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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산 May 04. 2024

기원(起源)에 대한 오해-On Origin

세상을 가르는 견해 차이: On universe and Life

[이번 주에 살펴볼 오해] “ㅇㅇ의 기원은 어차피 알 수 없으니깐 생각해볼 필요 없어. 시간낭비야.”


1. 기원: The Origin.


어찌보면 거창한 단어 같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논리적 사고체계가 있는 모든 지성인이 생각해볼 수 밖에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

미래의 반대방향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마주하게 될 과거.


그 과거의 끝에는 시작점이 있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이 시작점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과관계 속의 필연적인 겁니다.

(※불교의 연기법(緣起法) 에선 모든 게 상대적인 거라며 이 논리 자체를 순환 체계로 넣어 이 필연성을 회피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요.)


역사적으로 이 인과관계 체계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던 문명은 과학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한편 인과관계를 회피하려던 세상에선 문화가 발전하고 일부 기술이 발달할 수 있었지만 그 반대편 세상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거창하게 역사적으로 ‘큰 세상’ 대신 더 작은 세상인 개인으로 축소해도 비슷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내가 한 일의 결과라고 믿는 사람.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자신의 행동과 무관하다고 믿는 사람.

보편적으로 전자의 경우가 더 이뤄내는 것이 많습니다.


※더 작은 세상의 예로 제 삶을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제 행동이 인생의 흐름에 대해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고 믿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태도를 ‘운명론’ (혹은 ‘예정론’) 이라는 단어로 말할 수 있겠지만, 풀어서 말하면 ‘내 노력은 내 삶을 바꿀 수 없으니 될 대로 되라’ 였습니다. 그 때의 전 바로 체감할 수 있는 다음 날의 고통이나 불편을 마주하는 건 싫으니 현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다릅니다. 이런 태도의 전환이 10년, 20년 빨랐다면 제 인생은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인생의 모든 걸 인과관계로만 설명한다면 인생의 매 선택은 너무 무겁기도 하고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 무작위적 비극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에겐 너무 힘들겠죠. 그래서 인생의 100%는 자신의 선택이다-라는 천진한naive 철학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2. 세계관을 구축하는 기원에 대한 해석


모든 시대의 문명은 결국 기원에 대한 해석에서 갈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인류의 기원

언어의 기원

과학의 기원

종교의 기원

성性의 기원

........


이 기원에 대한 해석이 바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한 사회의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좀 섬뜩한 단어를 쓰자면 한 사회가 인간의 사상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기원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오해를 쫓아가다보니 거의 모든 오해가 기원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되는 걸 발견했습니다.

위에 나열된 여러 기원들에 대해서는 각각 여러 권의 책을 써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주제일 겁니다.

하지만 이 "책"에선 최대한 가볍게 훑어 지나가보려 합니다.


우선 대표적인 예로 이 챕터에선 우주와 생명에 대해서만 먼저 얘기해보죠.


(1) 우주의 기원에 대한 견해 차이


20세기 초까지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해석으로 문화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나눠져 있다고 볼 수도 있죠.


우주의 시작점이 있었다고 생각한 문명이 있습니다.

우주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존재해왔다고 생각한 문명이 있습니다.

우주는 있었다가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 문명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이론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과학혁명의 시대 이전. 아주 먼 옛날부터 인류는 하늘의 별들을 봐왔습니다. 밤하늘의 별들들은 자리를 바꾸며 움직였고, 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시점에선 하늘이 움직이고 있었죠.


그게 관찰된 사실이고 그런 관찰된 사실을 바탕으로 당시의 천문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살던 사람들이 미개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지식으로 최대한 합리적인 추론을 한 겁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사람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건 21세기의 우리가 더 지혜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상식으로 외우고 있을 뿐입니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주의 기원에 대한 해석은 공상과학이나 철학의 영역이었습니다. 그걸 검증할 데이터가 부족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술의 발달이 망원경의 발달로 이어지고 그렇게 관측된 데이터들이 천체물리학의 발전을 이뤄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빅뱅이론’을 마주하게 됩니다.


관측된 데이터들을 보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우주는 팽창 또는 확장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시간이라는 차원을 포함한 ‘시공간(SpaceTime)’에 시작점이 있었다는 이론이 나온거죠. 이 주장은 한 문명의 세계관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당시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거부합니다. ‘빅뱅이론‘은 프레드 호일이 그걸 비웃으며 부른 이름인데 그 작명센스가 좋았는지 대중에게 받아들여집니다.


그전까지만해도 ‘시작이 있는 우주’와 ‘시작점이 없고 늘 존재해온 우주’라는 세계관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환생과 회귀를 믿는 문화권에선 ‘생겼다가 살아지는 우주’론을 지지했구요.


