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 Jun 20. 2022

보고 듣고 묻고 싸우는 자의 슬픔

이중기, 『어처구니는 나무로 만든다』를 읽고


그들이 왜 방아쇠를 가져야 했나요

방아쇠 지나간 자리마다 송이송이 떨어져 누운

천 송이 만 송이 구절초 또 일만 송이……

그 죽음 누가 기획했나요

무릎 접고 엎어진 죽음이 어찌 왜곡되나요

죽음의 이유가 자꾸 덧칠되네요


비거스렁이 때 북산 너덜경에서 말 걸어오던

한 죽음이 자꾸 발목 잡았습니다

앞니 다 빠진 죽음은 발음이 흐릿합니다

                                                           -「죽음이 말 걸어오네요」 중에서


  기획된 죽음, 왜곡된 죽음, 자꾸만 이유가 덧칠되는 죽음은 인류 역사상 새삼스런 일이 못 된다. 그래서 잊히고 묻히고 또 반복된다. 죽음보다 더한 비극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와중에 죽음의 말을 듣는 자, 마음 편할 리 없다. 발걸음 쉬이 떨어질 리 없다. 이 시집은 죽음에 발목 잡힌 자의 노래다.          



우리가 소 돼지 삼백만이나 살처분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동족을 학살한 기억이 축적된 까닭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래, 저물녘 발잔등 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슬픈 좌파」 중에서


  시인은 말한다. ‘슬픈, 나는 좌파입니다’라고. 영천 시월항쟁을 시작(詩作)의 원천으로 삼은 그는 자신이 ‘왼쪽 영천’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월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느냐고/ 노래해서 안 되는 야만의 폭동이라고’(「나는 왼쪽 영천에 산다」 중에서) 말하는 오른쪽 사람들에 맞서 끈질기게 자기 고장의 숨겨진 역사와 이웃들의 말 못할 사연을 전해준다. 그가 슬픈 이유를 헤아려 본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 많은 사람, 사랑하는 세계의 깊은 상처를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 슬프지 않을 리 없다.

 


장맛비 쏟아지는 황토마당이었습니다

손잡이 죄 빼내버린 맷돌이 징검징검 놓여 있었고

어처구니없는 그 징검다리 오래 굽어보았습니다


넓은 그늘 좁게 썼던 좀생이 지주

보리공출 실적에 치사한 생 다 걸었던 영천군수

탄핵정국 늙은 철부지 태극망토 전사들

어처구니에 불붙여 활활 태우던 풍경 한 폭이

내 생의 서쪽에 걸려 있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맷돌 밟고 황토마당 가로질러 오라고

쥔장이 처마 밑에서 손짓했지만

그 맷돌 징검다리 징검징검 건너가지 못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징검다리


  시집 말미, ‘시인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해방 이후 현대사는 어처구니없는 것들투성이였고, 오래 한 집단이 어처구니만 빼내버린 맷돌 위에서 펼친 요망한 짓거리는 처처에 널려 있습니다. 마천루처럼 높이 쌓인 그 증거들을 눈여겨보는 동안 가슴은 수은주 이하 물처럼 차분하지 못하고 오래 들끓었습니다.’ 그가 맷돌 징검다리를 징검징검 건너지 못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페이지들을 자신의 생으로 품었기 때문이다. 차마 밟지 못하는, 무심히 외면하지 못하는 슬픔의 능력으로.



저 죽음이 구성되기 위해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저 죽음이 웬 죽음이냐

……

늑대로부터 양들을 지켜야 할 너희가

아들딸에게서 아버지를 들어내고

지어미에게 지아비를 들어내고

어머니들에게 아들들을 들어내버린

저기 불타는 마을의 죽음이 웬 죽음이냐

……

듣기는 해도 본 적 없어 말 못 한다는 너희들

                                                           -「묻는다」 중에서


  ‘시인은 불의와 싸운다. 잘 갖춘, 논리 정연한 세속과 싸운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과 싸운다. 권위와 싸운다. 찌든 타성을 누구보다 못 참아 한다. 타협하지 않는다.’ 발문에 실린 유용주 시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저항은 물음에서 시작한다. 질문 없는 곳에 싸움도 없다. 시인의 물음이 부디 허공에 흩어지지 않기를. 듣기는 해도 본 적 없단 이유로 무감했던 일들, 타성과 타협이 묵과한 지점들을 부러 들춰내는, 물음의 힘.

 

  정혜윤의 『앞으로 올 사랑』이라는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이 있다. ‘어둡고 슬픈 일은 나쁜 일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둡고 슬픈 그 일이 너무나 아파서, 아픈 나머지 길을 찾기 시작할 수도 있다. 아파해야 한다. 그 아픔을 막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 또한 아파해야 한다. 가슴 아파함 없는, 안쓰러움 없는, 연민 없는 사랑은 없다. 가슴 아파할 수 있음이 앎과 변화를 낳는다.’ 시 읽는 내내 아팠던 시간들에 얼마간 위로가 된다. 가슴 아파할 수 있음에 희망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