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단편과 상념: 칠레 발파라이소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한 지 장장 서른세 시간 만에 칠레 산티아고 상공 가까이에 이르렀다.
창밖을 다시 내다보았다. 만년설 아래, 또 내 눈 아래, 자칫 삐끗하기라도 한다면 그만 쿵 하고 부딪히고 말 것 같았던 안데스 산맥 고봉들이 그제야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해발 칠천 미터 아콩카과 산봉우리의 위압감도 마침내 사라지고 없었다. 비행기의 랜딩기어가 빠져나오는 둔탁한 기계음을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한껏 기지개를 켰다.
스페인 산티아고 팔백 킬로미터 순례길을 걷는 것에 결코 뒤지지 않을 고행의 길이었다.
쿠지노 마쿨(Cousino Macul) 와이너리에서는, 와인 석 잔 맛보고 나서, 포도알이 송알송알 맺혀서는 점점 커져가기 시작하는 햇살 따가운 빈야드(Vineyard) 사잇길을 적포도주 색깔 흙먼지를 마구 뿌려대며 자전거를 내달렸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나는 살기 위해서 친구를 먹어야 했다."의 잔혹한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1972년 우루과이 럭비선수 등 45명을 태운 비행기가 눈 덮인 안데스 산맥에 추락했다. 죽지 않은 자들은 사고를 낸 조종사 시신부터 시작하여 인육을 먹으며 생존의 몸부림을 쳤다. 72일이 지나서 16명이 생환했다.) 아르헨티나 국경 가까이 높고 험준한 안데스 산맥에도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보았겠다 이것만으로도 칠레 체류는 나름 성공적이라 할만했다.
고국으로 돌아갈 두 번째 고행의 날이 가까워지며 미처 채우지 못한 어떤 허전함에 마치 한여름에 동상에라도 걸린 듯 지독한 발 시림을 느껴야만 했다. 다분히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파블로 네루다(1904-1973)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른 아침 산티아고를 떠나, 기어이, 태평양이 있을 법한 방향으로 (북서로) 한 시간 반 가량 차를 달렸다. 그 길의 끝에서 마침내 끝없는 언덕 위로 알록달록한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마치 (쇠락한) 천국의 골짜기와 같은 모습을 이룬 발파라이소(Valparaíso, Valley of Paradise)와 조우하였다.
발파라이소는 스페인 강점기 때 항구도시로 개발되었고, 1810년 칠레가 독립을 쟁취한 이래로 1914년 파나마 운하가 뚫리기 전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서안을 잇는 번성한 도시였다. 신세계를 찾아 유럽 여러 나라를 떠나온 이민자들로 북적였고, 해안은 돈 많은 자들이 차지하여 은행을 짓고 와이너리를 꾸렸으며, 가난한 자들은 언덕 위로 더 언덕 위로 올라 집을 지었다. 지진과 쓰나미로 언덕 위의 집들이 무너져 내렸어도 쇠락할지언정 흉물스럽게 타락하지는 않았다.
도시를 올려다보면, 초승달 모양의 바다를 에워싼 마흔 여개 언덕 위로 집들이며 온갖 건물들이 빼곡하게 마치 셀 수 없이 많은 거대한 뱀들이 마구 뒤엉킨 것 같은 형상으로 뻗어 있었다. 오백 년 흥망성쇠 역사의 애잔함이 근경과 원경 모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였다.
누군가 "거기 부산 벽화마을(2009년부터 벽화를 그려 넣은 감천 문화마을)하고 거의 비슷해.", "낡고, 지저분하고, 아무래도 과대평가야!"라고 말하던 것을 기억하였다. 굳이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의 동시에 "발파라이소는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네루다가 더욱 풍성한 아름다움을 얹어 주었지." 이런 말도 기억하였다.
네루다의 'Ode to Valparaiso'(발파라이소를 기리는 노래)를 '(책이여)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에서 찾아 되뇌어 보았다. 둔덕진 머리는 헝클어졌지만 결단코 곱게 빗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지진이 나 언덕 위 가난한 집들은 사로잡힌 새들이 날개를 퍼득이듯 무너져 내렸지만, 바다에서 돌아온 선원들이 눈물을 거둔 채 대문엔 녹색을 칠하고 창문엔 노란색을 칠했다고 했다. 제 아무리 거친 바다라도 발파라이소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거라고 했다. 그곳 남쪽 가슴에는 바로 투쟁과 희망과 단결과 기쁨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발파라이소에서 살고 싶은 (시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네루다의 바람은 그의 나이 쉰 후반이던 1961년에 이루어졌다. 플로리다 언덕에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라고 이름 붙이고 태평양을 향해 큰 창을 낸 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1971년이 되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73년이 되어서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지 12일이 지나 사망하였다. 사람들은 독살되었다고 믿었다.)
