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풍 west wind Jun 20. 2024

" 장밋빛 인생이 흐르는 마을버스 "

A beautiful moment.

재개발이 확정되었지만 건설사의 PF부실사태, 건설자재비 상승, 경제불안 등으로 인해 수년째 시행이 늦어지고 있는 이 동네는 뭔가 김이 빠진 듯하다.

그사이 한집 두 집 주민들이 떠나 빈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이 동네를 지키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부지런히 오가는 마을버스는 노인의 주름진 마른 손등  푸르게 솟은 정맥처럼 쇠락해 가는 동네가 살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지난겨울 어느 날 아침,  잠시 부모님 댁에 머물며 굳이 출근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었던 나는 조금 느지막이 9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코너를 돌며 '00마트' 정류장으로 다가오는 마을버스.  

오늘은 유일한 여성기사님인 그녀가 마을버스의 선장님이다.


나는 먼저 기다리시던 할머니 두 분께서 천천히 타신 후 이어서 마을버스에 올라섰다.

그런데 오홍~? 이런 이런, 이런~ 품격 있는 환희에 찬 떨림의 목소리


마을버스 안에서 에디뜨 피아프(Édith Piaf)의 샹송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게 아닌가!

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 ~

https://youtu.be/rzeLynj1GYM?si=MmzgzdM2rFlCVeAE

[ 출처: 유튜브 Edith Piaf Official,  Edith Piaf interprète "La vie en rose", le 4 mars 1954. 1954년 3월 4일 에디트 피아프 공연 중 ]


Des yeux qui font baisser les miens  

나의 시선을 내려 깔게 만드는 눈빛   

Un rire qui se perd sur sa bouche  

그의 입술에 머무르고 있는 웃음   

Voilà le portrait sans retouches  

보세요! 이게 내가 사랑하는 그 남자

De l'homme auquel j'appartiens   

바로 그이의 초상화랍니다.


속으로 '우와~'하고  버스선장님의 선곡에 감탄하며 자리에 앉는데


버스기사         두 분 할머니~  요금 안 찍으셨는데요 ?!


할머니 1.2.     (가만히 계신다.)


Quand il me prend dans ses bras   

그가 나를 품에 가득 안고


버스 기사        할머니~??


할머니 1          (뒤에 앉은 할머니 2를 바라본다.)

할머니 2          (....)


Qu'il me parle tout bas   

나지막이 나에게 속삭일 때면

Je vois la vie en rose   

나의 인생이 온통 장미 빛이 되어 버린답니다.


할머님들의 '삑-' 소리를 잠시 기다리던 마을버스가.. 출발한다.

버스 기사        (목소리가 커지며) 할머니 다음부터는 요금 내셔야 돼요!


Il me dit des mots d'amour   

그가 내게 사랑의 말을 속삭일 때는


할머니 2.       (대각선 뒤편에 앉은 나를 바라보며 애매한 표정으로)  뭐.. 뭐라고 하는 거예요..?


Des mots de tous les jours  

늘 하는 가벼운 말이라도


나                (목소리를 약간 크게 하며) 할머니, 요금 내셔야 한데요. 다음부터 꼭 내시래요.


Mais moi, ça me fait quelque chose  

그것이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만들어요   


할머니 2.     (겸연쩍은 듯 살짝 웃으) 응....

할머니 1.     (끄덕끄덕)


음악소리가 조금 커지고, 어지는 버스선장님기민한 핸들링.  


Il est entré dans mon cœur      

그가 내 마음에 들어와서

Une grande part de bonheur   

내 행복의 일부분이 된

Dont je connais la cause     

그 이유를 난 알고 있어요

C'est lui pour moi, moi pour lui dans la vie    

우리 둘의 인생에서 나에겐 그뿐이고

Il me l'a dit, l'a juré pour la vie   

그에겐 나뿐이라고


손님이 없는 한 정거장을 논스톱으로 드라이빙하여  버스는 그다음 네시장 모퉁이에 정차한다.  

