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단편과 상념: 중국 구이린(계림)과 베트남 하롱베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미당 서정주의 '자화상'에서 무엇이 또 이토록 기막힐까 싶은 시구와 마주하였다. 팔십 퍼센트는 어림없다 쳐도, 바람은 나 또한 염치없이 키웠으리라.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이젠 그만 됐으니, 내 자식은 바람 없이 잘도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시간은 사람을 먹으며 흐른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는 만큼 속에 바람이 든다)
결혼식 갈 일이 없더니, 축의금만 내고 말면 민망해질 인연이 있어 모처럼 63 빌딩에 발을 내디뎠다. 오랜만에 꺼내 입은 정장이 어색한 참인데, 내디딘 발 하나가 일순간 푹 꺼지더니 한 걸음 뒤편에 구두 굽에서 떨어져 나온 시커먼 잔해를 흉물스레 남겨놓았다. 여러 해 동안 이삿짐에 실려 적도(赤道)를 넘나든 탓인지 뒷굽을 지탱하던 스펀지가 폭삭 삭아버린 듯했다. 유명 브랜드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싶었다.
흉한 꼴을 누가 볼 새라 걸음을 빨리하였다, 높낮이 밸런스가 깨져버린 걸음걸이는 걷는 속도에 비례하여 점점 기괴해져 갔다. 구두가 저 모양일진대, 내 속은 보나 마나 바람 숭숭 든 무 같으리라.
先發制人 (선수를 쳐서 상대를 제압하라)
"신부 엄마가 웨딩은 화려해야 된다고 그렇게나 우겼대." 2부 들어 스테이크 한 조각 썰어 드는 순간에 누군가 수군대었다. 얼마를 대출받았다느니 그 후로도 한참을 수군거렸다.
"나중에 우리 애들은 꼭 스몰 웨딩을 해야 할 텐데..." 광활한 웨딩홀을 가득 채울 자신이 없으니, 재력조차 비루하니, 나로서는 선제공격(先制攻擊)을 해야만 했다. 집사람의 치명적 반격이 바로 이어졌다.
"예식장도 아니고, 회관이 뭐냐!"
"남들 들으면 무슨 마을회관에서 식 올린 줄 알겠네."
아들 혼인이 머잖은 날 비명횡사해 버린 엄마를 두고 화려한 예식은 엄두를 내서도 안되었다. 그래도, 여태껏 이혼 않고 쭉 살 줄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날에 꽃장식이라도 몇 개 더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때마침 신부는 반짝이는 은비늘의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고서 꽃장식 늘어선 버진로드를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별 걸 다하네." 나도 수군대었다.
홍콩의 밤거리를 달리는 럭셔리 리무진 (그날밤 별들은 숨어서 소곤대었다)
"신혼여행도 중국으로 갔잖아!" 고깃 조각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틈을 타서 '회관' 만큼이나 치명적인 후속 공격이 들어왔다.
홍콩 상공에 이르러 언젠가 일본 NHK TV 프로그램 진행자가 내뱉던 "きれいですね~"(키레이데스네~) 진심 어린 홍콩 야경 예찬을 떠올렸다. 'Just married' 여행길 커플의 미래도 그만큼 아름답기를 소망하였다. 공항에 대기하던 9미터짜리 아이보리색 (내부는 구식인) 리무진에 호기롭게 올랐다. 더위 머금은 눅눅한 홍콩 밤거리를 달려 빅토리아 하버가 바라보이는 침사추이의 특급호텔로 향했다.
우르르 몰려가 한 움큼씩 꽃을 뽑아내는 (식이 끝난 후의) 하객들을 바라보며, '회관'이란 악행을 잊어보려 했던 그날의 기획들이 염치없었노라 상기하였다.
열두 폭 산수화 구이린 (선계(仙界)를 탐하기엔 너무 일렀다)
드래곤 항공을 타고서 홍콩을 떠나 중국 구이린(桂林)으로 날았다. 그곳 쉐라톤 호텔에서는 총경리가 'OOO OOO 부부의 계림 방문을 환영합니다.' 플래카드를 로비에 걸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회사 선배 그 양반은 구이린이야 말로 장생불사(長生不死) 신선의 세상이라며 한시(漢詩)라도 읊을 태세였고,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유혹은 강렬하였다.
