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이 없던 하루하루에 갑작스럽게 바쁨이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체육대회라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나선 하루가 진짜 짧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우린 준비라는 핑계를 대면서 매일 저녁 모여서 놀기 바빴다. 사실 매일 모여 놀기만 했던 건 아니다. 다들 하고 싶은 체육대회 종목을 찾아왔다.
예능에서 봤던 거, 학창시설 학교에서 해봤던 것까지 모든 자료를 조사해 왔다. 그렇게 아이디어가 들어오면 큰 종이에 옮겨 다 쓰고, 까먹지 않게 정리를 해두었다. 한국이 아니라 거창한 체육대회를 기획하더라도 막상 필요한 준비물은 생각해 보면 포기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았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마음을 들뜨고 즐거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적극적이었고, 아주 협조적이었다. 마음이 같으니 하는 일이 척척 진행되고 순차적으로 완성되어 갔다.
1. 사람 모으기
당연히 체육대회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홍보를 했기 때문에, 다합에 있거나 다합을 오려고 계획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일단 글을 올렸다. 사람들이 읽어 보고 흥미가 있도록 글을 썼다. 많이 모이면 모아지는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대회를 진행하려고 했다.
카카오 톡에 올린 글의 반응이 좋았다. 다합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반응이 나타났다. 보이는 반응이 좋아서 현장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대표 다이빙 샵으로 나가서 사람들이 다이빙 가기 전 준비를 하는 시간에 홍보를 했다. 각 숙소에 인원들에게도 홍보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빵집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여야만 즐거운 체육대회를 진행할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시간을 많이 들여 홍보했다. 빵집과 핼스장이 있는 건물 일층에 손으로 쓴 대자보를 붙이고 접수비를 받고 명단을 작성했다. 만원이 안 되는 돈을 받고 이름을 적었다.
2. 대회 일정 잡기
추석이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외국에서 보내는 추석은 몇 번이나 된 것 같지만 이번엔 조금 더 즐거운 추석이 되는 것 같아 즐거웠다. 사람들에게 추석에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모두 힘을 얻는 것 같았다.
H5에 다시 모였다. H5는 우리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원래 한영호의 집이지만 그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나까지 합류하면서 두 손가락을 다 써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이 모였다. 한마디 씩 해도 하루가 다 갈 정도로 사람이 많이 있지만 우선 체육대회 준비를 먼저 해야 했다.
각자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프로그램을 공유했다. 림보, 티슈불기, OX 퀴즈, 짧은 노래 맞추기, 줄넘기, 짝피구, 풍선 터트리기, 빼빼로 게임, 커플 손 맞추기, 눈치게임, 고깔고깔, 모여라 게임, 몸으로 말해요, 미션 달리기, 맥주 빨리 마시기, 신문지 버티기 등 참으로 의견이 다양했다.
현실적으로 준비물을 구할 수 있고 사람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게임을 중심으로 선택했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체할 게임도 몇 가지 준비했다. 플렌 B까지 세워야 했기 때문에 회의는 길어지고 한참 동안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정리만 해야 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비가 올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점에선 한 가지 우려를 덜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비가 오면 계획을 이룰 수 없으니 일단 날씨가 좋다는 것만으로도 큰 걱정은 덜어 놓은 셈이다. 소요될 시간을 분배하면서 게임을 넣고 빼기를 반복하다 보니 하루가 다 가버렸다. 진짜 진심인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3. 장소 예약 준비물 구입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정이 어느 정도 가시적으로 나오자 장소 섭외를 해야 했다. 이곳은 운동장의 개념이 따로 없고,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풋살을 하는 풋살장이 최고의 운동장이었다. 한국 날짜로는 추석 당일이지만 이집트 날짜는 일단 평일이지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평일이라 빌리기 쉬웠다. (장소 섭외 끝)
인원이 확정된 날.(인원 모집 끝)
시장으로 가서 준비물은 구입하기 시작했다. 게임에 필요한 림보 막대, 줄넘기 줄, 풍선. 스케치북, 네임펜, 매직처럼 다합에서 구할 수 있을까 싶은 물건을 샀다. 아니 외국 여행을 하면서 왜 살까 하는 물건을 샀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도 학교가 있으니 문구점 같은 곳이 있었고, 우리가 사려고 한 거의 모든 재료가 있었다. 주인은 우리 같은 외국인이 대량으로 구입하는 일이 처음이었을 텐데 적극적으로 준비해 주셨다. 이 모든 일이 다행이었다. 다만 신문지나 줄다리기할 줄은 따로 철물점 같은 곳이 있어서 따로 구입했고 상자에 담아 정리했다.
다음은 음식이다. 대회에 필요한 소품을 다 준비했고, 사람들이 모였을 때 필요한 음식이 준비되어야 했다. 잔치에 음식이 빠질 수 있을까? 한국인이라면 추석날을 그냥 보낼 수 없으니 푸짐하게 준비할 예정이었다. 접수비를 받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물론 준비물을 사는 것에 대부분의 돈을 쓰겠다 생각을 했지만 준비물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다행히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우선 매인 메뉴인 전기구이 닭을 예약주문했다. 시장에 위치한 가게에서 예약해야만 했는데, 이집트 식으로 조리되었지만 구이 닭의 맛의 거의 동일하다고 봐도 무관 할 정도로 비슷한 맛을 내는 음식이었다. 혹시나 해서 예약을 하는 날 직접 먹어보고 맛이 다른가 비교도 했다. 특별히 들어가는 향신료도 없고, 맛의 차이도 크게 없어서 닭을 미리 주문해 뒀다.
제일 중요한 맥주는 H5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기로 이야길 해뒀다. 워낙 자주 사 먹는 우리들이라 사장님이랑 어느새 친구가 되었고, 맥주를 살 테니 물을 얼려달라고 했는데, 우리가 부탁하니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물과 술까지 준비 완료.
P.S. 혹시나 시간이 남을까 봐 준비한 퀴즈 대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