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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Feb 16. 2022

왜 당신 집부터 가야 해


  “왜 당신 집부터 가야 해?”

  이번 설에도 난 어김없이 그이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그 소리냐, 서로 기분만 나빠지는데 매번 똑같은 소리해서 뭐 하냐, 일 년에 두 번인데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주냐 어쩌고 저쩌고. 그래, 당신은 그 잘난 종손에 외아들이니까 내가 포기하는 게 여러모로 무탈할 테지. 그런데 명절 때만 다가오면 스멀스멀 배알이 꼴리는 걸 어떡해.

  “당신한텐 그 정도인 일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니야. 얼굴도 못 본 당신네 조상 차례 지내느라 우리 집 차례 지내는 건 결혼 이후 한 번도 못 봤다고!!”

  “그래, 알아.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해. 근데 우리 집, 너네 집 꼭 이런 식으로 말해야겠어? 우린 가족이야. 남처럼 얘기하지 마.”

  “그래, 우린 가족이지. 근데 가족이라는 말로 여성의 일방적인 노동과 희생을 미화시키려고 하진 마. 전혀 아름답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으니까.”

  그이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이제 명절 돌아오는 게 싫어. 꼭 매번 이래야겠니? 엄마가 거의 다 알아서 하잖아.”

  “어머님이 다 하는 건 당연한 거니? 난 그저 잔심부름이나 설거지 정도만 하면 되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래야 해? 결국 명절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라는 전제를 깔고 하는 소리잖아. 차례상 차리는 건 여자들인데 절하는 건 왜 남자들만 하니? 이런저런 관행들이 견딜 수 없이 싫을 뿐이야. 그리고 내가 진짜 막막할 때가 언젠 줄 알아? 당신한테도 이해받지 못하는 지금 같은 순간이야. 날 사사건건 따지는 피곤한 여자 정도로 대하고 있잖아! 결국 당신은 바꿀 마음도, 의지도 없는 거야.”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그이가 한 번이라도 “이번 명절엔 당신 집부터 가자.”라고 말이라도 해 주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덜 서운했을까. 어지간한 억지도 그러려니 받아주고 늘 내 뜻대로 살게 하는 그였지만 어쩐지 그 말만은 하지 않았다. 지킬 수 없는, 아니 지키기 싫은 약속이라 빈말이라도 내뱉기 싫었던 걸까. 내가 옳거니, 하며 당장 실행에 옮길까봐?

  나는 종종 상상했다. ----- 명절 차례를 함께 지내기 위해 작은 아버님 댁네 식구들이 시댁을 방문한다. 우리 부부와 아이는 시댁에 없다. 작은 아버님이 묻는다. “애들은 어디 갔나요?”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친정에 차례 지내러요.” 그 순간 시댁을 휩싸는 어색한 분위기……. 한편 우리 세 식구는 친정에 들어선다. 엄마는 깜짝 놀란다. “여긴 벌써 왜 왔니?” “차례 지내러요.”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빠 뒤편으로 남동생 내외가 보인다. 모두 당황한 눈치다. 나는 괜히 올케 보기가 민망하다. 아빠는 약간 화가 난 표정으로 무어라 말할 듯이 입술을 달싹인다. ----- 상상은 늘 그쯤에서 그만두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랜 관행을 부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바꿀 마음도, 의지도 없다고 그이를 타박했지만 나에게도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눈치 보는 아이를 옆에 두고 둘이서 언성을 높인 건 설 바로 전날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작은 아버님 댁네 식구들이 오지 않기로 했으므로 어머님 혼자서 분주히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계실 터였다. 시댁은 코앞이었다. 수없이 갈등했지만 “이제 그만 가야지.”하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으레 하는 투정이려니 여기며 말없이 기다리던 그이는 늦은 오후가 되자 혼자 시댁에 갈 채비를 했다. 그이가 먼저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면 나는 아마 못 이기는 척 갔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아이만 데리고 시댁으로 향하는 그이가 죽도록 미웠다.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꿈을 꿨는데 내가 늘 하다만 상상의 뒷이야기가 펼쳐졌다. 아빠는 당장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시부모님 뵙기 부끄럽지 않냐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화를 냈다. “왜? 내가 못 올 곳 왔어? 난 안 가. 아니 못 가! 올케도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다 데리고 친정에 가. 올케네는 딸 둘 뿐이잖아. 얼마나 적적하시겠어. 아빠도 당신도 너(남동생)도 다들 그러지 마세요. 엄마나 나나 올케나 당신들한테 소속된 사람들 아니야. 당연한 건 없어. 당연한 게 어딨어. 감사하고 미안하게 생각하세요.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러지들 마시고요.” 두서없는 발악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꿈이란 걸 안 후에도 한참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어둑한 밤이 되어 있었다. 어쩐지 외로웠다. 휴대폰을 꺼내어 어머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님, 그이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서 그냥 솔직히 말씀드릴게요.”로 서두를 뗀 다음 오늘 있었던 일을 낱낱이 고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고,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문득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라면 하나 먹으려고 물을 끓이는데 그이와 아이가 돌아왔다. 그이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아이는 무작정 해맑았다.

