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의 일각

by SseuN 쓴

아주 작은 부분을 보거나, 경험하고 나서 모든 부분을 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다.


"야,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빙산은 남극과 북극에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면서 극지방이라는 곳이 생기고 적도와는 반대로 태양을 받는 면적이 현저하게 작아 온도가 낮은 곳이 바로 북극과 남극이다.


이번에 여행할 곳은 바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모레노 빙하.


남미에 도착해 '이과수 폭포'를 볼 때만 해도 낮에 해가 너무 더웠다. 아침저녁으로 약간 선선했던 건 남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선한 기온을 느낄 순 있었지만 그렇다고 춥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남극의 빙하 앞에서는 극한 추위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빙하가 말 그대로 얼음 산인데, 얼음 산이 사막 한가운데 있을 리 만무하고, 추운 극지방 중에서도 아주 추운 곳이어야 바다기 얼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빙하를 본다는 것.


나의 빙하는 둘리가 타고 온 빙하에서부터 시작된다. '빙하 타고 내려와~'라는 둘리 만화 주제가에서도 알 수 있듯, 둘리는 빙하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때 만화로 배운 지식이었다.


여행을 결정하기 전까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지구의 남쪽으로 가다가 보면 남극이 나올 것이다는 이야기는 세계지리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남극의 빙하는 이렇게 생겼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내셔날 지오그래피에서나 방송될 만한 소재다. 놀랍기도 하고 경의로운 모습을 지녔다. 내가 도착한 여름의 남극은 추웠다. 하지만 그 정도 추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빙하의 가장자리 부분들은 녹아내렸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빙하가 녹아 부서지면서 바다로 들어가면 빙하 옆의 바다는 아주 밍밍한 맛을 내는지도 모른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

아무것도 모른 채 사전 지식 없이 방문한 곳이라 그냥 삼각대 위에 사진을 올려두고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별안간 어디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천둥소리 같다는 의미지. 자세히 듣고 있으면 땅이 갈라지는 느낌도 있고, 하늘이 두 쪽 나는 느낌도 있다. 빙하의 가장자리가 무너지는 모습은 마치 모래사장에서 친구랑 모래 쌓아두고 뺏아 오는 게임에서 정상에 꽂은 나무젓가락이 넘어가지 않게 살살 긁어대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저 얼음 평지 위로 걸어가다 보면 지구의 극이 나온다. 정확하게 남쪽 끝.


난간에 기대어 얼음 산을 보고 있는데,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저녁에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끌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사람이 주변에 적지 않았다. 옆 벤치에 앉아 있던 미국에서 오신 부부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다 잠시 전단지 같은 종이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알아보더니 빙하를 걸을 수 있는 트레킹을 신청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빙하 위에서 빙하를 보는 것보다 멀리서 빙하를 빙하처럼 보고 싶은 마음에 밖에서 보는 방법을 택했다. 후회는 없다. 조금 더 멀리 올라가 더 멀리 펼쳐진 얼음의 대지를 보고 있으면 지구가 가진 자연의 한 부분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모를 간질 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부옇게 얼음과 대기의 공기가 만나 만들어내는 안개는 순간적으로 심묘 한 분위기까지도 자아낸다. 갈 수 없어 더 가고 싶어지는 곳, 내가 보고 있는 곳 보다 훨씬 광활하고 대단한 빙하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까이서 보고 오신 분들은 얼음 계곡 아래의 끝없는 공포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서 빙하를 잘라 위스키를 부어 마신 경험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경험할 수도 없는 대단한 경험 속에서 말이다.

내가 다녔던 수많은 나라도 지구에 전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장가계가 그럴 것이고, 태산이 그럴 것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이 그러하다. 이집트의 나일, 인도의 갠지스, 남미의 아마존이 그렇다. 가 본 적은 없지만 그랜드캐년, 아이슬란드 오로라가 빙산의 일각이 것이다.


작은 발을 딛는 우린 지금의 일각을 경험할 수 밖엔 없을 것이다. 당연히 모든 지구를 경험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세상에 대한 신비와 궁금증을 매체나 책으로 경험할 수 있어 호기심을 눌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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