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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Jul 15. 2020

손으로 빚어 두런두런 나누는 그릇

몇 년 전쯤 어느 분께서 집으로 브런치 초대를 해주셨다. 샐러드와 토마토 수프를 준비해주셨는데 일찍이 보지 못한 멋진 음식이었다. 맛도 훌륭하였지만 식탁 차림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릇이었다.

"도대체 이 멋진 그릇을 모두 어디서 구하셨어요?"

"도자기 교실에서 만들었어요."

"이렇게 샐러드 소스가 막 닿고 그래도 되나요?"

"아무 음식이나 담아도 괜찮아요. 벌써 몇 년째 식기세척기에 넣고 편하게 사용하는 걸요."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이 그릇을 내어놓는다고 했다. 이 그릇은 그날 마음속 위시리스트에 사뿐히 올랐다.


2년쯤 흘렀을 때, 우연한 기회에 그 도자기 교실을 운영한 도예가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선생님 그릇을 봤어요. 나도 만들고 싶은데 손재주가 없어서 용기가 나지 않네요."

"너무 꼼꼼한 분들에게 도자기가 오히려 어려울 수 있어요. 조금 다르고 완벽하지 않은 걸 참아줄 수 있어야 만든 사람의 개성이 배어있는 도자기가 나오거든요."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면 나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아직 세월의 허락을 받지 못하여 시작하지 못했지만. 벌써 거의 2년 전이 되었네. 그때 도예가 선생님이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면서 친구가 되었다.


지난달 바이러스가 하향 곡선을 그리던 어느 날, 이분 집으로 저녁 초대를 받았다. 뒤뜰에 준비된 식탁을 보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음식을 직접 만든 그릇에 담아 차린 식탁은 경쾌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식탁에 둘러앉기 전부터 식탁이 먼저 수다를 떨며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아무 스타일링 없이 주인장이 음식을 옮기는 동안 그냥 찍은 사진이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 가끔 손님을 초대하기도 하는데, 다행히 주위에 입맛 까다로운 사람들이 없어서 정작 메뉴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맛이 보장된 메뉴인 갈비 바비큐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메뉴를 주문하고 샐러드나 밥 같은 간단한 메뉴만 직접 준비하는 일이 더 많다. 문제는 대개 식탁 차림이다. 본차이나 같은 그릇은 푸드 스타일링 교육을 받거나 눈썰미가 뛰어나지 않은 이상 멋진 식탁을 차리기 쉽지 않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는 우리 집에는 20년 전 결혼할 때 산 한국도자기 세트와 TJ Maxx에서 가끔 득템한 흔한 포트메리온과 레녹스 접시 몇 장이 전부여서 정성 들여 식탁을 차려놓고도 너무 초라해 보여서 속상했던 적도 있다. 반대로 반듯하게 잘 차려진 식탁은 도도하고 새침한 표정이 있어서 막상 젓가락을 가져가기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는 좀처럼 마음 편한 나눔의 자리가 되지 않는다.


그날 저녁 두 부부는 오랜만에 잃어버린 일상으로 돌아간 듯 평온한 시간을 나누었다. 여기에 그릇은 훌륭한 조연이었다. 자신이 돋보이지 않지만 음식을 눈치껏 보좌하는. 시간이 흘러 음식이 반쯤 비어도, 여기저기 흘려도, 그릇이 음식을 넉넉히 감싸주어 식탁이 주눅 들어 보이지 않게 하는. 어쩌면 나는 말솜씨가 별로 없어서 일 잘하는 그릇이 더 눈에 띄는 것도 같다.

"저희 집에서 저녁 한 번 같이 해요"

이 초대가 진심이었음을, 준비하는 일이 즐거웠음을, 함께 저녁을 나누는 그 자리가 호젓하게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그릇이 대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삶의 여유를 되찾을 용기가 조금 더 생기면, 나도 손으로 그릇을 한번 빚어 봐야지. 아니면 이렇게 푸근한 그릇을 몇 점 더 마련해야지.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밥상을 나누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소박하지만 기분 좋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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