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서른을 갓 넘은 한 청년은 세상을 조금 더 많이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준비합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돈을 모은다며 정신없이 살았고요. 보충수업, 방과 후 수업에 시험 감독까지 거의 돈이 되는 일은 도맡아 하다시피 하면서 벌 수 있는 대로 벌었죠.
"그렇게 그 청년은 여행을 잘 마쳤습니다."
해피앤딩이면 재미가 없겠죠?
신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머니 없이 혼자 계신 아버지가 폐암판정을 받으셨어요.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지만 새어 나오는 한숨은 어찌할 수 없었어요. 홀로 계신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꿈을 찾겠다고 출국 준비를 했던 아들의 불효를 못 마땅하게 여기셨던지.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러신 건지 신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청년은 열심히 사는 수밖엔 답이 없었죠. 다시 출근하고 방과 후 수업하고 시험 감독도 열심히 하면서 돈을 다시 모았어요.
신은 열심히 사는 그가 가엽긴 했던지 항암 치료에 들어간 아버지는 1년 만에 호전되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택시 운전을 다시 시작할 정도로 좋아지셨더라고요. 나아진 건강에 반비례해 청년이 가진 통장은 아버지의 수수비와 입원비 그리고 약 값으로 모두 써버리고 얼마 남지 않았지만요.
청년은 이제 어떤 꿈을 꾸어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젖어 패배감으로 물들어 갔어요. 뭘 할지도 모른 채 아버지 간호만 하다 일 년의 시간을 보냈죠.
2016년.
1년의 유예기간, 아버지의 완치.
모든 일이 청년에게 힘을 주고 있었지만 금전적인 문제게 부딪히고 나니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어요. 좌절과 절망에 늪에 빠졌다고 생각했지만 고난은 희망과 함께 온다고 했나요? 그 청년에게 찾아온 한 줄기 빛이 내려왔어요. 그건 바로 퇴직금.
10년이 채 안 되는 직장생활에서 남은 건 마지막 달에 들어올 월급과 일을 그만두면서 받게 되는 퇴직금. 중간에 정산을 받지 않아 생각보다 많이 쌓여 있었던 퇴직금은 청년이 떠날 수 있게 된 소중한 힘이었어요. 그의 꿈을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치워지고, 곳간을 채워 놓으니 떠날 날짜만 정하면 되었어요.
청년은 특별함이 없는 그저 그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청년이었어요. 특출 나는 외모를 가진 것도 언변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꾸준히 노력하고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스타일을 가진 청년은 나름 바쁜 생활 속에서도 지키던 습관 하나가 있었는데, 블로그 쓰는 일은 꼬박꼬박 하더라고요.
좋아하는 음악을 알리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소개도 했어요. 그렇다고 하루 방문자 수가 어마어마해서 인플루언서나 파워블로그로 선정되는 일은 없었지만 재미는 없지만 솔직하게 쓴 글을 읽어주는 몇몇 사람들 덕분에 블로그 하는 재미는 있었나 봐요. 이웃도 많이 생겼고요.
바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퇴직하고 삼 개월을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바로바로 정산받은 돈까지 야무지게 챙긴 그는 이제 세상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죠.
같은 해 6월.
충국의 칭다오에 땅을 밟으면서 아시아(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를 거치며 여행을 다녔죠. 3년이 넘는 시간을 외국에서 지내면서 다양한 사람, 신비로운 자연환경, 한국에서라면 쉽게 경험할 수 없을 액티비티 같은 첫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요.
혼자만 좋은 경험을 하던 청년은 아직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계신 동생이 눈에 밟혀 여행지를 옮길 때마다 엽서를 보냈죠. 작은 종이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그저 혼자 아버지를 돌봐야만 하는 동생에서 해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엽서만 쓴 건 아니었죠. 물론 블로그에 글을 매일 쓰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나름 블로그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나 봐요. 평상시 올리던 글은 이제 여행이야기로 바뀌었고,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글을 쓰기 시작해서 되도록이면 그 나라 혹은 그 도시 이야길 바로바로 알려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컸죠.
블로그 잘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고, 블로그 이름도 이야기기 해주시면서 응원을 받기도 했어요. 그 당시엔 프라이드도 있고, 고집도 있었던 시기였죠. 하루에 한 번 내가 여행하는 곳의 이야기는 꼭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꼬박꼬박 글을 써 올렸죠.
버스에서 강도를 만나 노트북과 돈을 뺏겨도 숙소 컴퓨터로 꾸준하게 써 올리던 블로그. 한국에서 돌아와 쿠바 여행기까지 올리고 나니 작은 목표하나를 이룬 듯 기뻤고, 뿌듯한 마음도 들었죠. 그렇게 그 청년은 꿈을 이루었죠.
2019년.
어떤 유명 여행 유투버가 방송에도 출연하기 시작했고, 본인의 활동범위를 서서히 넓히면서 예능을 촬영하기 시작했었죠. 그리고 그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으로만 보고 있는 청년이 있었죠.
청년은 그 방송인을 만난 적이 있어요. 인도 '바라나시'에서 말이죠. 그도 그렇게 인기가 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교성이 풍부했고, 괜찮은 사람이라 쉽게 이야길 시작했죠.
"블로그를 매일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네요."
"그렇죠. 저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데 이것도 쉽지 않네요."
"영상이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보나요? 아직 블로그가 더 인기 많을 텐데 블로그를 해보시는 건 어때요?"
"전 영상 쪽에 일 했던 사람이라 이게 더 편하네요. 그러지 말고 영상을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요? 전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라 카메라만 보면 울렁증 생길 것 같아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다 보면 실력도 늘고 사람들도 많이 좋아할 거예요."
"저도 그럼 좋겠네요... "
2025년
세상은 변했네요. 영상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죠.
나도 열심히 글을 쓰고 다듬고 책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30초 남짓 여행기에 나의 글은 속수무책일 수 밖엔 없었죠
글을 전문적으로 배워 쓰는 게 아니라 소위 팔리는 단어가 뭔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시대를 잘 타고나 브런치에 글이라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중이예요. 몇 명이라도 읽어 주시는 분이 있으니까 말이죠.
짧거나 긴 영상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더라도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오늘도 도전해 봅니다. 인도에서 그분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가 내 속에 사무칠 만큼 현재 영상의 힘은 대단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더욱 책의 힘을 얻고자 하는 부분이 크긴 하죠.
영상을 배우는 중이지만 글을 쓰는 방법도 배우고, 조금 더 체계적이고 구성진 글을 쓰고자 하는거죠. 변화에 흐름을 읽고 새로운 꿈을 꾼다는 것은 마치 여행 블로그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청년의 의지를 잇는 일이 될 것 같아서요.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오늘도 내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위해 또 한 번 도전해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