다구진 체격의 엄마와 통통한 여자어린이가 버스에 올라타고.

미니미처럼 엄마를 닮은 딸.

그리고 교통카트 체크하는 소리. 삑-.


Et dès que je l'aperçois  

그는 내게 하늘에 대고 맹세했어요.


버스 기사         (목소리를 크게 하며) 어린이도 찍으셔야 해요.


Alors je sens en moi  

나는 느낀답니다.

Mon cœur qui bat  

내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요


다구진 엄마는 통통 아이를 잡고 중심을 잡으며 자리를 찾다가 기우뚱

다구진 엄마         네?

버스 기사             아이가 몇 살이에요?!


Des nuits d'amour à plus finir   

끝없는 사랑의 밤들이 이어지고

Un grand bonheur qui prend sa place  

커다란 행복이 우리 마음을 채우면


다구진 엄마       어린아이예요! 초등학교 안 들어갔어요.


Des ennuis, des chagrins s'effacent   

지루함과 슬픔은 사라집니다


버스 기사           7살이에요?

다구진 엄마       7살.


Heureux, heureux à en mourir   

너무 행복해서 죽을 것만 같아요


버스 기사             6살부터 요금 내셔야 해요.


Quand il me prend dans ses bras   

그가 나를 품에 안고


다구진  엄마         ... 네? (기사 쪽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다.)

버스 기사             (...... )


Qu'il me parle tout bas   

낮게 사랑의 말을 속삭이면

Je vois la vie en rose   

나의 인생은 온통 장밋빛이랍니다.


엄마가 딸의 어깨를 끌어안고,  엄마와 딸이 서로를 쳐다본다.


Il me dit des mots d'amour   

그는 나에게 사랑의 말들을 속삭이고

Des mots de tous les jours   

매일 같이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Et ça me fait quelque chose   

나를 행복하게 만든답니다.

Il est entré dans mon cœur   

그는 내 마음에 들어왔어요

Dont je connais la cause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C'est lui pour moi, moi pour lui dans la vie  

그와 나의 인생은 우리 둘 뿐이죠

Il me l'a dit, l'a juré pour la vie  

그가 나에게 그의 인생에는 나밖에 없다고 했어요


이후 두어 개의 정류장에서 멈춰 선 마을버스에 사람들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고

버스가 골목길을 빠져나와 6차선 도로로 진입하자 차창밖 풍경이 시원스럽게 열린다.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온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달리는 버스의 차창밖 풍경은 그럭저럭 설경으로 볼만했다.


Et dès que je l'aperçois   그리고 그를 보자마자 난 알아차렸죠

Alors je sens en moi   나는 느낀답니다.

Mon cœur qui bat   내 심장이 지금 요동친다는 것을요

Et dès que je l'aperçois   그를 보자마자

Alors je sens en moi Mon cœur qui bat   내 심장이 요동친다는 것을 느낀답니다.


노래가 반복 울려 퍼지는 중에 나는 5분 거리의 목적지인 전철역에 도착했다.


나               (카드 소리 삑-) 기사님 수고하세요!

버스기사     (밝은 목소리) 네에~ 감사합니다.



내게 그런 날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였다. 버스안내양이 있던 때였다.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탔고 글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읽는 것에 재미가 생긴 나는 버스유리창에 얼굴을 바싹대고는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속의 간판을 가능한 한 모두 소리 내어 읽었다.

읽을 때마다 엄마는 안내양의 눈치를 살피다 내 옆구리를 찌르고는 작은 소리로 내게 간판을 읽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도 재미에 빠진 나는 청개구리처럼 계속 읽었던 것 같다.

목적지에서 내릴 때 엄마는 굳이 버스 안내양한테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당시에는 내릴 때 버스비를 냈었으니)

"우리 애 아직 학교 안 들어갔어요."


젊은 그때의 나의 엄마는 이제 팔순이 되셨다.


라 비앙 로즈(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이 울려 퍼지는~

ㅎㅎ 오늘 같은 날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 유리창엔 햇살이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