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그리스

사랑으로 풀어가는 개인, 가족, 사회

by 겨울달

* 본 영화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0950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일단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의 수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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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포스터, 그리고 (아마도) 미국 등지에서 개봉했을 때 사용된 포스터다. 한눈에 봐도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분위기를 제대로 설명하는 포스터를 꼽으라면, 왼쪽보다는 오른쪽이다.


이 영화는 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여러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 그런 거 아니다. <밸런타인데이>, <뉴욕 아이 러브 유> 등 내가 생각 없이 보기 좋아하는 로코 작품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나의 사랑, 그리스>라는 제목조차도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깊은 곳까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영문 제목인 <Worlds Apart>가 이 영화의 관계와 그 속의 역학을 암시하는 의미를 더 담고 있다고 본다.



e5b6c1eb875d78cb573351308c90adc7b1305d27 출처: 모비딕픽쳐스 / 다음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현재의 그리스를 있는 그대로의 그려내려 한다. 아프리카에서 몰려오는 난민으로 사회는 혼란스럽고, 난민을 향한 그리스인들의 적대감은 커져간다. 경제 공황으로 회사는 살기 위한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과거의 영광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과 새로움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또한 커진다. 사회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의견은 양극단을 향해 달리며, 그리스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싱그럽고 아름다운 나라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피어난다. 다프네는 시리아 난민 출신 파리스와 풋풋하지만 절절한 사랑에, 지오르고는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와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짜릿하고 위험한 사랑에, 그리고 마리아는 독일에서 온 여유롭고 자상한 세바스찬과 늦은 사랑에 빠진다. 사회와 개인의 현실 문제에 직면하다가도,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오면 마치 그 모든 근심 걱정이 잠깐 동안은 사라질 것 같은 느낌.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고가는 듯한 온도차는 처음에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에는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치 그 순간은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강렬한 욕망! 같은 느낌이다.


세 장으로 구성된 각각의 이야기는 그리스의 사회적 문제와 개인이 그 사회 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각 이야기가 하나로 맞물린 큰 그림을 보여준다. 각각의 이야기가 맞물리는 지점이 약간은 억지로 짜 맞춘 느낌이 들긴 하지만, 결국 가족의 이야기는 사회와 국가의 모습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선택을 한 것에는 수긍한다. 그 모습이 저 나라나 우리나라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뭐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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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지점에서, 결말은 파국을 맞이한다. (여기서는 스포일러라 밝힐 수 없는 사건은) 개인의 비극, 가족의 비극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변화하는 사회를 견디지 못한 이들과 변화를 서서히 받아들이는 이들 간의 갈등 속에서 나온 희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들은 억지로 끼워 맞출 수 없을 정도로 와장창 깨지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노력들은 꺾여버린다. 하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 사람들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고, 영화는 그 변화를 보여주며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암울한 현실과 꿈같은 로맨스를 왔다 갔다 하지만,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빛을 드리우는 것도 결국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영화에서는 재차 강조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화와 철학을 채웠던 그 사랑을 잊지 말자는 외침이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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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것 아닌 이야기들


- 영화 속 다프네, 지오르고, 마리아는 외부에서 그리스로 온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이들의 사랑을 그리는 방식은 외국인들이 그리스와 사랑에 빠졌다는 느낌보다는, 이 그리스 사람들이 바깥의 사람들과 만나고 이들에게 마음을 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스는 사랑하지만, 그리스만을 사랑하는 건 의미가 없지. 나도 이런 생각 가끔 하는데, 넷상에서 풀어놨다가는 돌 맞을 느낌.


- 이 영화 참 좋은데 J.K. 시몬스가 캐스팅된 과정은 굉장히 궁금하다. 감독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배우로서 유명하지만 이번 영화가 두 번째 연출작이다. 과연 이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리고, J.K. 시몬스의 세바스찬을 굳이 독일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뭘까? 시몬스인데, 그냥 미국인 해도 되지 않았을까?


- 세 이야기는 시작 느낌은 있어도(타이틀 카드가 있다) 끝이라는 느낌은 없다. 어느 순간 훅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버린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갈 때는 좀 많이 당황했다. 나중에서야 왜 그렇게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 극 중 세바스찬이 이야기하고 파리스가 그리는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는 내가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나와서 너무 반가웠다. 신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께는 90년대를 강타했던 순정만화의 전설, 신일숙 작가의 <프시케>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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