상한 것일지도....) 괴식을 먹는 아시안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투숙객 중에서 나만 한국 사람이라면 아무도 없는 시간에 미역국을 끓여놓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가 먹을 때에 꺼내서 데워 먹는다. 한국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같이 끓여 먹기도 한다. 그럼 눈치도 덜 보이지만 맛있게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합에서 먹는 한국인의 밥상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다합에 살고 있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모든 음식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지금은 유튜브가 활성화되어 있고 데이터를 마음껏 쓸 수 있어서 수 만 가지 레시피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지만 코로나 이전에 여행을 했던 나는 블로그에 글로 묘사되어 있는 레시피를 따라 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레시피들도 나름 유용하긴 했다. 쉽게 맛을 낼 수 있는 '콜라찜닭' 해산물이 많은 곳에서 먹을 수 있는 '짬뽕',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피클이나 김치는 생활 꿀팁이라고 할 수 있다.
미역국은 한정된 미역의 양 때문에 자주 먹을 수는 없지만 같이 사는 룸메이트들의 생일이 오면 어김없이 끓여 먹는 것이 바로 미역국이다.
미역국 레시피
1) 미역을 물에 불린다. (물에 불순물이 있을 수 있으니 꼭 생수로 불린다.)
2) 미역이 불을 동안 소고기의 핏물을 닦아내고 속이 깊은 냄비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볶는다.
3) 고기가 볶아지고, 미역이 불었다면 미역에 물기를 짜서 고기를 볶던 냄비에 미역을 넣고 같이 볶으면서 간장을 살짝 넣는다.(많이 넣으면 국물색이 변함) 간장이 없으면 피시소스를 넣어도 됨
4) 어느 정도 볶았다면(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 미역을 불렸던 물을 넣어준다. 양이 적다면 생수를 조금 더 넣어준다.
5) 국물의 양을 맞추고 소금을 넣어 간을 한다.
6) 한소끔 끓고 나면 맛있는 밥과 함께 먹으면 된다.
미역국만 먹어도 든든한 한식이 된다. 평일은 이렇게 미역국이랑 김치나 깍두기로 밥을 먹는다면 가끔 행운의 날이 찾아오기도 한다. 다합에 새로운 사람이 오거나 카이로에서 도착한 사람들이 있다면 가방에 소주 몇 병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90퍼센트가 된다. 이런 날엔 특별하게 소주 안주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콜라찜닭
1) 다합 시장에서 닭을 한 마리 산다. (바로 잡아주는 집이 있다면 그곳에서 사고, 없다면 냉동닭) 마늘은 많이 사면 좋고, 매운 고추와 감자를 같이 구입한다. 다합 정류장 앞에 있는 마켓에 가면 당면을 구할 수 있는데, 옵션이니 없어도 된다.
2) 콜라는 어떤 브랜드를 사용해도 같은 맛
3) 사온 닭은 깨끗이 씻어 칼이나 가위를 이용해서 조각으로 잘라낸다. 생닭이라면 주인아저씨께 잘라 달라고 하고 내용이면 순살을 사는 걸 추천
4) 닭은 씻고 물을 받아 끓이고 물이 끓어 올라 거품이 생기면 5분 정도 기다렸다가 불을 끄고 물을 버린다.
5) 닭을 다시 냄비에 넣고 콜라를 냄비가 찰 정도로 붓는다. 간장으로 간을 하면 된다.
6) 콜라의 탄산이 다 날아갈 정도로 끓으면 감자를 8등분 해서 넣고 마늘을 다져 넣는다.
7) 감자가 어느 정도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찔려보다가 익었으면 매운 고추 조금을 넣고 후추를 뿌린다.
8) 맛있게 먹는다.
찜닭은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닭을 사러 마트에도 다녀와야 한다. 비용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음식이라 특별한 이벤트가 생기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밥도둑이라 밥이랑 먹어도 좋고, 다합에서 다른 집에 초대를 받을 때 만들어가기 좋은 음식이다.
특별한 재료가 필요한 떡볶이는 우연한 호기심에서 만들게 되었다. 워낙 많은 음식을 만들어 먹다가 보니 떡이 없는 이곳에서도 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경험이 있어 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에서였다.
역시나 난관은 떡을 만드는 일부터였다. 밀떡파 살떡파 고민을 하는 건 사치였다. 쌀을 구하기 어려운 외국에서 밀가루로 만드는 방법 말곤 효율적인 방법이 없다. 밀가루를 사서 뜨거운 물을 넣어가며 익반죽을 만들었다. 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익반죽을 해야 하는데, 태어나서 익반죽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나는 무척이나 어렵게 반죽을 했다.
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으니 생각보다 많이 질척이고 손에 달라붙는다. 손에 달라붙은 반죽을 떼어내고 다시 뭉치기를 수십 번 반복했을 때 비로소 반죽이 슬슬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익반죽의 묘미는 식감에 있으니 반죽이 최대한 쫄깃하고 맛있을 수 있게 괴롭혀(?) 줘야 한다. 쉴 새 없이 치댄 반죽이 어느 정도 쫀득함을 보일 때 가래떡을 만들어내 듯 길게 들려주면 떡을 만드는 일은 끝이 난다. 마지막으로 떡이 굳을 수 있도록 적당하게 잘라낸 떡을 기름을 발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떡볶이 레시피
1) 고추장을 구했을 때 이 모든 일이 가능해진다.
2) 고추장과 고춧가루, 설탕, 소금으로 양념을 만든다.
3) 원하는 정도의 맛이 만들어졌다면 물에 양념을 풀고 채소를 먼저 넣고 끓인다.
4) 양배추와 대파가 잘 익어가면 냉장고에 있던 떡을 하나씩 떼어 낸 다음 국물에 넣는다.
5) 떡이 있었다면 불을 끄고 맛있게 먹는다.
아무래도 국민간식인 떡볶이는 더 맛있는 레시피가 있기 때문에 나의 간단 레시피는 외국에 있을 때만 해 먹는 걸로 하고, 다합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밥을 만들어 먹는 방법을 설명했다. 행복하고 즐거운 다합생활이라는 게 별 것 없는 것이다. 하루 한 끼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요즘 예능에서 외국에 식당을 차려 한식을 알리는 프로그램이 있던데, 외국인에게 콜라찜닭을 알려준 나도 시민 외교관 정도로 숟가락을 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