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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Mar 31. 2021

생애 처음 협찬받고 써보는 서평 아닌 서평

'D2C 레볼루션'

한 달 정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별생각 없이 브런치에 들어갔는데 누군가가 제안을 하였다는 알람이 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에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출판사에서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새로 출판하는 책이 있는데 한번 읽어보겠냐는 것이었다. 책이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기에 나로서는 기쁜 제안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는 생각에 책을 받게 되면 서평을 작성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물론 어떤 내용의 책인지 확인했기에 출판사에서 서평 작성을 원한다면 기꺼이 써 줄 의향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물론 써주면 감사하겠지만 부담 없이 읽어달라는 답신을 받았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에 책을 받았다. 

 

[출처 : YES24]


'D2C 레볼루션' 여기서 D2C는 'Direct to Consumer'로 업체가 아마존과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을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와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해당 분야에 전통적인 강자(그것도 아주 강력한 시장지배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고객과의 직접 연결이라는 전략으로 새롭게 시장에 자리 잡게 된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사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야기했지만, 이 글은 작성될 예정이 아니었다. 책을 처음 받고 나서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긴 했지만 서평을 쓰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 하면 나는 책의 엉뚱한 부분에 꽂혔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기존에 시장에서 탄탄한 위치에 있는 기업들을 상대로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스타트업들의 생존 수기와도 같다. 게다가 저자의 필력과 취재 등으로 그러한 생존 수기는 꽤나 생생하게 그려지기에 충분히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원하는 혹은 출판사가 원할 만한 이른바 'D2C'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글에서 다루고 싶지 않았다. 왜냐 하면 나는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꽂혔기 때문이다. 협찬으로 받은 책에 대한 글을 쓰는데 책의 주제의식과 다른 방향으로 글을 쓴다면 아무리 부담 없이 읽으라고 주어진 책이라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이른바 꽂힌 부분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생애 처음 협찬받고 써보는 서평 아닌 서평'으로 정했다. 책의 주제의식을 다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제목을 쓴다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말이다. 


서두가 길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꽂힌 엉뚱한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우리 회사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수업에서 다룰 연구 사례로 남을 것입니다."


이 멘트는 이 책에 등장하는 놀라운 스타트업을 창업한 사람이나 투자한 사람 혹은 관련된 학자가 한 말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 형태의 조직을 만들면서 외부에서 새로 영입해 온 CEO가 자신의 사업을 두고 한 말이다. 


미국 매트리스 시장의 70%는 썰타 시몬스와 템퍼-씰리가 장악하고 있었다. 물론 그 둘은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제조업체와 소매업체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물론 판매원이 하루에 매트리스 두 개만 팔아도 좋은 실적을 거두고 획득하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매우 편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과점시장에서 시장 지배자의 힘은 막강하다. 이러한 과점 상태의 시장 지배자가 존재하면 통상 소비자에게 불편이 발생한다. 선택지가 없다는 이유로 구매 과정에서 애를 먹는 소비자가 발생하기 쉽다. 관련해 '터프트앤니들'이라는 기업을 창업한 이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유사한 사업모델로 '캐스퍼'라는 기업도 만들어졌다.


매트리스 업계에 등장한 스타트업 덕분에 썰타 시몬스 역시 이들에 대항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온라인으로 매트리스를 판매하는 기업을 설립하기로 하고 외부에서 임원을 데려 온다. 20대에 자동차 부품을 판매하는 전자 상거래 기업을 창업해 연매출 30억 달러를 달성하는 기업으로 키워내고, 해당 기업이 이베이에 인수되어 이베이모터스가 된 뒤 그곳의 경영을 맡고 있던 브라이언 머피가 바로 그다. 썰타시몬스에 합류한 그는 썰타시몬스가 설립한 '투모로우슬립'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그리고 위와 같은 말을 남긴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 그는 대기업이 설립한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학교의 연구 사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투모로우슬립'은 사업을 접었다. 경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기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썰타시몬스는 '투모로우슬립'을 설립하기 이전에 검토했던 대안인 D2C 스타트업 업체의 인수를 실행했다. 썰타시몬스가 터프트앤니들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퇴사한 머피는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대기업은 혁신 기업을 인수하거나 여기에 투자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이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는 나도 자사를 내부에서 성공적으로 변화시킨 기업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조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렵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장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기업이 기존과는 다른 사업모델을 가지고 성공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다른 사업모델을 구현하기 위해 별도의 조직을 꾸리고 외부 인원으로 조직을 채운다고 해도 모기업의 영향력이 사라지기란 쉽지 않다. 