이 우주에 시작점이 있었다는 건 어찌보면 논리적 사고로 추론가능한 영역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대부분의 것들엔 시작과 끝이 있었으니까요.하지만 ’시간의 시작점‘이 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선 물리학자들이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과학자들은 계산을 해야했고 그래프가 필요했고 차트를 표시하기 위한 ’차원‘을 구분해야 했죠.


출처: phys.org

그리고 마주하게 된 좌표 (0,0,0,0).

그럼 그 이전엔?


시공간을 초월하는 무언가의 존재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합니다.


그 이전엔 물리세계 밖의 것으로 여겼던 Metaphysics/형이상학(形而上學)의 영역. 빅뱅이론의 시대에서 과학과 '초超과학'의 영역이 마주보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거죠.

※과학을 시간과 공간의 영역 안에서 관찰, 실험 가능한 것들에 대한 학문으로 정의하면 시공간 밖의 것에 대해선 그 연구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겠죠


여기서 이런 반문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무한대의 우주가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렇게 무한한 수의 우주가 있을 수 있다는 다중우주론multiverse 가설이 나오고, '무에서 시작된 우주 (A universe from nothing)' 계열의 이론들이 나옵니다. (물론 그런 이론을 살펴보면 결국 거기서 말한 ‘무無nothing’는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 ’어떤 게 있었고, 거기서 시작됐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허무하긴 합니다)



그렇게 ‘시작점이 있는 우주’를 마주하는 두 개의 시선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갖고 살아가게 합니다.

시작점이 있는 우주”의 기원, 즉 ‘시공간을 초월하는 최초의 원인’을 무엇으로 규정하는 지 (혹은 ‘하려 하는지’)에서 오해가 발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빅뱅이론이 있으니 초자연적 존재인 신이 필요없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잘못된 이분법으로 발생하는 오해가 숨어있죠) 

그 반대편의 사람들은 빅뱅이론이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20세기 관측우주론의 대가' 앨런 샌디지(Allan Sandage)도 그렇게 우주의 기원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무신론을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법칙의 발견이 행위자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죠.

* 영 옥스포드 대학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는 M-Theory 와 같은 물리법칙으로 우주의 시작을 설명해낼 수 있다고 했죠. 여기에 대해 같은 대학 수학교수 존 레녹스(John Lennox)는 호킹이 철학적 분류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걸 설명할 때 두 가지 차원이 존재한다는 거죠. 자동차를 설명할 때 열역학 법칙을 이야기 하면서 자동차의 엔진 발명자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스티븐 호킹스와 블랙홀과 관련된 특이점(singularity) 연구를 진행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M-이론으로 불리는 그건 '이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디어와 희망, 열망의 조합 입니다. 호킹의 책은 그런 점에서 좀 오도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이론이 모든 걸 설명해낼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2020년 노벨 물리학 수상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노벨상 폼페이지의 로저 펜로즈 소개글 - 출처: NobelPrize.org


어떤 사람들은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초자연적 ‘인격체’ 같은 복잡한 존재로 삼는 것은 비합리적이라 주장합니다. 그 반대편엔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고 복잡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설계되었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요약하자면 여기엔 기원에 관련해서 ‘무’와 ‘시공간을 초월한 초자연적 원인’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Absolute Void / NOTHING  vs. A causal agent beyond space and time



4. abiogenesis: 생명의 기원에 대한 견해 차이


생명의 기원은 어떤가요?

여기에 대한 견해로 세상이 나눠집니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두 집단의 갈등은 이렇게 나누어 집니다.

우연히 긴 시간에 걸쳐 화학원소들이 단순한 생명체가 되었다는 집단.

초자연적 존재가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집단.


어떤 사람들은 ‘진화론‘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단순한 생명체가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하기 위해선 일단 그 첫 생명체가 존재해야 합니다.


알만한 사람은 알 것 같은 밀러-유리의 실험(Miller-Urey experiment)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죠.

(1) 우선 당시의 학설에서 가정한 원시 대기의 상태(암모니아와 메탄)가 현재 학설과 다릅니다.

(2) 밀러와 유리는 실험에 사용한 여러 가스/기체 중 산소를 제외시켰습니다. 산소가 무기물non-orgnanic matter이 유기물의 합성을 불가능하게 했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당시 지구 대기에 상당한 량의 산소가 존재했다는 실증적 증거가 있습니다.

