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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Apr 21. 2022

불편의 분기점

최영철의 『멸종미안족』을 읽고


  바다가 종아리를 내리친다

  십 리 밖 백 리 밖에서

  이 소행 어찌 알았는지

  천 리 밖 만 리 밖까지 나가

  회초리를 구해왔다 ……

  오늘은 어제처럼 살지 마라

  내일은 오늘처럼 살지 마라 ……                                                         최영철, 「회초리 파도」 中


  까끌한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걸 느끼며 곧이어 들이닥칠 바닷물의 서늘함을 익히 짐작해본다. 발목을 덮치는 파도의 손길은 예상보다 훨씬 매섭다. 아차 하는 사이, 걷어 올린 바짓단마저 젖어 버렸다. 번뜻 정신이 든다. 한 발 물러선 파도가 부서진 포말 속에 회초리를 숨긴 채 노려본다.

  내가 화자가 된 듯 한참을 시 안에서 서성였다. 나를 책망하려고 바다는 그 먼 데서부터 파도를 몰고 온 것인가. 지척을 맴도는 일상, 내 옹졸한 삶의 반경을 호되게 나무라는 것만 같았다. 바다를 멋진 사진 배경 정도로만 소비해 왔던 게 무색해질 정도.


  지난 해, <한겨레> 기자이기도 한 이문영 작가의 『노랑의 미로』라는 책을 읽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 중 한 곳,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 건물에서 벌어진 강제퇴거 사건을 토대로 한 책이었다.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쫓으며 알게 된 건, 가난의 경로가 철거와 강제이주의 무한궤도 속에 갇혀 있다는 거였다. 이것이 과연 동시대인의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책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벌렁댔다. 안온한 울타리 너머의 세상을 미처 상상하지 못한, 아니 알려고 들지도 않았던 날들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가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엔가 모여 있다. 가난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숨겨지고 가려지기 때문이다.(p.9)’ 반전의 기회조차 없는 가난, 결코 ‘노력의 부재’ 따위를 들먹이며 비난할 수 없는 가난이 깨끗하고 찬란한 도시가 등돌린 그곳에 모이고 고여 있었다. 정치와 자본과 언론이 쪽방촌의 이미지를 가난의 상징으로 소진하고 동시에 외면하는 동안, 나 역시도 무관심과 무지로서 그 흐름에 가담해 왔을 뿐.

  

   …… 세 모녀 방문을 틀어막고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과 장례비 머리맡에 올려놓고 죽었다 자신들을 치울 집주인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두 번 세 번 절하고 밀린 외상값 꼽아보고 쓰레기 분리수거보다 몇 곱절 어려운 송장 치우는 내일 아침의 수고를 생각하며

   …… 그들 가족이 죽고 미안족은 멸종되었다 이제 어디서 그 안타까운 눈빛을 만날까 미안 미안해 자꾸만 시선을 땅에 묻던 미안족의 멸종은 뻔뻔한 난장판 세상에 내린 징벌이었다

                                                                                                       최영철, 「멸종 미안족」 中


  경제적으로 극한 상황에 내몰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가족. 시인은 그들을 ‘미안족’이라 부른다. ‘뻔뻔스럽지 못한 죗값’으로 ‘미안을 동네방네 뿌리고 다닌’ 그들의 죽음을 ‘뻔뻔한 난장판 세상에 내린 징벌’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면서…. 세 모녀를 죽게 한 건 뭐였을까.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소외와 배제의 누적에서 오는 깊은 무력감? 노력의 점수를 매기며 가난을 개인 탓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선별적 복지의 사각지대? 어느 것이든 확실히 문제다. 또 다른 문제, 죽음의 순간에도 ‘미안’을 놓지 못한 세 모녀에게 정작 미안해야 할 이는 따로 있다는 것. 시대의 뻔뻔함을 그 어떤 성찰도 없이 자기 것으로 삼은 사람들, 부유는 빈곤이 지탱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 보이지 않으므로 없다고 믿어 버리는 사람들.


  『노랑의 미로』가 그러했듯이 최영철의 시집 『멸종 미안족』을 읽으며 나는 어쩐지 고단했다. 몰랐던 사실, 놓쳤던 진실, 새로운 시선이 주는 불편함과 충격 때문에 자주 멈칫했다.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 책, 오늘을 어제처럼 살지 못하게 하는 책을 만날 때면 피로하고 설레고 또 염려된다. 하나의 분기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 갈림길에서 차별과 혐오로 나아갈지, 이해와 공감과 연대로 나아갈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 끝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으나, 오늘과 다른 내일을 쉬이 만들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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