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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Nov 08. 2022

상담일지: 나를 와르르 무너지게 한 체인

2022-11-07

이번 회기는 어제 나를 다섯 시간을 울게 한 얽히고설킨 연속적인 체인을 이야기하고 다루는 시간이었다.


그 기나긴 체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이태원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가슴 저리게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마음을 쓰다 보니 마음이 여려져 있었다. 다시 말해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경계가 물러져있었다.


2) 금요일에는 나의 경계를 침범하는 트라우마를 촉발시키는 일을 겪었다. 내가 싫다고 의견을 내비치었으나 내 의견을 묵살하는 상대방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때로 시간여행을 하고 공포에 질려 무서움으로 몇 시간을 얼어있었다. 마음이 건강한 상태였다면 화라도 내봤을텐데 연속으로 우는 나날들로 마음이 여려져 있는 상태에서 쉽게 공포에 질렸던 것 같다.


3) 너무 아파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했지만 혼자 해결해보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패닉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참다가 참다가 끝끝내 부모님을 찾았다. 언제나 나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그들이지만 이번만은 아니길 바라며 전화를 걸었다. 아니니 다를까, "네가 무슨 트라우마냐, " 어록을 갱신하며 2 가해로 나를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말았다.


4) 그 상태로 금요일, 토요일을 보냈다. 여러 상처가 건드려지니 아무리 압박해도 피가 지혈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 일요일에 지인을 축하해주는 자리에 참여했다. 사람들이 많은 자리가 코로나 이후 거의 처음이었고, 나는 트라우마의 플래시백으로 불안과 공포에 점철되어 취약한 상태이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친한 사람 어색한 사람이 한데 모여있다 보니 중학교 따돌림 트라우마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성인기, 초등학교, 중학교를 시간 여행하며 오늘을 살지 못하는 일주일을 보냈던 것이다.


상담을 통해


2)의 상황에서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고 싶느냐, 여쭤보아 하지 못한 말들고 꺼내보고

그 사람이 촉발한 기억 속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싶으냐, 여쭤보아 기억 속 나를 괴롭히고 스토킹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보았다.

살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서워도 화를 낼 줄 알아야 함을 알지만 화를 낼 줄 모르는 나를 위해

화를 한번 내어보는 연습도 해보고 화를  내기 위해서는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잘해야 함도 배웠다.


3)을 통해

나의 부모의 유약함이 나를 정서적 방임과

모든 정서적 충격 장면의 방치와 보호받지 못한 결과를 낳았음을 깨달았다.

"선생님, 저는 정서적 충격 장면에서 보호해줄 부모가 없어요."

"선생님, 저도 보호받고 싶어요."

"선생님, 저 좀 보호해주세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상담 중에 내가 뱉었던 말은 참으로 연약하면서 애절하고 간절했다.


내가 선택한 관계가 아닌 가족을 책임지거나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셨다.

나 스스로도 내가 피를 흘리면서도 끊임없이 가족과의 회복을 시도하면서도 상처받았던 나날이 내 마음에 가족에 대한 벽을 만들어 점점 감정의 촉발이 무뎌지게 만들고 있음을 인지한다.


 이후 따돌림 체인은 시간이 부족하여  회기에  다루지 못했다.  체인들도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마지막 체인은 새로운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버린 상태라서 다음 회기에  다루고 싶다.


이번 회기 마지막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당연한 말인데 나는 지금껏 하지 못해 와서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체인이 시작되고, 이전 감정이 다 해결되지 않았을 때에는 다른 새로운 감정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우선 멈춰야 해요. 축하해주는 자리에 안 갔어도 돼요"


나는 언제나 나를 지키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더 중요시하여 플래시백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여행을 가고, 본가에 내려가고, 졸업식에 참석하고, 결혼식에 갔다. 오랫동안 계획해놓은 일정을 나를 위해 포기하는 법을 몰랐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시도해봐야겠다. 이제부터 시작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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