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대 부부의 차박 이야기
다음 날 아침, 각종 캠핑 장비들이 담긴 상자와 가방들을 차에 싣고 요세미티로 출발했다. 그 주가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여서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들어가는 길은 정체되었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글레시어 포인트(Glacier Point)에 들렀다. 2백만 년 전쯤 빙하가 지나가면서 만든 요세미티 계곡의 4분의 1 정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곳에서 왼쪽으로 몇 발자국만 더 올라가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펼쳐지는 푸른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다. 시대가 안 맞기는 하지만 시조새가 계곡 사이를 활공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곳에서 펜과 수채물감으로 간단한 스케치를 하고 캠핑장으로 향했다.
첫날 캠핑 장소인 Upper Pines 캠프 그라운드에 차를 세웠다. 이곳이 요세미티 밸리 내에서 North Pines 다음으로 인기가 좋은 것 같다.
알록달록한 테이블보를 먼저 식탁에 깐 뒤 장비들이 든 상자를 부려놓고 캐노피를 꺼냈다. 자동차 주변에 치려고 생각한 캐노피는 뼈대 역할을 하는 철제 구조물과 벽, 지붕 역할을 하는 방수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캐노피를 치려고 구조물을 세웠다. 이제 지붕과 벽을 덮을 차례인데 방수천이 든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가져오지 않은 거다.
캐노피 없이 자동차 실내를 침실과 탈의실로 쓰며 삼일밤을 버텨야 하다니 기가 막혔다.
그냥 돌아가야 하나... 나가서 텐트를 사 와야 하나... 집에서 강아지들을 돌보고 있는 딸에게 전화하여 캐노피 방수천이 든 가방을 가져다 달라고 해야 하나...?
온갖 생각 끝에 그냥 적응해 보기로 했다.
자동차 창문 차양을 이용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 옷이 든 가방을 앞자리로 옮기고 탈의하는 요령까지 익혔다. 남들이 모두 잠든 후 트렁크문을 열어 잠을 자고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면 그럭저럭 지낼만하다고 결론 냈다.
짐을 모두 풀고 불을 피웠다.
장작이 어느 정도 타서 숯이 될 즈음, 케이준 시즈닝을 발라서 준비해 온 베이립을 그릴에 올렸다. 베이비립은 맥주와 탈떡 궁합 아닌가? 번개 치듯 준비해서 오느라 분주했던 하루를 시원한 맥주 한잔을 하며 정리하고 싶어서 이 순간을 몹시 기다렸다. 맥주를 꺼내려고 아이스박스를 열었는데 맥주는 보이지 않았다.
맥주도 집에 두고 왔다.
어쩐지 아이스박스가 가볍더라.
벌써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캠핑장 인근에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팔긴 한다. 아까 장작을 사러 들렀을 때 상점 영업 시간을 얼핏 본 것 같은데 문을 닫았을 시간 같았다(다음 날 내가 잘못 봤다는 걸 알았다). 이미 피곤이 몰려오고 있는데 사러 갔다가 허탕치고 싶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검색”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있지만 여기에는 인터넷이 안 되니까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다.
결국 맛있게 훈제된 베이비립은 생수와 함께 먹었다.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아서 맥주가 그리웠다. 뭐, 내일 마시면 더 맛있겠지.
밤이 되어도,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기온은 떨어지지 않았다. 알싸하게 추운 밤을 예상하고 준비해 온 담요와 두꺼운 옷가지가 식장을 잘못 찾아온 하객처럼 민망해 보였다.
캠핑은 원래 그런 거라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더 재미있는 거라며 남편과 웃었다. 정말 재미있다고 믿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