(3) 실험에 사용한 플라스크의 재질이 (붕규산 유리/borosilicate glass)에 대한 최근 연구는 실험에 사용된 플라스크의 성분이 실험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RNA월드 가설도 문제가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 모두에게 주어진 단순한 논리, 생각실험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이런 류의 정교하게 준비된 실험은 결국 ‘무지성의 우연’, '랜덤한 이벤트'와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밀러-유리 이후, 지금까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7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과학의 다른 분야에선 굉장한 도약이 있었습니다.

 IT기술, 컴퓨터 관련 공정, 부품의 발전부터 생명공학, 분자생물학까지 정말 많은 분야에서 1950년에선 공상과학 같았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편 생명과 관련된 과학적 발전은 계속 됐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만큼은 주목할 만한 발전이 없었다는 비평을 많이 접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기능하는 단순세포조차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모든 화학원소를 다 제공해도 그걸로 조립해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더 작은 단위의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그 단순한 생명체 안의 유기체들을 더 면밀히 살펴 볼수록 그 안에는 작은 세상과 정교한 기능을 하는 복잡한 것들이 숨어있던 겁니다.

단순하다고 설명하지만 사실은 세포벽 하나의 기능조차 너무 복잡하고, 세포 안에서 상호작용(Interactom)을 다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그래픽을 마주해야 합니다.

(Interactom인터액톰은 특정 세포 안의 모든 분자들의 상호작용을 뜻합니다. 하나의 효모균 세포 내의 단백질-단백질간의 상호작용인 인터액톰(interactome) 안에 3,000개의 단백질이 있고, 단순히 인터액톰의 조합가능한 경우의 수가 10의 790억승 개입니다. (10의 90승이 우주의 원소 입자의 예측수량)

Human Interactom - A protein complex network of Drosophila melanogaster.  Cell. 출처: https://artavani

좀 더 쉽게 다가올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은 귀엽다' 라고 주장할 때 사용하는 '키네신Kinesin' 같은 녀석이 있죠.  

Kinesin Motor Protein - 출처: Inner life of a cell (2006)

*전 우리 몸의 세포 안에서 저런 앙증맞게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있는 존재가 있으니 우리 인간 모두는 사실 잘 살펴보면 귀엽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또, 노벨 물리학상(50%)를 받은 로저 펜로즈(Sir Roser Penrose)가 깊이 감명 받았다고 하는 미세소관(microtuble)도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알게된 데니스 노블(Denis Noble) 교수님도 이 미세소관이 작용하는 걸 보고 경이로움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도 여기에 동조하죠. 세포 안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서로 연결되지 않은 구성체들이 어떻게 소통해서 이런 기능을 할 수 있을지 놀랍습니다.


위의 아장아장 귀여운 '키네신'들이 아장아장 걸어가는 저 길이 세포 안에서 촤르르 하고 깔리고 사라집니다.

MicroTubles - 출처: Inner life of a cell (2006)

그러니 실제로 나노공학을 통해 분자 단위의 구성물을 합성해내는 화학자들은 말합니다.


연구실에서 정교하게 설계된 기구와 실험 단계들을 ’원시 대기의 지구‘가 우연히 재현해낼 수 없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 2019년 생명의 기원 연구를 지적하는 한 미국의 화학자 교수 James Tour를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아닌 학교에서 월급을 받는 학자와 연구자들은 자금/펀딩이 생명줄과 같습니다. 과학계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계의 패러다임의 한계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입니다.

그는 이미 종신교수직(tenure)이기도 하고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로도 그래핀을 만들고, 빛을 쬐면 1초에 3백만번 회전하는 모터가 달렸는데 사람 머리카락 위에 주차하면 3만개를 주차할 수 있는 나노사이즈의 자동차도 만듭니다. 그래핀 나노리본을 척추신경 손상, 시신경을 치료하는 방법에 활용합니다. 그래서 그는 학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는 아직 과학계에서 인간의 생명의 기본구성도 만들어낼 수 없는데, 학계와 언론에서 매번 큰 발전을 이룩한 것처럼 부풀려서 소개한다는 걸 지적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생명기원에 대한 연구 비평을 참고해주세요.)



5. 기원의 해석 차이가 정체성과 가치관에 미칠 수 있는 영향


(1) 우주와 생명이 무에서 우연히 생겨났다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우주 먼지‘에 불과한 우리들의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은 이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간혹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즐겨라‘ 라고 근거가 모호한 것 같은 긍정주의로 마무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 우주와 생명의 시작이 ’시공간을 초월한 비물질적인 첫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광활한 우주가 오직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죠. 실제로 지금까지 관찰된 우주의 모든 별들 중 인간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는 별은 지구 뿐이고, 우주의 많은 물리상수가 마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세밀조정된 것 같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여럿 있습니다.



