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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Oct 22. 2022

나의 세포들이 기억하는 애착 손상

애착손상인의 애착형성 고군분투기

나에게 애착은 아름다운 감옥과 같다. 이성이든 친구든 상담 선생님이든

"아 이 사람과 오래오래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이 사람을 자주 보고 싶다"

"이 인연이 너무 소중하다"

는 생각이 시작되고 나면 나의 세상은 반짝반짝 빛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식들과 물건들로 꾸며져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안정적으로 보호받는 느낌으로 가득차 행복하지만, 그 느낌이 없어질까 전전긍긍하느라 나 자신의 색이 바래기 시작한다.


분리불안과 유기 공포가 너무 심해 애착 대상이 돌아오지 않을 것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매우 크다. 결국 '나는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라는 자기혐오의 굴레로 들어가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 대는 것이 꽤나 익숙한 루트이다. 이 유기공포의 기원은 여러 가지 트라우마가 뭉치고 뭉치고 뭉쳐져 오늘날의 초예민한 편도체의 반응과 플래시백을 만들어냈다.


내가 기억나지도 않는 만 3세 시절, 조부모는 나를 재워놓고 밖에 나가 노인정에 놀러 갔고, 나는 홀로 잠에서 깨 벌레와 함께 있던 거실 공간에서 울부짖었다. 그날의 사건은 부모에게서 들어서 알게 되었고, 내 인지적 수준에서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지만, 내 몸과 무의식은 분명히 기억하는 듯하다. 부모가 나를 그렇게 키우지 말아 달라 요청했지만 조부모는 익숙한 방식대로 나의 생애 초기 애착형성과정을 망쳐놓았다.



백화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기분과 함께 내가 발 딛고 있는 지반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아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아버지가 나를 달래도록 기다리며 다시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양가감정이 가득하더라도 어머니와 애착을 형성하고 있던지라 아버지의 달램보다는 어머니의 달램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지만 절대 가질 수 없는 좌절감에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각인되어있다.


7세 어린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져 병원에 갔을 때, 깁스를 팔에 장착할 때까지 어느 누구 하나 그 아이의 놀란 가슴을 쓰다듬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옆에서 어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는 그날 정형외과 앞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그 아이의 고독감과 쓸쓸함, 삶의 기반의 박탈을 생생히 기억한다.

 

위 세 기억 이외에도 손상된 애착을 가진 채 지내온 학교생활과 작은 사회에서의 적응들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따돌림과 이간질, 유언비어의 희생양이 되었던 기억, 난데없는 손절의 기억 등등 수도없는 경험들은 마음을 터놓은 어른 하나 없이 혼자 기분을 삭히는 새 그 트라우마들은 겹겹이 쌓여가 눈덩이 처럼 불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 유기공포가 뼈를 깎는 것 만큼 괴로워 내가 분리되었을 때, 극도로 불안할 만큼의 애착의 크기를 가질 대상을 만들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연애는 꿈도 꿀 수 없다. 연애는 내 삶의 일부를 내어주고 그 사람의 삶의 일부에 내가 들어가는 거대하고 소중하면서 한편으로는 무거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짝사랑이든 썸이든 시작하자마자 행복한 기분과 동시에 공포감에 질리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의 곁에서 "내가 태어나지 않아서 엄마 곁에 자식이 없었다면 엄마가 더 편했겠다", "사라지고 싶다", "내가 없는 게 더 낫겠다", "제발 이 자리에 없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되뇌었던 시간들이 많았다. 엄마는 병원에서 일하며 3교대를 하고서 시골에 내려가 음식 장만을 했다. 몸이 3개여도 모자란 삶을 살았다. 그렇게 악에 받친 엄마는 자신의 설움과 억울함을 나에게 토해냈다. 엄마가 나에게 그 감정을 토해냈을 때 나는 내 영혼을 내보내고 엄마가 되려 애썼다. 떠나가 버린 영혼은 나에게 돌아오기 힘들어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갔다. 존재감을 없애고 싶어 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어 처절한 몸부림과 발버둥을 하며 살아갔다. 지금 되짚어보면 그 정도의 우울과 불안을 가졌을 때,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나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엄마 것, 신의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 몸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내 몸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오면서 느꼈던 수치심과 죄책감의 늪은 괴롭디 괴로웠기에 절대 미화될 수 없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고, 신의 것이라는 말,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시고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는 말. 그 말은 자신을 잃고 속이 텅 빈 아이에게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괴로운 신념이었다.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신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보호받고 사랑받지 못한 채로 권위의 힘만을 오롯이 느끼게 만드는 말이었기에 나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 말은 청소년기 마음 놓고 샤워실에 들어가 샤워하기도 힘들게 만들었고, 내가 월경을 시작했을 때 수치심에 몸부림을 칠 때에도 아무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그 괴로움을 삭히고 눌러 담기 급급하게 만들었다.


