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쿠바의 동쪽 끝
아쉽게도 트리니다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얼마 전 사둔 산티아고 데 쿠바의 일정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가기 전날까지도 야무지게 랍스터를 주문해 먹었던 나는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이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물론 음식 하나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우연히 다시 만난 부부님들과 이곳에서 여행을 하며 만나 매일 저녁을 같이 먹던 우리의 여행 친구들이 있어 이곳의 생활이 더욱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여길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차매로 까사에는 날마다 어김없이 한국 사람들이 가득했고, 매일 먹던 저녁시간에는 이곳에서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혼자서 쉽게 할 수 없던 여행이나 체험을 할 수 있었고, 같이 할 수 있었기에 용기를 내서 해 본 것도 있다. 그러니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조금 더 내적 친밀감은 강했지 않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영원한 만남은 없고, 만날 기약이 없는 여행 동행들과는 이별을 해야 했다. 아침 일찍 몇몇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있는 터미널로 출발했다.
오늘 우리는 꽤나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왔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여행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쿠바 사람들이 주로 타고 이동하는 버스에 탑승이 시작된다. 관광이 주 수입원이 되어 있는 쿠바에서 외국 사람들에게 좋은 버스를 태워주고 비싼 요금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시선으로 버스를 봤을까?
외형도 많이 달라 보이고, 앉는 의자도 비아술 버스와 달리 불편해 보이는 버스엔 쿠바 사람들이 출발을 기다리며 앉아 있다. 우리도 짐을 맡기고 버스에 오르니 뒤따라 올라오는 상인들이 남미의 만두 "엠빠나다"를 판다. 아침 대용으로 먹기 좋은 음식이지만 까사에서 아침까지 먹고 온 우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점점 퍼지고 있는 기름지고 달콤한 냄새에 못 이겨 결국 주문을 해버렸다. 비행을 하는 날엔 라면 냄새를 맡아버리면, 인내심이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역시나 사람은 쉽게 안 변하는 편, 다이어트는 늘 의지가 약해 실패하는 나는 아침도 두 번이나 먹어 버린다.
따뜻한 엠빠나다를 오물오물 먹고 있으니, 문득 남미 여행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생각이 난다. 브라질 여행을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입국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파서 사 먹은 첫 음식이 바로 '엠빠나다'였다. 긴 이동에 배가 많이 고프기도 했고, 워낙 맛이 있는 집이어서 그랬는지 그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고기와 채소의 수분으로 촉촉하니 그게 바로 겉바속촉의 맛이 아니었을까?
이후에도 몇 번이나 엠빠나다를 먹었다. 그때처럼 아주 풍부한 속이 들어있어 진짜 만두와 비슷한 맛이 있는가 하면, 나라마다 조금씩 특색이 있는 맛이 있다. 특히나 쿠바는 단 맛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시럽이나 잼을 많이 쓰는 편인데. 그래서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거의 달다.
달콤함이 있어서였을까? 송별회에서 마신 술 때문이었을까? 꽤나 긴 버스 여행이었지만, 오히려 숙면을 했다. 휴게소에서 한번 정도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는데,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혀 미동 없이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밖이 어두워졌고, 시간도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13시간 정도의 긴 버스 여행에서 조금은 지치고 기운이 빠진다. 심지어 여행을 해도 해도 가방의 무게 전혀 줄어들 기미가 없으니, 그 온전한 무게가 힘없는 어깨를 누른다.
가방을 업고 나오다 시피 밖으로 나오니 여기도 비냘레스에서 처럼 직접 지을 찍은 사진을 들고 나와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주인이 직접 차를 가지고 픽업을 와 있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집의 모습을 보여주며 광고를 한다. 그중 한 부부가 내민 핸드폰에는 큰 아들이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아마 한국에서 온 우리를 보고 꺼낸 사진인 것 같았다.
집도 깨끗해 보여 오래 걸리지 않아 이 집을 선택했다. 우리는 태권도 국가대표인 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방은 크지만 그렇게 좋은 공간이라 할 수는 없는 딱 그 정도의 숙소였다. 까사의 정부 허가 푯말이 없긴 했지만, 우리에겐 문제가 없으니 우리 방을 받아 짐을 풀어놓고, 시내 중앙으로 나왔다.
원래는 '노인과 바다' 편에서 동행한 두 친구를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인연이 닿아 같은 일정으로 같은 도시에 머물러 있으니 일정이 허락하면 만나기로 했다.
일단 우리가 있는 곳은 주소를 보내 놓고, 내일 다시 연락이 닿으면 만나면 된다. 그거보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 먹고 잠만 자다 와서 배가 고프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일단 시내로 나온 건데, 한국도 아니고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문을 열어 둔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섰다.
막상 나오니 의외의 모습이다. 아바나에서도 이렇게 환한 거리를 못 본 것 같은데. 이렇게나 밝아 놀랐다. 심지어 골목 곳곳에는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곳이 보인다. 멀리까진 못가보고 제일 밝은 곳만 돌아보고 처음에 봤던 24시간 오픈이라고 적힌 식당으로 들어왔다.
제법 큰 가게의 크기에 신뢰를 하며 들어왔다. 메뉴판은 밖에도 있어 정해놓고 들어 왔다. 이미 먹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우리가 첫 손님은 아니었다. 배가 고프니 주문부터 하고, 맥주를 시켰다.
응??
이게 뭐람? 이게 뭐지?
가격은 비싸진 않았지만 저렴하지도 않았는데, 딱 그만큼만 나온 것 같다. 그나저나 이걸로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다이어트를 늘 실패하는 이유지만...
늦은 밤에 이렇게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맥주 안주로 먹으면 좋겠다 싶어 맥주를 시원하게 마셔 버렸다. 의외로 좋은 궁합에 기분 좋은 야식을 먹고 돌아왔다.
심하게 배가 고프면 의외로 많이 먹을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대신 하나도 남김없이 잘 먹고 나왔다. 장거리 버스 이동에 지친 우린 금세 잠이 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