(1)의 경우, 모든 게 우연의 산물이 인간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우주는 언젠가 태양의 폭발로 끝을 맞이할 것이 자명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전 우주적 스케일로 봤을 때,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쉽습니다. 허무주의, 회피주의, 쾌락주의가 논리적 선택이 될 수 있는 거죠. 어차피 끝나버릴 인간의 역사, 어차피 모든 게 사라져버릴 거니깐요.

주로 이 세계관에선 환원주의(reductionism)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과학이란 이름 아래 숨어있죠. 그리고 인간의 정서, 감정, 정신을 모두 물리적인 요소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게 의학에도 적용되어 '마음의 문제'를 '화학물질'로 치료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죠. 많은 경우, 이런 해결법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죠.

또 어떤 사람들은 우주의 스케일이 아닌 지구의 생태계로 눈을 돌립니다.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는 이 별에서 인간이 미치는 위해에 집중하며 환경을 보호가가 되기도 합니다. 극단적 환경론 안에서 인간을 지구의 적대적인 존재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선 속에서는 생명은 우연의 산물이고,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큰 그림big picture’를 보면 결국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생명의 주인은 나다!‘ 라고 패기롭게 주장할 수 있지만, 우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광활한 우주 속 작고 작은 ’우주먼지‘의 외침이란 걸 머리로 알고 있을 수 있죠. 자신이 우주먼지라는 게 자신의 현실이 될 때, 그 생명의 가치는 점점 작아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정신은 그걸 부정하고 싶어하죠. ‘자기 생명에 대한 주인 의식’은 가끔 자기파괴적 방향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난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며. (하지만 파괴라는 행동이 가능한 주체는 주인에게 국한되어 있지 않죠. 타인에게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입니다.) 


(2)의 경우, 이 ’첫번째 원인‘이 ’인격적인 존재‘라고 상상할 수 있다면 (1)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광대한 시공간 속에서 그 ’첫번째 원인’이 인간이 살기 위한 배경을 만들어 냈고, 우주도 지구도 신이 제공한 선물이자 힌트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인간이 ’전우주적 배려‘를 받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그게 인간중심적인 사고라는 비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는 확인된 생명체는 인간 뿐입니다. 다른 생명체가 우리 인간의 언어로 ‘그건 인간중심적인 사고죠’ 라고 따지기 전까진 그런 비평이 큰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

그리고 그게 무한한 자존감의 근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은 좌절을 이겨내는데 있어 큰 힘이 되죠. (물론, 잘못해서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해석해서 객관적 현실의 갈피를 못 잡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생명이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 선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파괴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철학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이해할 근거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내 심장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뛰게 하는 게 아니니깐요. 자율신경계가 하는 일이라고 이름을 붙여놨지만, 그건 현상에 대한 이름표 붙이기 이상의 것은 아니죠. 인생의 역경을 살아갈 때, ‘생명을 포기 하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 살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살아남았기 때문에 인생의 반전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죠.


물론 (1)의 해석을 취하는 사람들이라고 모두 비관적이어야 하고, (2)의 해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모두 긍정적이라는 단순분류를 하는 게 아닙니다. 각 해석이 논리적으로 그런 삶의 태도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Ep.1 맺는 말: 동전의 옆면에 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가 생겨날 수 있을까요?

무일푼에서 부자가 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돈이 없는 상태에서 돈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행위자는 지성을 가진 인간이죠.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위 혹은 하얀/검은 화면 위에서 작가들은 메시지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작가라는 지적 생명체가 만들어냈죠. 무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작가라는 존재 안의 잠재력은 어마어마 하기 때문에, 무 보다는 ‘무한’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무'라는 개념을 생각조차 하기 힘듭니다.


A universe from nothing.

A life from nothing

Everything from Nothing.


우리는 어느 쪽을 오해하고 있는 걸까요?


이 우주가 우리를 만들었다고 하면 그걸 받아드리기 쉬워하는 사람도 많이 있겠죠.

하지만 우주는 지성도 인격도 없고 인간에 의해 관찰된 규칙들이 있을 뿐이죠.

그 이상의 것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은 그 우주를 만든 최초의 원인First Cause이 인간도 만들었다고 생각할 뿐인 겁니다.


동전의 옆면에서 양 옆을 내려다보니 어떤가요?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한 쪽만 이성적이고 다른 한 쪽은 비이성적이라는 오해.


이 오해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짧은 글로 결론을 내리긴 어려울 것 같으니 결론을 유보하고, 다음 챕터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오해는 화해의 실마리 (음성지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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