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콘도르 파사
10월이 끝나가는데도 아테네의 햇살은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모나스티라키 광장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케밥 냄새를 뿌리치며 터덜터덜 걸었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의 현대식 스포츠용품점을 끼고돌자 파나기아 카프니카레아 교회가 시야에 들어왔다. 교회로 곧장 뻗은 골목의 상점들은 쇠락한 그리스 경제의 표징처럼 그라피티만 요란했다.
그때였다. 시쿠(Siku) 팬파이프의 선율이 U자형 골목을 따라 찰랑찰랑 흔들리는 광경을 보았다. 흘낏거림만 오갈 뿐,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갈색 피부의 시쿠리스(Sikuris) 버스킹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 홀로 맞은편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연주가 끝나가기를 기다렸다.
"저기,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페루에서 왔습니다."
서너 걸음을 떨어져 줄곧 그 남자를 감시하던 그리스 남자의 경계 어린 눈빛을 애써 무시하고,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를 연주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테네 뒷골목의 페루 남자는 유명 연주자 레오 로하스 보다도 더 혼을 실어 팬파이프를 불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맞은편 셔터에 기대어 섰다.
팬파이프 선율은 리허설이 아니었다.
"내 고향의 콘도르여, 오늘은 그 어디서 나를 지켜보고 있느냐."*
페루 남자는 아마도 떠나온 먼 고향을 꿈꿀 테고, 그 실연(實演)의 선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내 젊은 날의 내레이션이었다.
"안데스 콘도르가 새벽의 빛과 함께 깨어났다. 콘도르는 날개를 천천히 펼치고 푸른 강으로 날아갔다. 하늘은 떠나가는 콘도르를 바라보며 흐느껴 울고, 울음은 회색으로 변해갔다. 밀밭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젊었던 시절, 내 가슴을 할퀴던 팬파이프의 선율은 안데스의 고독한 비상이었다. 구름 너머 자유를 향해 날개를 펼친 콘도르의 묵직한 활공에 내 서툰 갈망을 투영하려 애를 썼지만, 나는 언제나 방구석 전등 아래 파르르 떨리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걸 '자유'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아테네의 뒷골목, 페루 남자의 손끝에서 다시 그 선율이 흘렀다. 골목 벽에 부딪혀 꺾인 소리는 먼지 낀 보도블록 위를 낮게 기어 다녔다. 내 젊음이 우러러보았던 자유는 이제 박제된 '잉카의 신'처럼 낡아버렸다.
페루 남자의 어깨가 더 크게 흔들렸다. 세월을 거스르는 난기류에 내 어깨도 들썩였다. 하지만, 페루 남자와 나 사이에 오간 콘도르 이야기는 공허했고, 쇠락한 아테네의 뒷골목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심했다. 지나가던 아시아 여자가 멈춰 서서 말없이 나를 뷰파인더에 담았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세뇨르!"
지폐 한 장을 팁박스에 넣었다. 그리스 남자가 그제야 경계의 눈길을 거둬들였다. 구름 가장자리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내 주변에서 빛나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파나기아 카프니카레아 교회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늘을 가르는 콘도르의 본능이 명치끝에서 꿈틀거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 곧 날아오를듯한 눈빛의 콘도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콘도르는 70년을 넘게 산다고 하니, 더는 날지 않아도 되는 법을 배웠던 내 젊은 날의 콘도르가 여태 살아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 광경을 가득 채우던 내 뷰파인더는 새가 날개를 쭉 펼치자 더는 전체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다.
내 뒤로 팬파이프 선율이 들려왔다. 콘도르가 푸드덕 거리는 소리겠거니 여겼다. 먼 훗날, 내가 황혼의 밀밭 위로 활공을 하려 하는 순간에 내 젊은 날의 콘도르는 지금과 똑같이 홰치는 소리를 들려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교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안데스 원주민의 '엘 콘도르 파사' 노랫말 중에서
**플라시도 도밍고의 '엘 콘도르 파사' 노랫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