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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Feb 24. 2020

어쩌다 보니 9년째 옷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

 9년 전 동대문시장을 처음 갔을 때 그 화려한 불빛들은 잊을 수가 없다.

도로는 인파로 넘쳐나고 상가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건물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심장이 뛰는 일은 처음이었다. 상가마다 입구 근처에는 빈틈없이 천막들이 즐비해있었다. 상인들이 주문한 물건들을 각 지방으로 보내기 위해 물건들을 모으는 집합장 같은 곳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우르르 몰려드는 상인들과 그 틈에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정신이 없기도 하고 음악소리 때문에 신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 하던 날이 생각났다.

잊고 지내던 기억 중의 하나이다. 이른 아침부터 엄마는 도시락 준비로 바쁘셨다. 김밥뿐 아니라 유부초밥을 만들고 달걀과 햇밤을 삶고 과일을 챙기고 과자를 준비하고 환타 같은 음료수도 챙긴다. 요즘은 피자. 치킨. 이런 음식들을 배달시켜 먹을까? 요즘도 가을 운동회가 있을까? 나의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는 동네잔치 같은 행사였다.

운동회 날 아침 체육복을 입고 하얀 타이츠에 하얀 실내화 운동화를 신고 머리에는 청군, 백군, 띠를 두른다. 운동장을 들어섰을 때 넓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지던 음악 소리와 하늘에서 날리고 있던 만국기.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술렁임.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일찍부터 돗자리를 깔아놓은 가족들도 보인다. 이겨야 한다는 다짐이라도 하듯이 생기발랄하던 그때의 설렘.

서울 가는 날은 이런 어린 시절 추억의 한편 같은 들뜸과 설렘이 있었다.


밤새 북적대고 술렁이던 동대문의 물결은 잠자고 있던 나의 열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돌아오면 녹초가 되지만 막상 서울에서 밤새 일을 하던 그 시간에는 지치지도 않고 오히려 눈에서 빛이 나는 것이었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나이 마흔 중반에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새벽이 될 때까지 일하면서 보았던 동대문의 많은 사람. 밤과 낮이 바뀌어 살아가는 사람들. 갓 스무 살부터 동대문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50대가 되도록 떠나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 동대문 상가에 점포 하나 입점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일을 배우고 돈을 벌면서 밤을 낮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몰랐던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듯이 가슴은 뛰고 있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시간은 좀 걸렸지만, 현실은 적극적으로 부딪혀야만 했다. 이미 시작된 새로운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했다.     



작은 옷 가게 하나이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큰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작은 나만의 공간 하나쯤 갖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꿈을 이루어 가는 것. 이 얼마나 행복한 일상인지 가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생각이 들 만큼 벅차기도 했다. 큰 부자가 되고 큰 기쁨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무탈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얼떨결에 옷가게를 시작하여 어느덧 9년이나 지났다.  4평짜리 작은 옷가게로 시작하여 지금은 12평짜리 보기 좋은 가게로 자리 잡았다.  손님들은 나와 같이 나이를 먹었고 지금은 옆집 언니. 동생. 친구같이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마흔 중반에 큰 용기를 내어 시작했던 옷가게.

지금은 오십을 넘기고도 몇 년이나 더 먹은 나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 일이 즐겁고 재미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더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한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열심히 하면 하는 만큼 성과가 나타났다. 내가 하는 만큼 결과가 바로바로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고 즐겁고 뿌듯한 일인지...    


사람 관계에 일방통행은 없다. 언제나 오고 가는 것이지만 때론 손해를 볼 때도 있었다.  마음을 준만큼 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장사를 하면 안 된다. 물건을 팔고 돈을 버는 일이지만 사람 사이의 ‘정(情)’에 있어서는 내가 더 준다는 생각을 잊으면 안 된다.

'왜 항상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지' 

런 생각이 든다면 잘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내가 조금 더 마음을 쓰는 것이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이 지는 것보다 내 삶도 평화롭고 더 가치 있지 않을까?




-달달 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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