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고치는 남자
가을의 궤도(지나온 길 + 지나갈 길)를 따라 밤의 시간이 길어지면, 서머타임 시계들은 여름의 시간을 잠그고 일제히 겨울 채비를 하였다.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지자, 런던 빅벤에서도, 맨해튼의 헤럴드 스퀘어에서도, 시계 장인들은 보는 이 없는 틈을 노려 시침을 열한 칸 앞으로 움직였다. 미국, 유럽, 중동,.. 시간은 정확히 한 시간 뒤로 되돌아갔다.
공공연하게 시간이 고쳐지는 그런 밤이면, 대개는, 덩달아 잠 못 이루어하였다.
그리고는.. 마치 술에 취한 듯이..
울 엄마가 죽던 날, 큰 아이가 태어나던 날, 작은 아이가 처음 걷던 날, 심지어 '카를교에 비 내리던 밤'과 같은 아주 사소한 기억까지.. 무작위로 뽑혀 나오는 기억들.. 그 기억 속 구체적 지(시)점의 감정, 공기, 사람, 목소리, 대화, 풍경, 기억 속 존재들의 그 희미한 진동까지 기억 속에 살아있었다.
지극히 기본적인 감정의 과잉 지점들을 찾아내어 오버헤드 프로젝터 위에 한 장씩 올리고선, 파랗고, 노랗고, 빨갛고, 긴 밤을 같이 새우는 낭만 양초의 속 색깔을 살피듯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기만적 영상들을 남몰래 들여다보곤 하였다.
'나도 한 번 시간을 고쳐볼까?'
... 반쯤 잠에 빠진 깨어있는 의식으로 시계탑에 오르고, 망치를 손에 쥔 채로 삐거덕 소리 나는 기어에 윤활유를 바르고, 시침을 몇 칸 아니 몇 바퀴를 돌려야 하는지 아리송한 속셈을 한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낭만 양초의 촛농이 굵게 흘러내리는가 싶더니, 길가 쪽 창문으로 하늘이 밝아오는 새벽의 빛이 들이치곤 하였다.
서머타임이 없는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새벽 두 시가 되어도, 시간을 고쳐 볼 일 따위는 같이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일까, 그때 말이지, '내가 시간을 고치려던 것이었을까, 시간이 나를 고치려던 것이었을까.' 아주 가끔 궁금해하였다. 때로는, 한 술 더 떠서, '시간은 시계의 숫자가 아니다. 내 의식 속에서 지속(Durée)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을 고쳐 기억 속으로 가겠다는 게 뭐 그리 한심한 발상은 아닐 것이다.' 혼자서 그렇게 베르그송* 철학 놀음을 하기도 하였다.
카를교에 비 내리던 밤
어두운 저녁이었다. 블타바 강 위로 보슬비가 내리고, 카를교의 돌바닥은 거무튀튀한 은빛으로 젖어갔다. 아이들은 아무 뜻도 없이 우산을 들고 섰다. 그저 비가 재미있고, 바람이 차가워서 코끝이 찡할 뿐이었다. 그 순간이 훗날 얼마나 멀고 아득해질 수 있는지를 아이들은 알지 못하였다.
젖은 공기 속에서 황금색 불빛들은 물의 입자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간간이 휘청거렸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돌다리에 늘어선 서른 개 성상의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더니 네포무크의 성 요한 머리 뒤 다섯 개의 별에 땡그랑 부딪힌 다음 프라하 성이 우뚝 선 쪽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아이들의 목소리, 젖은 돌바닥의 냄새, 그 조용한 사랑의 형상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간이 비 내리는 카를교 풍경에 한껏 스며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설명 못 할 완전함이었기에, 시간이 멀리 데려가 버릴까 봐, 사진처럼, 아니 그보다 더 진하게, 눈으로, 마음으로, 손끝으로 그 순간들을 붙잡아보려 하였다. 젖은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드는 그 밤에.. 연신 숨을 삼켰다.
물어보지는 않았어도, 나를 제외하고는,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그 순간들이, 아빠에게는, 훗날 얼마나 멀고 아득한 기억이 될지를.
... 세월은 언제나, 조용히, 뜻밖으로 흘러가는 게 나름 법칙이었다...
나도 이제 더는 풋풋하지 않고, 시간을 고치는 남자가 되겠다는 야심(夜心)은 늦가을 나무 이파리처럼 갈 곳을 잃었다. 아이들은 이젠 다 컸다며 저마다의 우산을 들고 서로 다른 도시의 서로 다른 다리 위에 서 있기를 바랐다.