야심차고도 치밀한 계획으로 시작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사업 혹은 프로젝트들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얼마나 될까? 0.0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공한 프로젝트들은 초반부터 빵 하고 뜨면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을까? 글쎄다. 물론 초반부터 대박이 되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이쯤 되면 실패의 공동묘지라는 게 있다면 그 앞에서 새로운 묘비문을 만들어내는 사람만 노났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수많은 실패는 사실 당연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실패는 한도가 없는 것이다. 물론 재기불능의 상태가 될 만큼 실패하거나 한도가 없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실패만을 위해 일해서도 안 될 것이다(당연히 그럴 사람도 없겠지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를 용납할 수 있느냐이다. 실패를 흔한 말마따나 교훈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사업모델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되는, 동일한 회사 내의 신규 사업모델은 실패가 용인되기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성공했는데, 왜 안 되니?"


이런 상황이 굳이 위에서 언급한 사례에서만 확인될까? 사업과 같은 거창한 네이밍이 붙는 일이 아니더라도 매일매일을 회사에서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고 말이다. 위에서 했던 말 하나를 수정해야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화할 수 있도록 실패를 용인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스스로를 미국 국내에서 중고차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판매원이라 말하던 머피의 혜안은 결국 들어맞은 셈이다. 아마 '투모로우슬립'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연구 사례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현실이 너무 예상되었던 방향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성공이 수많은 실패 속에서 등장하는 것임을 대부분은 인식하고 있지만, 그래도 실패는 용납하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성공 또한 어렵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지만, 쓴 것을 먹는 걸 피하는 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꽂혔던 또 하나의 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콜센터에 명문대 졸업생을 배치하는 안경테를 취급하는 '와비파커'라는 스타트업의 이야기다. 매년 4~5억 달러로 추정되는 매출을 기록하고 기업가치를 약 17억 5천만 달러로 평가받는 기업을 스타트업이라 부르기는 뭣하지만, '와비파커'는 명문대 졸업생에게 콜센터 업무를 경험하게 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2018년 추수감사절 전날 밤 마크 일라이는 얼마 전에 구입한 와비파커 안경의 렌즈에 작은 흠집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흠집난 렌즈를 1년 동안 무료로 교체해 주겠다는 보증서를 동봉해 받았기 때문에 그날 저녁 고객 서비스 팀에 문자를 보냈다. 시기를 따져 봤을 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휴일이 끼어 있어서 다음 주까지도 아무 답변을 듣지 못할 공산이 컸으므로 아마도 이메일을 다시 보내야 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라이의 예상은 빗나갔다. '30분 후에 이메일 두 통을 받았습니다. 첫 메일에는 새 안경의 배송이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었어요. 두 번째 메일에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안경을 반송할 때 사용할 꼬리표를 첨부합니다. 이전 안경을 반드시 되돌려 보내 주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문제를 확인하고 원인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더군요.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추수감사절 전날 밤 9시였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예, 이것이 문제군요. 즉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중략)...
이와 대조적으로 와비파커는 콜 센터 직원들이 고객과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첫 지점이므로 고객과 유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고객이 전화하면 직원은 6초 이내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자사의 수신자 부담 번호를 숨기려 하죠. 고객 서비스를 가능한 한 축소해야 하는 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블루멘탈이 설명했다. '반면에 우리는 고객 서비스를 수익 부문이면서 자사 브랜드에 대한 투자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고객은 추천으로 발생해 트래픽과 판매를 움직이는 최대 동력이에요. 고객을 행복하게 해 주면 결국 회사에도 이익이 됩니다.'
-로런스 인그래시아, 2021, 'D2C레볼루션'


사실 대부분의 본질적인 명제들은 변함이 없다. 앞서 언급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나 '고객의 경험과 고객과의 관계가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명제다. 하지만 실천은 다른 문제다.  


어디에서든 잡일이라 부를 만한 일이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그러한 잡일은 꼭 필요하지만 수고스럽다. 결정적으로 잘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마치 공기와도 같은 존재다. 꼭 필요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거창한 전략이나 재무, 마케팅 같은 폼나는 직무가 아니라서 어딘가에 대놓고 자랑하기도 힘든 일들(물론 거창한 직무 내에서도 잡일은 존재한다).  


그런데 고객이 존재하는 형태의 일이라면(사실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고객의 반응이 성공의 핵심적인 열쇠라면 그것을 정확하게 알기 위한 노력은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잡일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져 있기 일쑤다. 필자가 사례로 사용하기를 즐기는 [미라이 공업]의 야마다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미라이 공업에 대한 이야기는 필자가 예전에 쓴 서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업 사원은 될수록 현장에 가는 게 좋아.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왜 그럽니까'하고 업자들에게 물어야 해. 상대방도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가르쳐주지는 않을 거야. 대답 전문가는 아닐 테니까. 그래도 지치지 말고 열심히 물어보면 결국에는 지나가는 말로 '00가 쉽게 구부러지거든'하고 문제점을 말해줄 때가 있지. 그럴 때까지 묻고 또 물어야 해."
-야마다 아키오, 2014, '야마다 사장은 돈 버는 법을 알고 있다.'


멋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수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 숱한 실패 사례들과 하찮게 보이는 이른바 잡일까지. 하지만 업(業)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애써 회피할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도망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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