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테오티우아칸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내 그 남자의 곁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내가 그날의 그 남자를 기억하는 방식은 특별할 것까진 없었다. 스물예닐곱쯤으로 보이는 남자의 양쪽 어깨 끝에서 상복(喪服)의 어깨선이 툭 떨어졌다. 물을 발라 넘긴 듯한 정돈되지 못한 머리, 울음을 다 써버린 듯한 퀭한 두 눈, 검은 두 줄 삼베 완장만큼이나 핏기 없이 누렇던 얼굴, 장의버스에 오르며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살짝 찢긴 눈매가 바짝 메말라서 섬뜩한 몰골이라 생각하였다. '쯧쯧, 지가 죽게 생겼네.' 싶던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날 이후, 우연찮게도, 그 남자를 여러 번 더 보았다. 비 내리는 저녁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오를리행 리무진 버스에 오르는 남자를 멀찌감치서 알아보았고, 몇 해가 더 지났을까. 암스테르담 어느 카날을 건너던 남자와 마주치기도 하였다. 그때는 아이들이 있어 아빠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몇 해가 또 더 지났을까, 어느 가을밤인가, 내가 7025번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사직단 앞을 지날 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가로등 아래 모여 죽은 메마른 이파리들을 툭툭 발로 차는 그 남자의 실루엣을 보기도 하였다.
그런 날이면, 금방 꺼질 듯 애처롭고 불안하던 그날의 그 남자도.. 떠나보내지 못할 사람을 떠나보냈어도.. 결국은, 어떻게든, 또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 처음 아파보는 것 같은 통증의 몸살을 앓곤 하였다.
그런 날이면.. 언제쯤이면 내가 내 곁을 떠날 수 있을까.. 기억이 무너져 내리곤 하였다.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멀고 먼 애니깽의 나라에, 테오티우아칸이라는 곳에, 달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 그리고 그 둘을 있는 죽은 자의 거리가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내 젊음의 힘든 무게를 내려놓을 이상(理想)의 장소로 우수아이아를 꼽았던 것처럼, 검은 두 줄 삼베 완장을 찼던 그날의 내 영혼을 반환하고픈 구원적 충동으로 테오티우아칸을 동경하였다.
떠나보내지 못할 사람을 떠나보냈다는 자책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우리(나 + 내가 지켜보는 나)의 이상의 장소가 아닐는지.. 그런 망상을 하였다.
그곳에 간다면, 나는 섰고 시간은 고독과 허무의 궤적을 뿌리며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방식으로 패닝 샷**을 꼭 한 번 찍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부재를 지독한 아픔으로 견디며 살아온 노고에 대한 너무 늦지 않은 감사인 것처럼.
"세상의 끝에서 그들이 오는 것은 네 자잘한 소망까지 채워 주기 위해서지."***
해발 이천미터를 넘는 멕시코 고원에 8월의 따가운 햇살이 수직으로 내리쬐던 어느 여름날, 마침내, 일직선으로 쭉 뻗은 올곧은 죽음의 질서와 아름다움과 평온과 공포의 그 길 위에 우리가 섰다.
두터운 구름 사이로 하늘은 잔혹하리만큼 시퍼랬고,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은 시퍼런 오만함에 불타버린 영욕의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는 죽은 자의 길에 징조를 던졌다.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돌무더기를 실어 날라야 하는 이 도시로 대체 왜 사람들이 몰려든 거죠? 25만 명이나 살았다면서요?"
"그것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네?"
"여기서는 하층민들도 꽤 잘 살았다는 게 핵심입니다. 오늘날 대도시로 오는 사람들의 이유와 같은 거죠. 더 나은 오락, 다양한 사람들, 음식, 그리고 물론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겁니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오른쪽으로 비켜두고, 달의 피라미드 방향으로, 죽은 자의 거리를 걸었다.
돌마다, 그림자마다, 무언가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역사라고 말해야 할까, 기억의 무게라고 말해야 할까.
셀카봉을 든 관광객 무리가 그 길을 걸었다.