  “엄마, 엄마, 뭐 하고 있었어? 나 보고 싶었지? 내가 할머니한테 엄마 아프다고 했어. 진짜 아프잖아. 마음이 아프잖아, 마음이.”

  아이가 곁에 와서 몸을 부비며 조잘대는 통에 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 제대로 눈물 바람 하는구만. 퉁퉁 부은 눈에 한껏 추레한 몰골로 라면을 먹는데 아이가 바짝 붙어 서서 나를 빤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울면서 라면 먹는 여자여!”

  나는 그날 처음으로 웃음이 터졌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날 밤, 쿨쿨 잘도 자는 아이를 가운데 둔 채 우리 부부는 새벽까지 뒤척였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는 그이인데 저도 마음이 많이 불편한가보다 싶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말해야지, 내일 시댁에 간다면 이렇게 하고, 내일도 시댁에 안 간다면 저렇게 해야지 등등. 길고 긴 밤 끝에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설 당일 아침, 그이가 서둘러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불 뒤집어쓰고 계속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준비를 마칠 때까지 꼼짝 않는 나에게 그이가 드디어 먼저 말을 걸었다.

  “가자.” 

  “가자고? 그게 다야? 지금 이 상황에서 처음으로 꺼낸 말이 고작 그거야?”

  “그래, 가자. 다들 기다리실 거야. 어제도 너 없어서 내내 허전했어. 안 가고 집에 있는다고 네 맘이 편하니? 그것도 아니잖아. 나도 계속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지. 앞으론 좀 더 네 입장에서 생각해 볼게. 미안하다.”

  나를 시댁에 데려가려고 하는 말인가 싶으면서도 한풀 죽은 그의 목소리가 짠하게 다가왔다. 어쩐지 밤새 준비한 말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 느끼는 불평등을 당신만이라도 공감해 주길 바랐어. 갑자기 모든 걸 바꿀 순 없겠지만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해, 난.”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절대 그이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거라는 걸, 그리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간극은 너무도 멀다는 걸.

 

  시댁에 들어서니 차례상은 이미 다 차려져 있었다.

  “아이고, 그래. 그간 많이 서운했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래, 우리 이제 한 번 바꿔 보자.”

  어머님이 내 어깨를 토닥이시며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통에 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자는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 한 마디가 사무치게 감사했다. 어쩌면 그곳에서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어머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깔 고운 음식들이 소담하게 줄지어 선 차례상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왜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이 드나. 몇 날 며칠에 걸쳐 저 음식들을 빚어낸 노고에 동참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인가. 이 마음을 그이는, 아버님은 가지고 있나. 내가 별나서, 다들 그러려니 하는 일에 쌍심지를 켜고 덤비는 것인가. 수십 년 간 시댁 제사와 명절 차례를 위해 바친 어머님의 숱한 노동은 얼마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내가 어머님께 느끼는 연민과 나에 대한 어머님의 공감을 약자끼리의 연대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연대가 지탱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 결국 이 고리타분한 관행뿐인가.


  돌아오는 추석 때도 나는 아마 그이와 함께 시댁을 먼저 찾을 것이다. 당연히 즐거울 리 없고, 특별히 바뀌는 것도 없겠지만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질문할 것이다.

  “왜 당신 집부터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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