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빙 시작 그리고 다시 시작
강사님과 몇 번의 다이빙을 나갔다. 첫날 설레는 마음은 이제 사라지고, 수심을 늘려야겠다는 다짐으로 다이빙 훈련을 했다. 다이빙을 시작하는 처음엔 한두 번 정도 배운다는 마음으로 잘 못해도 웃으면서 버디와 응원도하고 스스로 잘 되겠지라며 긍정적인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바다에 나가는 횟수가 늘어나도 매번 같은 수심을 찍고 나오는 날이 많아지면서 점점 강도 높은 훈련이 되어버렸다.
바다는 조금 특별한 공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보이는 수면 보다 안 보이는 해저가 더 깊은 공간을 가지고 있어 물 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의 풍경을 품고 있다. 풍경을 보기 위해 산을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바다를 조금 더 진하게 알아보기 위해선 직접 들어가서 바다를 즐기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낮은 파도에 배를 타며 즐기는 여행도 있지만, 얕은 바다의 산호를 보기 위해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도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바다에서 호흡하는 게 어느 정도 편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나의 버디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나와 버디를 함께하던 친구가 다이빙도중 귀에 압력을 조절하지 못해 더 이상 프리다이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걸 프리다이빙에서 '이퀄라이징'이라고 하는데, 깊은 바다를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동작을 해야 하는데, 비행기 이륙할 때나 높은 산을 올라가면 느끼게 되는 귀 먹먹함을 뚫어 내는 방법이랑 같다. 바닷물에 한참이나 귀를 담그고 있다가 보면 고막이 젖어 쉽게 이퀄라이징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다이빙을 하면 귀에 손상이 오는데, 이러한 고통이 생기게 되면 더 이상 프리다이빙을 이어나갈 수 없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버디는 이퀄라이징 문제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쉽고 함께 훈련하면서 전우애(?) 같은 것도 생겼는데, 함께 프리다이빙을 할 버디와 헤어졌기 때문에 당장 다이빙을 할 수 없어서 조금 대기를 해야 했다. 일정 조율을 이 헤 선생님은 서둘러 다른 반에 있던 학생을 구하고 있었고, 나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며칠의 시간을 보냈다. 걱정은 없었다. 워낙 사람이 많은 다합이라 나의 두 번째 버디는 다시 구해졌고, 그 친구의 트레이닝 기간 동안 함께 기초훈련을 다시 배우며 복습까지 마쳤다.
프리다이버 AIDA 레벨 2
드디어 내가 레벨 테스트를 하는 날이 되었다. 수면은 장판을 깔아 놓은 듯 평평했다. 수온이 조금 차게 느껴질 수는 있었지만 슈트를 입고 들어간 터라 채온이 급격하게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해변에서 호흡을 정리했다. 육지에서 해오던 호흡으로는 프리다이빙을 할 수 없으니 해수면에 떠서 바다에 맞는 호흡으로 정리했다.
한참 바다에 머리를 담그고 빼기를 여러 번, 어느 정도 바다에서 호흡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숨을 참고 다시 쉬고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 정도 바다에 적응도 했고. 수심 깊은 바다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수심 깊은 바다라 해봤자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 위를 가리킨다. 수심이 30-40미터 정도의 깊이를 가진 해안가의 바다라 많은 다이버들과 프리다이버들의 트레이닝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나도 스쿠버 다이빙을 이곳에서만 해도 5번 이상 했기 때문에 바닷속 풍경이 익숙한 곳이다.
코치와 버디는 나와 함께 부이를 잡고 바다 위에 떠있다. 바다엔 많은 선수들과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이 나와 있고, 우리도 그중에 하나였다. 부이는 선생님들마다 색이 조금씩 달라 밖에서 보면 색다른 풍경을 볼 수도 있다. 드디어 연습 다이빙.