江作青羅帶, 山如碧玉簪. 강은 푸른 비단 띠요, 산은 새파란 옥비녀라.
遠勝登仙去, 飛鸞不假驂. 선계에 오를 일 보다 훨씬 낫느니, 학을 타고 날아서 무엇하랴.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
시와 그림의 강(江) 리장(Li River)에 배 띄우고 선계 유람 길에 올랐다. 맑은 바람이 불어와 산을 가렸던 안개를 일순간에 몰아내고선 굽이굽이 흐르는 고운 강물 위에 산을 띄웠다.
어디선가 얼기설기 떼를 엮어 오른 소년들이 나타나 죽을 둥 살 둥 배 곁에 붙으려 하였다. 그리고는 조악스러운 수베니어를 배 위로 치켜들었다.
'저걸 누가 살까?' 소년들은 강가의 물소처럼 또는 물속으로 뛰어드는 가마우지처럼 그저 선계의 풍경 속 속된 구경거리로 여겨졌다.
네 시간 남짓 유람이 지루한 듯 리장에 이는 선선한 바람에 신혼부부는 그만 배 난간에 다리를 내리고선 꾸벅 졸고 앉았다.
"신혼여행인데, 그래도 중국은 아니지." 선계를 탐하기엔 그때의 우리는 'Just married' 너무 어렸었다.
사람의 마음도 바람을 따라 흘러 다닌다 (하롱베이에 부는 바람)
리장에서 노닌 게 까마득한 옛일이 된 어느 날 호찌민에서 하이퐁으로 나 홀로 베트남 항공을 타고 날았다. 하롱베이가 제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구이린에 비할쏘냐 했지만, 가야 할 곳은 결국엔 가게 되나 보다 싶었다.
인터넷으로 찾은 크루즈 상품을 쫓아 도착한 번잡한 하롱 인터내셔널 크루즈 포트로부터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하롱(下龍)의 옥빛 바다는 푸른 하늘 아래 뾰족 솟은 산들을 휘감아 돌고, 셀 수 없이 많은 배들과 그 위에 올라탄 사람들이 요란스레 그 위를 흘러 다녔다.
(리장에서 그랬듯이) 동굴에 들고, 기묘한 바위에 오르고, 작은 보트 타기를 즐기며 티톱섬에 다다라,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산머리로 향했다.
헉헉 대는 숨결 위로 바람이 춤을 추었다. 춤추는 바람은 가까운 바다를 살랑살랑 흔들었고, 미세하게 흔들리는 바다 위로 윤슬이 반짝거렸다.
산머리에도 바람이 일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바람 따라 흔들리던 마음에 눈이 돋아나 해룡을 잠재운 명경지수(明鏡止水)와 미동조차 없는 듯 보이는 배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찾아들겠지만, 이토록 평화로운 날을 과연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걱정도 팔자라더니, 리장에 버려두고 온 바람이 기어코 하롱베이 바다에까지 찾아든 것인지, 뜬금없이, 뗏목을 딛고 떼돈 말고 푼돈이라도 벌어보려 기를 쓰던 소년들이 눈앞에 어른 거렸다. 지금쯤은 혼인도 해서 나처럼 아비가 되었으리라.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일어서며 해 질 녘 가까워 항구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였다. 산을 내려가며, 산허리에 불던 바람이 나무 잎사귀들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내 안으로부터 부는 바람 (대물림 않을 바람)
언제부턴가 내가 바로 바람임을 알았다. 그 바람이 나를 팔 할 가까이 키워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바람에 철없던 내 마음이 마구 흔들리고 오래도록 헤매었으니, 이젠 그만 남은 인생을 영글게 하는 그런 바람을 맞았으면 좋겠다.
화려한 예식에 기가 잔뜩 죽은 채 누가 볼세라 63 빌딩을 황급히 빠져나오다 보니 나머지 구두 한 짝 뒷굽마저 떨어져 나갔다. 그제야 높낮이 밸런스가 맞아져 더는 뒤뚱 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生存)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太陽)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證人)...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生)의 욕망(慾望)에 눈을 떴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