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유혹의 기술]을 읽고
현대 사회에 ‘홍보’만큼 모든 일에 필수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또 있을까? 어떤 종류의 회사를 다니든 심지어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조직이나 본인의 성과물에 대해 잘 알리는 것은 이제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 ‘대중 유혹의 기술’은 대중을 유혹하고 싶은 수많은 사람을 유혹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내용 또한 무척 쉽게 그리고 유려하게 읽힌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대중 유혹에 성공했다는 느낌이다. 책은 각종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유혹의 기술과 관련해 자연스레 읽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볼거리, 입소문, 드라마, 공포와 분노, 아이콘, 이미지 조작, 무의식 등 홍보의 원칙으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기술(?)들이 사례와 함께 쉬우면서도 통찰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여성 해방과 흡연을 연결시키기, 베이컨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미국인의 식습관을 변화시키겠다는 아이디어의 구상과 실현, 신정아·변양균 사건에서 드러난 드라마투르기의 위력, 타이레놀 독극물 주입 사건에 대한 대응, 히틀러와 그의 사진사 이야기, 링컨이나 스탈린 등의 조작된 이미지, 레드불의 말도 안 되는 이벤트 등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개념과 사유들 대신 머리에 쏙쏙 박히는 사례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만으로 이 책을 평가하는 것은 이 책이 진정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비법처럼 느껴질 몇 가지 방법론들이 이 책의 핵심이기보다는 대중의 저변에 자리 잡은 인식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대중 유혹의 기술이라고 책은 나지막하게 말하고 있다.
트렌드나 사회관계망 분석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심층의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표층의 흐름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중의 무의식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체인 대중의 무의식을 아는 것은 두 개의 도시가 만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다. 그것은 그 사람들 수만큼의 올드스트리트가 합쳐진 드넓은 무의식의 공간을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욕망, 각자의 결핍, 각자의 부끄러움의 기억들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형태의 지도로 그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법과 지름길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질 수만 있다면 만고에 없을 그런 비기(祕技)를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표층에 드러나지 않는다. 책에서 천재로 등장하는 버네이즈의 책장처럼 말이다.
뉴욕시립대 스튜어트 유엔 교수가 버네이즈의 집을 찾아간 1990년 10월 12일, 버네이즈가 1층 서재로 내려오기를 기다리다 주위를 둘러보며 남긴 글은 인상적이다.
버네이즈를 기다리면서 나는 널찍하면서도 높은 천장을 가진 서재의 책장들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방대한 책을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수천 권은 되어 보였다. 여론, 개인 심리, 사회심리, 조사 기법, 프로파간다, 심리전 기술 등 100년 이상에 걸쳐 저술된 인간의 동기 유발과 영향력 전략 등에 대한 종합적인 도서들이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천박한 광고업자의 책장이 아니라, 한 지식인의 무기고였다.
결국 진정한 대중 유혹의 기술은 치밀하게 인간을 이해하고 분석해야 얻을 수 있는 비기(祕技)인 셈이다. 그래서 때로는 한 페이지조차 넘기기 힘든 책들과 하등 세상에 필요 없을 것 같은 생각들이 유효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히기에 너무나 유혹적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