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단편과 상념: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이젠 해질 대로 해졌다고 봐야 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国)』이 시작되는 이야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발 끝에 리드미컬하게 차일 때쯤이면, 해마다 기억 속에 되살아 나곤 하였다. 그것은 마치 10월의 마지막 밤이 깊어지고 있음을 깨닫고는 '잊혀진 계절'을 아무런 사연 없이 흥얼거려 보는 것과 같이 내가 겨울을 기다리는 하나의 습관이자 방식이었다.
에델바이스 하얀 꽃과 알펜로제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계절이면 세상 어디에도 견줄 데 없이 맑고 아름다울 할슈타트(Hallstatt)지만, 크리스마스마켓이 막 파장한 쓸쓸한 잘츠부르크를 지나고 칙칙한 보통의 숲길을 빠져나와 드디어 마주하는 해 질 녘 할슈타트는 금방이라도 눈발이 쏟아져 내릴 듯이 칙칙한 하늘을 가졌다. 하늘 저 멀리 지려다 만 것인지 노을 빛깔이 아주 조금 남은 듯 보였다. 좋은 때를 모두 다 잃고 난 후에야 깊은 산골로 찾아든 우리는 꽤나 움츠러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夜の底が白くなった."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여행지의 인심에는 늘 본능적으로 민감한 편이었다. 행여나 문 연 식당이 없을까 쌀이며, 밑반찬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들을 차 트렁크에서 꺼내었다. 그런 우리 모습을 향해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인사를 건네는 이틀 묵어 갈 집주인의 얼굴에서 다행히도 밝은 미소를 보았다. 예감이 좋았다.
저녁밥을 대충 지어먹고 뜻 없이 내다보는 창밖에는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할슈타트의 겨울밤 밑바닥에는 눈이 쌓여가고 거침없이 하얘져 갔다.
"ガラス窓を落した. 雪の冷気が流れこんだ."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할슈타트 호수(Hallstattersee) 남동쪽 기슭의 작은 마을 오버트라운(Obertraun)은 조촐한 설국의 풍경을 안았고, 피곤한 듯 연신 두 눈을 비벼대면서도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아이들과 그만 자라는 어른들 잔소리가 섞인 대화가 이 산골에서는 참 태평스럽다고 생각하였다.
음식 냄새를 빼내기 위해 열어젖힌 창을 통하여 차가운 눈의 냉기가 몰려들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이국(異國)의 산골에 눈은 내리고, 겨울밤은 소리 없이 깊어갔다. 특정할 수 없는 대상과 시간을 향한 (하지만 뭔가 시베리아의 눈 덮인 숲도 그중 하나일 것만 같은) 내 고질병 같은 노스탤지어가 내장으로부터 솟구쳐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고, 겨울밤의 냉기를 만나 희뿌연 모습으로 변하여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나는 오스트리아 산골에서 백석(白石)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구를 기억하였다. 창밖엔 그침 없이 눈이 내렸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백석은 홀로 소주를 마시고선, 나타샤의 손을 이끌어,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뱁새 우는 깊은 산골에 들어 마가리(오두막집)에 살자 하였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도 어제 (흰 당나귀 대신) 남색 파사트를 타고서 세상을 버리듯 산골에 들었고, 다음날 이른 아침엔 뿌옇게 동터오는 눈 덮인 꼬락서니가 푸근한 마을 풍경을 마가리 창밖으로 내다보았다.
기억해 보면, 오래전, '가을동화'(2000), '겨울연가'(2002), '여름향기'(2003) 그리고 조금 더디게 '봄의 왈츠' (2006) 순으로 TV 드라마의 사계(四季)가 완성되었고, 할슈타트에 한순간 미혹(迷惑)되고 만 것은 마지막 시리즈가 방영되던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봄날에 가장 고혹적인 곳을 설국의 계절에 찾아든 나나 올 리 없는 나타샤를 기다리는 백석이나 둘이 뭐가 다르겠냐 싶었다. 'K'라 불리는 나의 나타샤는 마가리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은 온순하고 늙은 개가 되어 우리의 발치에 엎드렸다."
칙칙했던 구름은 밤새 눈을 쏟아내었고, 아침이 되자 날이 멀쩡하게 개었다. 아이들까지 일으켜 세워 서릿발 덮인 호숫가에 나섰다. (물은 차디찰 터인데도) 물 위를 걷고 있는 백조 한 마리를 응시하였다. 호수, 백조, 산 그림자, 아니면 우리 그림자... 누가 지배자인지 갈피를 못 잡을 풍경이 홀연 단일 색채로 인식되었다. 명도는 높고 채도는 낮았다.
실뱅 테송은 『시베리아의 숲에서』 "시간의 고통이 누그러진다"라는 경지에 이르렀다. 할슈타트 호숫가에서 무념의 생각은 물속 깊이 잠긴 숨은 땅으로 흘러들고, 제 무게에 눌려 가쁜 숨을 내쉬는 심연은 우리로 하여금 "어느 순간 시간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정오(正午)에 세르게이는 3리터짜리 맥주병을 딴다. 라벨에는 '시베리아 용량'이라고 쓰여 있다."
침묵이며 고독이며 필요한 건 이미 거기에 다 있었기에 실뱅은 책과 시가, 그리고 보드카를 들고 시베리아로 갔다. 우리는 할슈타트를 찾으며 쌀과 밑반찬을 가져왔고, 다행히도, 그 외에 우리에게 꼭 필요했을 위안이며 희망 같은 것들이 거기에 있어 주었다. 기껏해야 오전에서 오후로 막 넘어갈 뿐인 시간인데도 3리터짜리 맥주병을 따는 세르게이만큼의 낭만과 여유는 없더라도, 마가리로 돌아가 글뤼바인(뜨겁게 마시는 레드와인) 한 잔으로 몸을 덥혀가며 할슈타트 호수의 단일색 정경을 다시 기억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사스럽다고 생각하였다.
로망스 선율이 끝나는 지점에서 또다시 봄의 왈츠가 시작될 터이다
이웃한 고사우(Gosau) 마을에서 스키를 타다 저녁 무렵 할슈타트로 돌아들었다. 어느 순간 인적 없는 도로가에 버스 한 대가 멈춘다 싶더니 한국인들이 우르르 내렸다.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찰나의 할슈타트 겨울 풍경을 향해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더니 말 걸 사이도 없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작곡가 스비리도프(Sviridov)는 푸시킨의 『눈보라』 이야기를 아홉 곡의 음악으로 옮겨 적었고, 겨울이면, 난 그중에서도 네 번째 곡 '올드 로망스'를 좋아하였다. 눈보라로 인해 교차되고 만 세 남녀의 사랑과 우연과 운명의 기록 때문일까, 곡이 끝날 쯤이면 언젠가는 겨울과 교차하여 다시 찾아올 봄날이 떠오르곤 하였다.
할슈타트 호수를 발치에 둔 다흐슈타인 높은 산에도 에델바이스와 알펜로제가 어여쁜 봄은 기어코 오고 말리란 걸 모르지 않았다. 더는 나른하지 못할 아침 햇살이 호수에 드리우면 또다시 봄의 왈츠가 시작되리란 걸 알았다. 그러면, 겨울 휴가를 떠났던 물새며 사람이며 다들 할슈타트로 되돌아오리란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산골 마가리에서의 이틀 밤 후 할슈타트를 떠나 장크트길겐(St. Gilgen)에 이를 때쯤 너무도 태연하게 나짐 히크멧(Nazim Hikmet)의 시 'A True Travel'(진정한 여행)을 기억하였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