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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Nov 12. 2022

복합 외상(complex-PTSD)의 고독감

나는 죽을 만큼 아프지만 사소하고 초라해 보이는 상처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유사해 보이지만 꽤나 다르다. 그중, 하나는 상처의 수와 크기, 지속기간이 있다. complex PTSD는 겉보기에는 성인 수준에서는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크고 작은 사소한 외상들을 아동이나 인질 등 힘이 없는 대상이 오랫동안, 치유 없이 끊임없이 노출될 때 생겨날 수 있는데 그 예로는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이 있다.


나는 직접적으로 부모에게 맞은 적은 없기에 내가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다 여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은 줄곧

일관성 없이 수용과 거절을  제멋대로 줬다 뺐는 지킬  하이드 같은 어머니

아이와 정서적 교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버지

와 함께 였다.


나의 어머니는

어느 날은 천사같이 상냥했다가

어느 날은 용이 불을 뿜듯이 언어폭력과 협박을 한다.

욕을 하고 도주 협박을 한다.

힘들어서  싸들고 산에 들어가고 싶단다.

말을 안 듣는다고 귓구멍이 막혔냐고 젓가락으로 식탁을 팬다.

본인이 검은 바둑알을 희다고 하면 희다고 하란다.

밖에서 당해온 것은 니들이 알아서 하란다.


나의 기억 속

7살에 쇼핑몰에서 부모를 잃어버려 망망대해에 혼자 떠있는 기분을 느꼈을 때,

8살에 동생이 물에 빠졌다 건져져 울며불며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나도 같이 시간이 멈춰버렸을 때,

9살에 침대에서 떨어지고 팔이 부러져 온몸에 긴장이 되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13살에 전학 간 학교에서 내 물건이 온데간데없이 훔쳐가져 없어져있을 때,

13살에 학교에서 하루 종일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시간이 멈추어버렸을 때,

중학교 3년은 지금도 기억이 흐릿할 정도로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을 때,

단 한 번도 어른의 보호를 받아본 적이 없고, 나 대신 화나는 상황에 화내 주리라 기대할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 정서적으로 기댈 어른 한 명 없었고, 그 모든 기억들은 트라우마로 얼어 지금까지 내 몸을 지배한다.


중학교 시절, 침대에 잠에 들 때에 너무나 외로워 침대와 벽 사이에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귀가 예민해 벽 너머 혹은 다른 층의 층간소음이 웅웅 거리며 들릴 적에 그 소리가 내가 상상한 세상이 나를 부르는 소리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부모가 있는 세상

내가 아플  꼬옥 안아주는 어른이 가득한 세상


이런 나의 상처들은 전쟁, 죽음의 목격, 물리적 폭행 등과 직접적으로 비교했을 때, 누가 봐도 초라하다.

"에이, 그걸로 어떻게 트라우마가 생겨~"

"네가 맞기를 했어, 뭘 했어. 별거 아니네ㅋ 이겨내~"

"네가 무슨 트라우마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네."


나는 누가 내 손목을 힘을 줘서 잡기만 해도 책상 밑에 들어가 눈과 귀를 막고 숨을 고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큰 집단에 속하며 남의 소문을 들을 때면 나의 소문이 돌았지 않았을까 피해의식에 절어있던 중학교 시절의 복도 가운데 서있던 나로 돌아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밀착할 때면 나를 말로 때리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던 엄마를 지독히도 사랑한 어린 소녀의 자아가 깨어나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린 인질이 되고

수많은 플래시백의 도미노 같은 붕괴 아래 놓일 때면 방구석에 모든 자극을 차단했을 때 진동소리, 전화 울리는 소리마저 나를 사시나무 떨듯이 떨게 만든다.


마음을 열어 내 상처를 드러내 보였을 때 두 번째 상처를 받는 것이 지금 이대로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것보다 더 아프기에 환자에 가까운 채 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인 무미건조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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