이런 내가 호감을 가진 대상과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데 똑같은 레퍼토리와 감정의 그래프의 양상이 있다. 처음 그 애착 대상을 이 세상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사람은 나를 모를 때조차, 나는 이미 그 사람에게 애착을 형성될 것임을 본능에 가깝게 느낀다. 공통적으로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대상들이다. 힘이 있어서 곁에 있을 때 내가 충분히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 나의 생존적 욕구와 안전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은 시작부터 가파른 기울기로 치솟아 오른다. 그다음 치솟아 오른 감정은 밖으로 분출되지 못하면 큰일 날 것처럼 날뛴다. 그렇게 형성된 높고 불안정한 애착 정서는 한동안 그 위에서 머물며 나를 행복하게 하기도 공포에 떨게 하기도 한다. 대상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해도 내 심장이 천천히 뛴다. 그 반대로 대상의 존재가 감각으로 확인이 안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의 행복감과 안심이 신기루였지 않을까 끊임없이 의심한다. 안개처럼 흩어지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그들의 그림자로, 목소리로, 인기척으로 느끼려 발악을 한다. 내가 그것들을 느끼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모르게.


나는 표현하는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애정 갈구가 만들어내는 폭발하는 감정이 만들어낸 불안이 상대가 떠나가지 않도록 나의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게 만든다. 표현하기 위해 살면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술은 애착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었다. 다행히도 술에 약하고 술버릇이 얌전한 편이라 어깨동무하고 스킨쉽하고 애정표현하며 애교가 많아지는 정도에 그쳤던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술이 깨는 게 무엇보다도 공포스러워 테이블에 있는 모든 술을 내 술잔에 모아 마시는 술버릇이 있었던게 참 웃픈 기억이다. 그렇게 쏟아내지 않으면 불안했다. 쏟아내는 것은 내가 당신을 정말 많이 좋아하니 부디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사라지지 말아 달라고 부르짖는 것의 다른 형태인 것이니.


그렇게 쏟아내는 것이 나를 안정되게 만들지는 않는다.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들어 버림 공포를 극대화해서 더 불안하게 만들면 만들었지, 그저 해야 할 것 같아서, 해야 하니까, 내 불안한 마음이 그렇게 하도록 시키니 달리는 마차 안에 있는 멈출 수 없는 기분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것뿐이었다. 애착하고 사랑해서 쏟아져 나오는 도파민은 그 사람들을 사랑함과 동시에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함은 나를 집어삼키고 때로는 표현을 받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지독한 자기혐오와 결핍의 구멍을 실감한다. 활활 타올라 어떤 날은 재만 남아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함과 우울감에 점철되기도 한다. 때때로 어떤 이는 나의 활활 타오르는 감정을 부담스러워하며 거리를 두고 찡그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자리에 없던 것을 서운해하고, 내가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 어디 있는지 찾아주고, 내가 말실수를 해서 기분 나쁘게 해도 그다음 날 똑같이 나를 대해주고, 한결같은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는 순간들을 쌓고 쌓고 쌓다 보면


'오늘도 이 사람은 내 곁에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구나'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 사람들은 여기 있구나'

' 사람들은   다르구나'

'죽었다 깨나도 이 사람들은 내 사람이구나'


를 무의식적으로, 은연중에 수십 번, 수백 번 체감하고 그 순간들과 경험들이 차올랐을 때, 비로소 나는 표현을 멈출 수 있다. 이 사람들이 여기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한동안 고양된 채 위에 머물렀던 그래프는 서서히 내려와 잔잔하고 안정적인 중위도를 서성이며 벗어나지 않는 규칙적인 궤도를 그리게 된다.


이제는 확인하지 않고도 그 사람들이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순간을 붙잡기 위해 긴장하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마음 편하게 행복해하며 치솟지 않는 잔잔한 도파민의 분비를 만들어내고 그걸로 충분하다. 순간을 붙잡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순간을 행복해하며 그 행복이 나의 것임을 나 자신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비로소 찾아 들어간 안정된 궤도에서는 평범한 사람으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이전의 모든 과정은 고통과 혼란 그 자체이다. 내가 안정된 관계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앞의 레퍼토리를 다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다른 좋은 인연을 만나 그 레퍼토리를 반복해서 겪으면 겪을수록 텀이 짧아지고, 치솟는 감정의 기울기가 완만해질 수 있으며, 먼 훗날에는 획득형 안정 애착을 갖고 초반부터 안정궤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이 모든 과정과 연습이 해리의 위험이 있을 수 있을 만큼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과정 임도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연습과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상담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겪는 경험과 연습들이 모여,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나에게 다가올 소중한 인연들과 이전보다는 의연하고 덜 불안정하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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