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이 되었다. 드디어 준비하고 고민했던 채육대회 시작 날이다.
사실 시작 전부터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참여 신청을 했지만 아파서 환불을 하겠다는 사람도 생기고 물질하러 가야 한다며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며칠 전부터 이야기했었는데 말이다) 예약된 일정이 있다면서 참석하지 않은 절친들도 있었다. 원래 인원보다 그 수가 적어지며 뭔가 불길하고 느낌이 안 좋았지만 느낌으로 일을 진행할 수 없으니 일단 운동장으로 출발했다.
날씨 걱정은 없었다. 늘 맑음을 유지하고 있는 다합에서 날씨를 걱정하는 것은 과민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조장들과 함께 맑은 날씨 속에서 운동장에 도착한 우리는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져온 준비물은 바닥에 놓고 빠진 게 있는지 정리했다. 예약한 음식과 술은 들고 움직이기 어려우니 다른 조장들은 택시를 빌려 시작에 들었다가 전기 구이 통닭을 찾아오는 길에 맥주와 물을 준비해서 가지고 왔다.
준비는 끝. 이제 시작이다.
1. 지금부터 제1회 다합 체육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50여 명의 한국인들이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물에 갔다가 오는 시간에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늦어지면 경기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당겼더니 많은 사람들이 아직 물속에 있었다. 당연히 강사들은 소속이 있으니 쉽게 올 수 없었고, 같이 물에 들어간 사람들도 아직은 도착하지 않았다. 시작 인원이 조금 모자랐다.
시간이 지나자 초록색 인조잔디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일단 못 오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시작하기 위해 도착하는 사람부터 미리 짜둔 조장에게 인계 헸다. 입구에 인원을 파악하는 친구들은 이름을 물어보고 조장을 찾아 그곳에 조원을 합류시켰다.
모든 사람이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가질 순 없다. 조장을 맡은 이들도 그렇다. 만약 조장이 내성적이면 조원들 중에 외향적인 친구들이 자기소개를 이끌며 짧은 시간이지만 한 팀이 되어 체육대회를 진행해야 하는 사람들끼리 첫인사를 나누었다. 이것이 서로의 추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다소 이른 시간이라 걱정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 조금 지나자 속속 도착했고, 조별 조원들의 인원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정원이 다 출석한 조도 생겨나면서 지체 없이 체육대회는 막이 올렸다.
우리끼리 즐겁자고 하는 체육대회인데 다칠 수 있으니 일단 준비운동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거의 모든 사람이 체육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 다치는 사람은 없겠지만 준비운동만큼은 양보 없이 철저하게 했다.
준비 운동을 시작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림보 게임을 첫 게임으로 정했다. 아직 협동 게임을 하기엔 덜 친해진 조원들이라 일단 개인전의 성향이 강한 림보 게임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줄을 넘으면서 쉽게 하던 높이가 점점 낮아졌다. 역시 림보는 몸개그가 나와야 재미있기 시작한다. 림보는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 몸개그를 보여주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고, 원래 친했던 사람들도 있던 조원들도 허물없이 몸개그를 보여주는 사람을 보며 조금씩 경계가 풀리며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다음 경기인 단체 줄넘기를 하면서 서로를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안에 뛰는 사람을 봐야 하고 안에 있는 사람도 줄을 돌리는 사람과 함께 뛰는 사람들의 박자를 이해해야만 했다. 낯설었던 서로의 모습을 꾸준하게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회라 순위를 정 할 수 밖엔 없었지만 다들 친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모두 1등을 주고 싶었다.
한번 뛰고 나니 숨이 찬 사람들도 있어 앉아서 쉬면서 물도 마시고, 앉아서 보기만 해도 즐거운 게임을 넣었다. 커플 게임으로 선택한 게임인데, 눈 가리고 여자친구 손 맞추기 게임이었다. 다수의 인원은 자리에 앉아서 관전하고 다합 공식 커플들이 나와서 게임을 진행하면 되는 형식이라 이들을 잘 몰라도 볼거리가 많은 게임이었다.