이제 더는 아이들의 보호자가 아닌 듯한 나는, 이제 더는 쉽게 설레지 않게 된 나는, 비 내리던 카를교의 계절이 오고, 그 밤을 닮은 비라도 내릴라 치면, 이따금은, 의도적으로, 그때인듯한 기만적 환영의 기억 속에 우두커니 서 있곤 하였다.
왜 유독 카를교의 비 내리던 밤에 그리 집착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워도, 만약 단 한 번만이라도, 다 같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십 년의 미래쯤은 기꺼이 내어줄 수 있겠다도 싶었다. 그때의 젖은 공기, 그때의 황금색 불빛, 그때의 흩어지는 웃음 속에서, 가장 나 다운 나는, 감정의 과잉이라 할 만큼 완전한 숨을 내쉬며 - 그저 그 순간을 붙들고 싶었겠다.
또 하루의 오늘을 산다
그리고, 또다시, 카를교에 비가 내리던 그날의 계절을 맞는다. 봄 → 여름 → 가을.. → (그리고 또다시) 가을. 사람이 삶도 그렇게 순환하면 좋으련만.., 나는 더는 그날처럼 풋풋하지도 않고 쉽게 설레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사는 건 왜 또 이리 번잡하고 심심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현관을 나서며 "아, 출근하기 싫다." 아침 댓바람부터 투덜거린다.
퇴근 지하철에서는 곧 자리에서 일어설 것 같은 관상을 찾아서 재빨리 그 앞에 버티고 선다.
저녁 먹고는 피트니스센터에 들른다.
주말이면 서촌의 프랑스 빵집 테라스에 앉아 볕을 쬔다. 햇살이 느려진 탓인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는 카푸치노가 더 좋다.
창가의 유포르비아를 분갈이하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하늘을 본다. 나무 아래를 떠다니는 호박빛 그늘을 바라본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안산에 오를까?" 큰 아이는 대꾸가 없다. 마지못해 따라나선 작은 아이는 뭐 이리 오래 걷냐며 짜증을 낸다.
깨끗한 가을이길래.. 그녀와 둘이서 산길을 걷는다. 오밀조밀 돌덩이가 성벽을 이룬 길을, 카를교 위를 걷듯이, 블타바 강을 건너듯이, 사뿐히 밟아 지난다.
유리처럼 맑은 가을 아침에.. 그녀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서 걷는 방식을 보고선, 폭풍처럼 크게 놀란다.
풋풋함을 잃어가도, 사랑이 짙붉은 색깔은 아닐지라도, 딱풀의 끈적임으로 둘 사이 걷는 간격을 이어 붙이며 산길을 찝쩍댄다. 지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걷는다. 잎사귀들이 나무를 떠나 길을 잃어가는 몹쓸 광경에 고개를 떨군다. 오늘 하루를 산다는 것이 발 밑에서 뚜렷하다. 그러고 보니, 시간을 고쳐보겠다는 생각을 그만둔 지도 꽤 오래되었다.
친애하는 몬탈레의 '어쩌면 어느 날 아침'** 그 애정해 마지않는 오래된 시처럼 우리 둘은 깊고 아름다운 하루 속을 걷는다:
어쩌면 어느 날 아침, 유리처럼 맑고 건조한 공기 속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내 뒤의 허무, 내 뒤의 공허,
술에 취한 것 같은 공포와 함께.
그러면, 마치 스크린 위의 한 장면처럼, 나무, 집, 언덕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언제나처럼 기만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이젠 너무 늦으리라;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사이로
내 비밀과 함께 조용히 걸어가리라.
나와 그녀는 그렇게 또 하루의 오늘을 산다. 우리의 하루를 응원할 곳은, 걷다 보면, 저쯤에서 나타나리라.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만 계속 걷는다.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은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시계처럼 측정 가능한 '죽은 시간'이 아니라 의식 속에 흐르는 '살아있는 시간'을 강조하며, 기억은 지속(Durée)의 흐름 속에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되살려 체험하고 현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에우제니오 몬탈레(Eujenio Montale, 1896~1981)의 시 'Forse un mattino andando in un'aria di vetro'. 블루밍드림 역시(譯詩). 몬탈레는 이탈리아의 시인, 작가, 편집자, 번역가였으며, 197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