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다른 두 방식의 가을빛

by 블루밍드림

아름다움 속으로 더는 깊이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겨울로 떠나는 막차에 올라타려니, 알지 못할 설움이 훅 치고 올라옵니다.


아침 하늘색이 싸하지는 않길래, 이러고 있지 말아야지, 동네 마트 갈 때나 어울리는 옷차림에 패딩 조끼를 걸쳐 입고 고궁을 찾아 집을 나섭니다.


창경궁에서 늦가을을 줍는 아이들


"얘들아, 여기 좀 봐봐. 나뭇잎 색깔이 다섯 가지나 돼. 얘들아, 얘들아."


소풍을 나온 걸까요, 초록 모자를 쓴 아이들 중 누구도 나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색의 햇살이 드리우니, 살짝 떨리는 건 외려 인솔 선생님인 듯합니다.



한 아이가 쪼그려 앉아 흙 몇 알을 줍자, 어느새 모두가 따라 합니다. 그 작은 움직임에 맞춰, 잎은 잎대로 반짝입니다. 들뜬 가을빛이 아이들의 소리 없는 소란스러움을 따라 이리저리 뛰노는 듯합니다.


두 아이의 풋워크가 뒤엉킵니다. 땅바닥에 넘어져도 어느 한 녀석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였으면 어땠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칩니다. 아빠가 부리나케 뛰어가지는 않았을까요?


나무와 이파리와 하늘만 찍어대던 핸드폰 카메라가 단풍색 조끼의 아이들을 담습니다. 우리 집 전속 모델들을 찍어대던 습관이 되살아나는, 별일이다 싶을 정도로 들뜬 가을입니다.


행주산성의 늦가을과 낙엽 잡는 아이들


"우리 집 전속 모델! 거기 가만 서봐. 여기 봐봐.. 그래."


부르거나 말거나, 찍거나 말거나, 다섯 가지 색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이들은 이파리가 죽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곧 죽을 거란 예측은 쉽지만, 이파리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툭 떨어져 아이들의 애를 태웠었지요.


어느 들뜬 가을의 기억이 문득 되살아나자 오색의 멜랑꼴리 낙엽들이 내 발치에 떨어집니다. 나를 끌어당기는 기억의 중력엔 해독제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놀던 그때 그 자리, 내 청춘이 묻힌 그때 그 자리가, 좀 아파옵니다.


"얘들아, 빨리 이리 와."


인솔 선생님이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햇빛이 춤을 추고 그림자가 흔들립니다. 아이들이 어기적 거리며 그 위를 밟고 지나갑니다. 멈추어 선 내 곁을 무심하게 지나갑니다.


'그래, 이 아름다움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아야지.'


창경궁의 가을빛은 기와지붕을 지나 사방으로 퍼져갑니다. '아, 그만하세요. 그걸로 충분해요.' 가을이 더 예쁘면 겨울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놓치고 말지도 모릅니다.




내가 잊힐까 봐, 스스로 그 감정을 견디지 못합니다.


인왕산 초소책방 2층 테라스에 나와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크루아상을 쟁반에 올려놓습니다. 멀리 남산을 바라봅니다.


"아직 덜덜 떨릴 정도로 춥지는 않은걸."


그래놓고는, 파르티잔과 같은 가을바람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못 다 마신 마지막 한 모금의 커피와 헤어지고, 산길, 아니 가을길을 걷습니다.


가지각색 이파리들이 다음 봄을 부르짖으며 줄지어 번지 점프를 해댑니다. 한 놈을 애써 붙잡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애태우며 가을이 떠나던 옛 방식을 따라 해 봅니다. 청운문학도서관에 이르자, 올 가을 마지막 아름다움이 거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청운문학도서관 앞에서


"나를 알아봐"라고 말하는 빛이 되어,

조용히 밀려드는 바람이 되어,

조금만 더 그 속에 담겨 있고 싶더군요.


전속 모델들이 사보타주를 한 지도 꽤나 오래되어,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빛을, 하늘을, 지붕을 마구 찍습니다. 그러다, 걸음을 멈춥니다. 핸드폰 렌즈의 방향을 틉니다.


청운문학도서관 앞에서


울긋불긋 그늘 한 자투리에 걸터앉은 여인. 그 발치에 드러누워 시간의 무게를 견뎌내는 늙은 개.


프리즘처럼 쏟아지는 햇살이 두 존재엔 곁눈길도 주지 않고 흘러갑니다. 골든 레트리버 누렁개는 컹컹거릴 줄도 모르고, 침묵은 차가운 포옹으로 나를 끌어당깁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 얼굴들이 보여?'

'네, 보여요. 이미 아는 기쁨과 새롭게 알게 되는 슬픔, 그것들의 뒤섞인 흔적이 보여요.'


그냥 발 가는 대로 가을을 보내려 했더니, 이 가을은 오래된 기억처럼 내 시야에 번지고, 난 그만 먼 기억의 부름을 듣습니다. - 아, 이러다간, 시간 속에 휩쓸려, 꽃잎처럼 날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네치아 글을 적을 때 보았던 무라노 섬의 가을 사진을 꺼냅니다.


베네치아 무라노 섬


베네치아 본섬으로 돌아갈 바포레또 수상버스를 기다리다, 저 멀리 다가오는 노을을 보았더랬죠. 전속 모델들의 태도가 불량했을까요. 엄마는 몇 발자국 떨어져 홀로 서 있었네요.


이 사진들이 오늘 본 두 번째 가을을 무척 닮았습니다.


베네치아로 돌아오는 길, 그리고 노을


바다에 부는 바람은 멈추지 않는지, 그녀 어깨의 배낭이 꿈처럼 흔들리는 모습을 다시 봅니다. 내 눈에서 바다 끝에 걸린 먼 노을을 다시 읽어 봅니다.


오래된 이탈리아 가을빛 위로 오늘의 새 가을빛이 스르르 겹쳐집니다.


여러 번의 가을이 지고 다시 또 오고.. 이제는 엄마 아빠와 아이들의 간격은 사진 한 컷에 다 담지 못할 만큼입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나무와 이파리와 하늘을 주로 찍습니다.


쓸쓸한 기온, 마른풀의 냄새, 너무도 아름다운 색, 이 모두를 한 단어로 묶은 '가을'이 내겐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도망치듯 멀어지고 싶지만, 가을빛은 내 뜻을 외면합니다.




경계에 도달하여 바라본 풍경은 Blown Away를 닮았습니다.


창경궁의 들뜬 가을과 청운문학도서관의 고요한 가을은 분명 같은 날이면서도, 한 계절을 둘로 가른 듯, 서로 너무 다른 방식으로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한쪽 가을은 오래 전의 나를 불러내었고, 다른 쪽 가을은 머잖아 내게 드리울 시간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나는 분명 해가 뜨는 따스한 가을에 더 큰 마음을 두었건만, 자꾸만 해가 지는 쓸쓸한 가을 방향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늘 나를 기다려줄 거라 믿었는데, 그 믿음이 낙엽처럼 바스러진 줄도 몰랐던 나는 참 미련합니다.


페니 하디의 'Blown Away' @pennyhardysculpture.com


두 개의 가을 사이에서

왼쪽은 들뜬 시작의 가을

오른쪽은 고요한 멈춤의 가을


두 개의 가을 경계에서

내 심장이 쿵쾅거려

양쪽의 위압적인 거리를 두려워한다


이제 그만 겨울로 떠나는 막차에 올라타려니, 또다시 알지 못할 설움이 훅하니 올라옵니다.



표지사진: 창경궁 영춘헌에 들어앉아 창밖으로 바라보는 동궐의 늦가을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