사실 이 게임은 남자친구들이 눈을 가리고 자신의 여자친구 손을 찾는 게임으로 시계나 액세서리 없이 여자친구의 손을 맞추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남자에게 불리한 게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곧 다수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우린 함께 앉아 그들의 실수를 기대하며 시청했다. 맞추는 사람도 못 맞추는 사람도 있었지만 보는 우린 못 맞추는 상황이 더 즐거웠다.
'미션 달리기', '몸으로 말해요'처럼 단체 게임이 이어졌다. 조장은 조원들이 소외당하지 않게 모든 게임에 출전할 수 있도록 선수를 출전시켜야 했고,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 없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을 부탁했다. 조금은 힘든 일이 될 수 있었지만 기꺼이 부담을 받아줬다.
짝피구
준비된 게임은 점점 막바지도 다가갔다. 줄다리기가 끝나고, 중간 게임도 어느 정도 마칠 때쯤 우린 짝피구를 시작했다. 짝피구라는 게임이 초등학교에서 할 땐 진짜 재미가 없었다. 내 뒤에 있는 친구가 평소에 진짜 얄미운 애라서 꼭 공을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몸으론 내 짝이 공을 맞지 않게 막아줘야 했다. 우리 팀이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막긴 하지만 진짜 게임이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어른들 이하는 짝피구는 진짜 재미있었다. 남자건 여자건 막고 싶으면 앞에 섰고, 피하고 싶으면 뒤에 서면 된다. 내 짝은 오늘 여기서 처음 만나는 친구다 이 사람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이 있었지만 그걸 지금 물어보긴 시간이 너무 없다. 공은 순간적으로 나 옆을 스치고 내 뒤에 몸을 숨긴 짝이 공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가장 마지막 단체게임이라 그랬는지 짝피구는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게임이었다. 피하는 사람도 던지는 사람도 모두 진심이었다. 토너먼트 방식이라 게임을 안 하는 사람은 쉬면 되지만 게임을 보고 분석하고, 짝을 정하느라 바빴다. 체육대회에 온전히 몰입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게임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조장들에 말을 빌리자면 게임을 하는 동안 많은 썸이 있었다고 하니 게임의 진정성이 강했다고 할 수 있겠다.
맥주 빨리 마시기
원래 즐거울 땐 분위기를 봐서 다른 게임을 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게임장을 빌려놓은 시간이 있어서 아쉽게도 게임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게임으로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를 진행했다. 그동안 점수를 집계하고 시상을 하려면 더더욱 필요한 게임이었다.
다들 운동으로 목이 마를 때라 많이 기다렸던 터라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는 참가 신청율이 높은 게임이었다. 일단 성별로 나누어서 게임을 진행했는데, 역시 이 사람이 우승이라 생각한 사람이 우승한 경우도 있었고, 의외의 친구가 우승을 차지한 경우도 있어 보는 재미도 있었다. 번외 게임으로 진행한 조장의 맥주 빨리 마시기 게임은 조원들의 응원으로 그 열기가 더 했다.
분위기가 좋아져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치킨과 맥주, 음료수를 각 조로 나누어 주었다.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를 먼저 보여주면서 목이 마르게 한 뒤, 바로 맥주를 건넨 것이다. 게임을 함께 하면서 어느새 친해진 조원들과 자리에 함께 앉아 준비한 맥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경기 결과를 기다렸다.
시상
우승한 조, 가장 열심히 활동한 MVP를 뽑아 시상하고, 축하를 했다. 우승했든 하지 않았든 조장은 어느새 친해진 조원들과 사진을 찍었다. 함께 고생했고, 애쓴 친구들이었다. 동고동락이라고 해야 할 정도 함께했던 사람들이었다.
마무리
하루 유흥이 될 수도 있고, 심심한 차에 잘 놀았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괜히 참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의 여행에서 그날이 '최고의 날'이라 기억한다.
준비하는 모든 시간이 즐거웠고, 대회 내내 행복한 웃음으로 넘쳐났다.
심지어 끝나고 나서 다합에 거의 모든 사람이 친해진 마법이 일어났을 정도로 최고의 순간이었다.
함께 고생한 조장들이 고마웠고, 참여해 준 당시 여행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