세월이 다시 흘러, 2003년이 되어서는 발파라이소 항구도시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소토마요르 광장 옆 (촌스런)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는 대항해를 끝내고서 그리운 집을 찾아 돌아가는 선원이라도 되는 양 낮은 언덕 지나고 높은 언덕 지나며 위로 또 위로 올랐다.
보헤미안 스타일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갖가지 다채로운 색깔과 형상과 형태가 뒤엉켜 그 속에서 또 조화로워 보이는 (한눈에 보아도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버린) 풍경 속을 구불구불 걸었다.
수백 년 세월 동안 직사광선에 노출되었던 피부처럼 쩍쩍 갈라졌고, 뜯겨나갔고, 골이 파였으며, 오래전에 탄력을 잃고 쭈글쭈글하였다. 그 위로 뽀얗게 분을 바르고, 쪼글쪼글한 입술엔 새빨간 루주를 칠하고, 몇 가닥 남지 않아 힘없이 처진 속눈썹은 알록달록 마스카라를 발라 위로 추켜올렸다.
아름답고 부드럽다가도 때로는 너무 낡았고 아주 거칠었다. 네루다가 이 도시에 살도록 한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이리라 생각하였다.
발파라이소 언덕을 뒤덮은 것은... 누군가 언덕에서 길을 잃고선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칠게 낙서를 했을 것 같은 그라피티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 식으로 위로 위로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발파라이소의 영광을 그려넣은 (뱅크시 그림이 부럽지 않을) 벽화 두 종류의 예술이었다.
몹시 그리운 대상이나 진정 아름다운 대상은 너무 가깝지도 않게 또 너무 멀지도 않게 딱 미학적 거리(距離)만큼을 두고 바라보라 하였다. 나와 발파라이소 정경(情景) 사이의 미학적 거리는... 좁은 언덕길을 걷고, 밝게 칠을 하거나 그림을 입힌 집들을 바라보고, 문득 걸음을 멈추어 거리에 서고, 더 높은 언덕을 올려다 보고, 다시 한 발을 힘겹게 떼고...
또, 아센소르(Ascensor, 언덕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를 바라보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Cocina Puerto(항구식당)란 곳에서 화이트와인 글라스를 기울이며 산해진미 쿠란토(Curanto, 땅을 파고 돌을 넣고 다시 잎을 깔아 그 위에 닭고기, 소시지, 감자, 홍합, 조개, 생선, 돼지고기 등을 올린 후 잎을 덮어 익히는 국물 자작한 음식)를 맛있게 먹고...
그러다가, 익숙한 듯 생소한 느낌의 기쁘고 슬픈 감정에 빠져들고,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의 우정과 시를 이야기한 일 포스티노(Il Postino, 우편배달부) 영화의 장면들을 기억해 내고... 느닷없이 네루다의 시를 찾아 읽어보는 사유와 행동으로 가득 메워졌다.
(엄격한) 바다와 (수줍은) 언덕과 (아리따운) 그림을 날실과 씨실 삼아 베를 짜고, 그 베로 옷을 지어 입은 연로한 발파라이소와 이제 그만 작별하려 하였다. 마약에 취해 눈이 풀린 채 비틀대는 볼썽사나운 거리의 여인네가 보이자 네루다의 시가 그 위로 시답잖은 축복을 드리웠다.
난 오늘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난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씩은 날 사랑했네.
('오늘 밤 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중에서)
왜냐하면 당신이 가버린 그 순간에
난 온 땅을 미로처럼 헤매며 물을 테니까요
"돌아오실 건가요? 날 여기 죽게 내버려 두실 건가요?"
('멀리 떠나가지 마세요' 중에서)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길에 발파라이소에서 멀지 않은 비냐델마르(Viña del Mar)에 멈추어 섰다. 그곳 청년들은 보드에 몸을 싣고서 꽤나 크고 높은 모래언덕 위로부터 해안을 향해 가파르게 내리 꽂히는 질주를 하였다. 길가에는 보드를 빌려주는 노점이 흔하건만 한 번 내려가면 다시는 걸어 올라오지 못하리라 싶었다. 짙푸른 태평양이 넋을 뺏든 말든 말을 잃은 채 높다란 모래 위에 한참을 멈추어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칠레는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겠다 싶은 (무기력한) 나에게도 위로 한 움큼을 흩뿌렸다.
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무감각하게, 양복점이나 영화관에
들어갈 때가 있다, 시원(始原)과 재의 물 위를
떠다니는 펠트 백조처럼.
이발소의 냄새는 나를 소리쳐 울게 한다.
('산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