손목에는 수심을 체크하는 시계를 차고 물 위에서 한참을 심호흡하고 나서야 속으로 들어간다. 시험을 치는 동안엔 신나는 기분을 느끼기보단 조금 집중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조금 여유과 편안함을 가지며 연습하려고 했다. 연습을 하면서도 왠지 프리다이빙을 즐기러 나온 게 아니라 시험을 치려고 나온 바다라 사뭇 어제까지의 바다와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버디와 함께 호흡하고 드디어 입수를 했다. 머리부터 들어가 핀을 신고 있는 발이 거꾸로 순서대로 입수되었다. 눈앞에 부이에서 내려오는 줄을 보여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중엔 틈틈이 귀에 압력을 맞춰 귀가 아프지 않게 조절했다. 마치 물구나무를 서는 자세처럼 머리가 아래로 향하며 천천히 바닥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한순간도 방심을 하면 안 되는 순간이다. 자칫 호흡을 잡고 있던 힘을 풀어버리면 머금고 있던 공기가 빠지게 되고 호흡이 틀어지면서 '블랙아웃'이 오게 된다. 블랙아웃은 쉽게 설명하자면, 뇌에 공기가 없어 기절상태가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공기가 뇌에 전달이 안되면서 자가 호흡을 잃고 기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고를 막고자 버디가 동행해야만 하는 스포츠다.
시험 중에 있는 시험 치는 수험생이지만 다합의 바다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나도 이제 공기통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프리다이빙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이 바다를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프리다이빙 자격이 있다고 혹은 없다고 해서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같은 겁쟁이는 자격증이 나에게
'너 이제 들어가서 물을 즐길 수 있어!!'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 자격증 수업을 시작한 것이다.
훈련 기간에 받았던 훈련이 나를 성장시켰을까? 물속에 들어가는 시간이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부이에서 내려오는 줄 하나만 바라보고 내려갔던 거지만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더 행복한 점은 올라올 때는 내려갈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혼자서 어두운 바다 깊숙이 내려갔다면 올라오는 길엔 나와 함께하는 버디가 같이 따라 올라온다.
호흡이 딱 모자랄 때쯤 버디를 발견한다. 내가 들어가고 얼마 되자 않아 버디가 뒤따라오는데, 혹시나 일어나지도 모르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함께한다. 올라오는 동안 버디는 나의 눈을 응시한다. 눈으로 하는 대화 같은 느낌이다. 내가 보내는 신호는 '괜찮다'라고 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럼 버디는 그런 나를 믿고 같이 올라오는 것이다.
프리다이빙의 매력
프리다이빙은 이 대목에서 가장 즐거운 스포츠가 된다. 스스로 기록을 위해 훈련하고 바다에서 경험을 쌓는 일이지만 나를 구해줄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것부터 기분 좋은 스포츠이다. 복식경기 같은 느낌이다.
짧은 동영상 몇 개를 보다가 알게 된 영상인데, 1등으로 달리던 동생이 무슨 일인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동생이 일어서지 못하는 걸 보고 뒤 따라 들어오던 형은 동생을 부축하며 함께 결승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동생을 형은 부축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3등으로 달리고 있던 선수는 이 둘을 지나쳐 1등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동생과 나란히 뛰던 형은 결승전 옆에서 동생을 먼저 들어가게 하고 본인은 뒤에 들어왔다.
스포츠라는 건 때론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동료가 옆에서 나란히 달려주는 것이 의미가 될 때도 있는 것이다. 물속은 물 밖의 세상과 다르게 홀로 버텨야 하는 시간이 존재한다. 그럴 때 버디가 함께 다이빙을 해준다면, 마주 보는 그 눈빛만으로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
하나 더 이야길 하자면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 속이 한 길로만 되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열 길이 되는 물속을 바라보는 것도 예전에 나였다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물 숙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장비도 딱히 없을 땐 프리다이빙이 최고인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면서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에 들어가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니 말이다. (반드시 버디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