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 선율과 커피 그라인더 소음을 배경음 삼아, 다소 비장하게 시집을 펼친다. 시끌시끌한 카페에서 시집 읽기란 얼마간 허세가 필요한 일. 잡다하게 뒤엉킨 소리들이 시의 행간을 더 벌려 놓는다. 시선은 분명 시집에 꽂혀 있는데, 어느덧 옆 자리 대화를 흘려듣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번 시집, 뭔가 다르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귓가를 왕왕 울리던 잡음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눈이 반짝 뜨인다. 자세를 고쳐 잡고 한 구절, 한 구절 꼭꼭 씹어 삼킨다. 아,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오는 거지. 경탄과 질투가 뒤섞인 한숨이 연이어 새어 나온다. 책장 귀퉁이를 하나 둘 접다보니 어느새 모서리만 두툼해졌다.
시는 당신을 아프게 하려고 온다
평생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영혼에 심어주려고 온다
……
시는 아프려고 오고, 당신도
아파야 한다
그렇게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나쁜 시」 중에서
나를 아프게 하려고, 내게 치유 못할 상처를 남기려고 시가 온다니.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만남은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구절을 읽는 것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이 영혼에 새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정작 온몸으로 시를 토해낸 시인은 얼마나 더 아팠으려나. 그렇게 시를 품은 채 나가야 할 바깥은 어디인가.
바깥을 바라보는 일은
바깥에게 나를 조심스레 허락하는 일
내가 바깥이 되고 바깥이
도착지를 변경해주는 일
……
눈동자는 바깥의 흔적
영혼은 바깥이 쌓아올린 오두막
-「바깥으로부터」 중에서
화자의 시선은 어둑한 블라인드가 쳐진 고속 열차의 창문 너머를 더듬고 있다. ‘이 옷을 입었다 저 옷을 입었다 하는 가을 산’과 ‘메말라가는 산자락의 밭’을 ‘혼자이게 내버려’두는 동안 ‘안’은 ‘모래알’처럼 작아지고 종내 ‘흙먼지’가 되어 떠돌기만 할 거라고…. 무심한 듯 담담한 경고에 정신이 번쩍 든다. 시인이 서문에서 말하듯 ‘인간은 다른 존재들이 지어준 가건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데, 우린 왜 자주 오만해 지는 걸까. 그 무엇에게도 빚진 적 없다는 듯이. 바깥 없는 안은 없는 법이고, 내 눈동자와 영혼도 어딘가에 신세 진 형편인 것을.
아픔은 그래서 다른 종으로 넘어가는 끓는점 같은 것
뼈마디 사이로 불어오는 신의 숨결 같은 것
때로는 아픈 게 큰 싸움이 된다
-「큰 싸움」 중에서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사는 것만큼 속 편한 일은 없지 싶다. 부러 찾아 살피고, 미미한 목소리에게 듣는 귀가 되어 주고, 깨달은 바를 애써 나누려면 기꺼이 아프려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앓아야만 이 세계가 얼마나 잔인한지 보인다’라는 구절에는 아픔의 힘을 확신하는 자의 결기가 느껴진다. 싸움 없는 안주, 아픔 없는 평온은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사는 것일 뿐이라고.
얼마 전,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내 몸을 통과한 바깥의 슬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순간, 나는 다른 종이 되어보는 것일지도…. 얼음과 증기의 상태를 감히 상상해보지 못한, 모두가 결국 연결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는 맹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버리고 온 것들에게
건너가는 귓속말이면 된다
우리가 이룬 것들을
버리는 게 고요다
-「고요에 대하여」 중에서
고요는 ‘순백의 무음’이 아니라 ‘인간의 소리’를 걷어내고 ‘다른 목소리’가 되살아난 상태이며, ‘풀벌레 소리와 구름을 물들인 달빛과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바람과 건넛마을의 마지막 불빛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구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정의는 어째서 이리도 아름답고 절묘한가. ‘버리고 온 것들에게 건너가는 귓속말’이 바로 시가 되겠지.
목숨은 이렇게 흐를 뿐이다
사랑이 이곳도 저곳도 아니듯
설렘은 불안이거나
미지를 향해 번쩍이는 섬광이듯
이 시간이 끝나야 다른 시간이
찾아오는 건 아니다
……
폭풍에 휩싸인 들판에게만
고요를 품은 영혼이 있다고
-「저녁노을」 중에서
화자는 ‘명징’에 대해 회의한다. ‘붉은 듯 검은 듯 배회하다 물소리 곁에 눕는’ 태양, 그가 만들어낸 저녁노을을 보면서. 모호한 경계, 중첩된 세상, 그럼에도 너와 내가 선연히 단절된 듯 살고 있는 사람들. “너는 나다.”라는 말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바깥과 아픔과 상처를 품은 폭풍만이 비로소 고요를 품게 되리라. 같은 책, 「옛집」이라는 시에서 말한다. ‘덕지덕지 자라고 있는 누더기가 존재의 문양’이라고. 나는 삶의 한 순간마다 어떤 바깥을 누비고 덧붙이며 내 존재의 문양을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 ‘지루한 문장을 다시 노래하게 하는’ 노을의 문양을 꿈꿔본다.
어찌할 수 없는 때만 꼈다
그리고 그것이 가끔 빛나기도 했다
때를 사랑할 수 있을 때만
웃음은 순간 깊이를 얻고
-「때」 중에서
세상이 말하는 관(官)이나 관(冠) 대신 ‘때’를 쓰고 살아왔다는 시인의 고백이 꽤나 능청스럽다. 때가 빛나는 순간, 때를 사랑하며 비로소 깊어진 웃음은, 버리고 온 것들을 제 것으로 삼은 자만이 누리는 경지가 아닐까. ‘버리고 온 것들에게 건너가는 귓속말’을 숨죽이며 엿들었다. 감사한 시집 덕에 내 바깥이 좀 더 넓어진 느낌. 내 안의 누더기가 또 한 꺼풀 덧대며 아프게 덩치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