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소한의 짐으로 깨끗이 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이었다. 미니멈 라이프의 꿈은 아이가 생기면서 진즉에 물 건너갔다. 아이 장난감이며 책이며, 맨날 짐에 치여 사는 판국이다. 게다가 난 반복되는 청소노동이 끔찍이도 싫다. 깨끗한 집에 대한 이상일랑 버리고 그냥 되는 대로 살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그런 느긋함은 또 없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나면 일단 집 청소부터 한다. 정말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한다. 어수선한 집구석에서 내 귀한 자유시간을 보낼 순 없으니까. 꿀 같은 자유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은 또 금세 엉망이 된다. ‘어쩔 수 없지, 뭐. 애 있는 집이 다 그렇지.’하는 여유가 생길 법도 한데, 나는 여전히 어질러진 집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이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행복감에 빠지다가도 ‘그래서 이건 누가 다 치워?’하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
아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올 때가 있다. 그러면 집안이 개판되는 속도는 아이가 혼자 있을 때의 두 배, 세 배에 가깝다. 혼자 있던 아이가 친구와 재미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 ‘그래. 내가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다가도 속에서 천불이 난다. 저거 내가 아침에 한 시간 동안 정리해 놓은 거란 말이야.
얼마 전 일이었다. 친구와 한바탕 신나게 놀던 아이가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다고 해서 함께 나선 길이었다. 아이가 평소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택배 박스나 온갖 재활용품을 방 한구석에 모아두곤 했었는데, 그날은 그것까지 한데 엉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도저히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나가는 길에 덩치 큰 박스 하나를 버리려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걸로 나중에 뭐 만들 거야! 이거 버리면 나도 집에 안 들어올 거야! 엄마, 이거 절대로 버리면 안 돼!”
아이가 나를 밀치며 자기 고집대로 하려는 통에 나도 그만 꼭지가 돌아버렸다. 방 안에 있던 다른 작품―박스를 이어 붙여 만든 집인데, 진심 버리고 싶었던 것―까지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아이가 울건 말건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난 그걸 조각조각 해체했다. 악을 쓰며 울고불고 하던 아이는 집에 안 들어올 것처럼 하더니 결국 나를 따라왔다. 제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간 아이는 또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좀 너무했다 싶었다. 박스 집을 분해하면서 ‘아, 이럴 것까진 없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다시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방 문 앞을 지키고 섰다가 울음이 좀 잦아든다 싶어서 문을 열어 보라 했더니 아이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참 뒤에야 문을 열어 준 아이는 어두운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나도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그러려던 건 아닌데, 이번에는 내가 꺼이꺼이 울어 버렸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순간 화가 나서 그랬나봐. 니가 엄마 말 안 듣고 고집 피우고 했더라도, 니가 애써 만든 걸 보는 앞에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엄마도 어른이지만 늘 옳은 건 아냐. 자주 실수하고 후회하고 그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돼서 엄마도 속상해. 그런 식으로 화풀이 한 거 미안해.”
자기 옷에 떨어진 내 눈물 자국 한 번,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 한 번, 위아래로 번갈아보던 아이는 가만히 내 품에 안겼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린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웃다가 울다가 하던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만, 정말 웃긴 엄마야.”
그날 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나는 또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래, 왜 그랬니. 조금만 더 참지, 왜 그랬니. 그럴 것까진 없었잖아. 그건 그냥 분풀이였잖아. 제대로 훈육한 것도 아니면서 아이 마음에 상처만 남긴 건 아닐까.
매번 같은 후회를 반복한다. 얼마가 지나야 엄마 노릇에 익숙해지고 좀 더 좋은 엄마가 될까. 난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화풀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어질러진 집안이나 아이의 태도보다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건 따로 있으니까. 그건 바로 가사 노동과 양육의 책임이 나에게 편중된 현실일 테니까. 잠든 아이를 또 한 번 꼭 안아줬다.
늘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마음에 아이가 했던 말을 새겨본다. 최소한의 짐으로 깨끗이 정돈된 집이 그저 이상이었듯 ‘좋은 엄마’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고. 맨날 버럭하고 후회하고 때로는 애 앞에서 애처럼 울어버리는 난, 아직 그냥 ‘웃긴 엄마’이니까. 어수선하고 난잡해도 “우리 집이 최고!”라고 말해주는 아이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