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 결산
한 권의 책을 읽었다면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글의 형태가 무엇이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는 읽었던 책의 양 대비 이른바 독후감을 많이 쓰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해 하루에 주어지는 1~2시간의 자유시간 동안(가끔은 없기도 한) 책을 읽는 것밖에 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나의 한계다.
물론 그렇다고 나를 야단치고 싶지는 않다. 사실상 자유시간이 없었던 2019년에 비해 2020년은 그래도 여러 책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해의 독서를 결산하면서 그때 그냥 멍하게 있지 말고 좀 더 읽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정도라도 읽은 게 어딘가 하는 뿌듯함도 마음 한편에 수줍게 자리 잡고 있다.
올해의 독서는 미뤄두었던 책으로 시작했다.
[개혁의 확산]은 사실 예전에도 한번 읽었던 책이지만 꼼꼼하게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생각했던 책이라 다시 한번 읽었다. 명백히 좋은 결과를 낼 것으로 보이는 '개혁' 조치 들이 실제 확산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연구서이자 교과서이다. 아마 이후에도 두고두고 참고하지 않을까 싶다.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은 제목과는 다르게 혹은 제목과는 동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르고도 동일한 점은 진짜 방정식을 찾아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디테일한 통계 분석을 기반으로 한 성공에 대한 저자 나름의 방정식은 실제로도 곱씹어볼 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정말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경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분야와 상관없이 꼭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숫자가 아닌 역사로 만들어진 경제발전의 논리를 확인하는 건 경제를 다룬다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특히 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머릿속에 오가는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사회과학 서적 등을 뒤적거리다 보면 소설은 어느새 읽을 틈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정하고 e북으로 쌓여있던 소설들을 읽었다. 사실 읽은 것보다 쌓여 있는 것이 아직 훨씬 많지만 그래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두 도시 이야기]의 엔딩은 소름마저 돋을 정도였다.
역시 벼르고 있던 책들을 읽었다. 아마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는 이후에 다시 한번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의문이었던 국가 부채비율 60%라는 기준의 출처 아닌 출처를 확인하게 되어 좋았었다.
이제 돌이켜보니 나에게 2020년의 책으로 꼽힐만한 두 권을 연속으로 읽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나름의 독후감도 썼으니 특별한 언급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나중에는 [대망] 버전으로도 한번 읽어볼까 싶다. [21세기 자본]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이 정도의 데이터와 분석을 가지고 책을 썼는데 반대 논리라면 비슷한 작업이 필요한 것 아닌가? 피케티의 작업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관심 있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두께에 쫄지 마시라'이다. 꼼꼼히 데이터를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므로.
[애프터 피케티]를 읽는 건 [21세기 자본]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다. 피케티의 논지를 강화하거나 반박하는 학자들의 논문은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상당수가 치밀하게 작성된 것들이라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 많았다. 이후에 연결되는 작업들이 있다면 조금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시작되었다. 미국 달러의 미래에 대한 살펴보는 일이. 관련해서 결과물로써 이번에 4편의 글을 썼지만 사실 이에 대한 고민은 오래되긴 했다. 특히나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 후 세수는 줄이는 데 세출은 늘리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미국 달러라는 특별한 지위의 화폐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에 결정타를 날려준 건 2020년 3월 금융시장이 보여준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부족하지만 몇 편의 글을 남기긴 했다. 혹 누군가 관련해서 추천을 요청한다면 입문서로는 [달러 제국의 몰락]과 [글로벌 불균형]을, 조금 더 공부하겠다면 [화폐와 금융의 역사 연구]를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미국 달러가 아니더라도 화폐와 관련해 뭔가를 좀 알아야겠는데 가볍게 접근하고 싶다면 [인플레이션]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이켄그린의 [황금 족쇄]를 읽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완독을 포기했다. 잠시 책을 읽을 수 없다가 짬짬이 정말 조금씩 읽어갔다. 그런 점에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어지럽고 어려운 마음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박준 시인은 정말 잘 쓴다. 아마 그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게 될 것 같다.
[규칙 없음]은 지금 구상하고 있는 것(조직, HR) 관련해서 읽었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직에 대해 고민이 있는 사람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다. 이런 방식이 조직에서 된다 안된다 하는 그런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원점에서 문제를 살펴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돈]은 사실 대단한 책이다. 화폐의 속성에 대해 이 정도로 깊이 있는 통찰을 접해보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좀 어렵다. 다시 읽어봐야 하는데, 언제가 될지, 그런데 다시 읽기는 할 것 같은 책이다.
돌이켜보니 부족한 수준이지만 글로써 고민의 흔적을 남긴 것도 있고, 리스트에만 넣어놓고 시도하지 못했던 책들 중에 읽은 것도 있는 등 나름 알차게 보낸 2020년의 독서였던 것 같다. 내년 이맘때에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으려나. 어렵고 어지러운 시간이 계속되겠지만 그때 마다 결국 무엇인가를 찾아내겠지. 그냥 막연하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