신을 향해 돌을 쌓고 인간을 바쳐 자신을 증명하던 시대의 무모함이 사라지고 나니, 사람들은 이제 SNS라는 신에게 자신들을 바칠 모양새였다.
“인간은 열정으로 결국 자기 자신을 소모하지요.”
잠시 눈을 감았다.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머리카락 사이로 먼지가 흩어졌다.
그 순간, 오직 태양만이 뜨거운 숨을 내쉴 뿐, 모든 소리가 멈춘 듯했다.
안데스콘도르가 깊고 깊은 콜카 협곡을 활공하는 것처럼, 의문에 싸여, 죽은 자의 거리를 걸었다.
길을 압도하는 침묵은 인간이 내는 소리를 삼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고요함은 위대한 도시의 신비로운 폐허를 되새기는 데 최적의 조건이었다.
2.5km 길을 따라 바람이 불라치면, 기도 같은 울림이 스쳤다.
신들은 사라지고, 신에게 바쳐진 인간의 흔적이 여기저기 돌 위에 나뒹굴었다.
태양은 하늘 한가운데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그 불변의 광휘 아래, 인간의 생은.. 누군가의 끝 기억 속에서 서서히 식어가는 것..
이 도시가 왜 무너졌는지 아무도 모른댔다.
달의 피라미드를 돌아 나와 죽은 자의 거리를 남쪽 방향으로 걸었다.
신화 속 깃털 달린 뱀의 이름을 딴 기념비적인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열광적인 사람들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설명하기 위해 기발하고 초자연적인 설명을 지어냈다.
"희생자들이 경사진 석회암 계단으로 끌려 올라갔습니다. 죽어가는 비명을 흉내 내는 호루라기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지면 섬뜩한 희생 제사가 시작되었지요. 대사제는 희생자의 흉갑에 단검을 찔러 넣어 흉골의 갈라진 틈을 깨고 펄떡이는 심장을 도려낸 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이야기는 담담했지만, 뜨거운 돌 냄새 뒤에, 피가 굳은 듯한 쇳내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또다시 달의 피라미드 방향으로 죽은 자의 거리를 걸었다.
그 길은 끝없는 질문이 있는 곳이고, 답은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새를 떠올렸다. 마지막의 순간에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안데스콘도르를.
내가 산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끝을 배웅하기 위하여 끝까지 머무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안에 상주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필이면 지금 외국에 있어요."
몇 해 전 아이들 외증모할머니 초상을 치를 적에 처남이 문상객을 맞아 나를 두고 했다는 말이 참으로 옳구나 싶었다.
이번 추석에 서울에서 충주까지 성묘를 다녀오며, 엄마를 기억할 사람도, 엄마의 편안한 끝을 배웅할 사람도 내가 그 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생각에 이르기 위해 여태 나는 그날 그 남자의 곁을 떠나지 못했었나 싶었다.
"이제 그만 파묘하고 화장해서 멀리 가는 바람에 실어 보내야겠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 어릴 적 살던 깡촌 시골에서 상여 운구를 보았었다. 삼베옷을 차려입은 상여꾼들의 어깨 위에서 꽃가마가 춤을 추었고, 높은 자리의 남자는 딸랑딸랑 소리를 반주 삼아 "아이고, 아이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그런 소리를 냈었다. 나도 어른들 뒤에서 "아이고, 아이고" 따라 했었다. 이제 한 번 더 "아이고, 아이고" 미소 띤 곡소리를 해보며 끝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의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 중에서
**패닝 샷: 움직이는 피사체를 정지된 프레임에 담는 사진. 피사체는 선명하게, 배경은 움직이는 방향으로 흐릿하게 처리되어 역동적이고 속도감 있는 느낌을 표현한다.
***샤를 보들레르의 시 '여행에의 초대' 중에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북동쪽에 위치한 테오티우아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고대 도시이다. 기원전 2세기쯤부터 도시의 틀을 갖추며 발전하다가, 7세기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고, 이 도시의 진짜 이름조차 알려진 게 없다. '죽은 자의 거리'는 후대 아즈텍 사람들이 길 양쪽에 세워진 건물들이 무덤인 줄 잘못 생각해 그리 이름 지어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