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밍드림 Oct 04. 2024

샤프츠베리 애비뉴의 작은 기적

세계여행 단편과 상념: 런던 웨스트엔드

런던 로열발레학교 오디션 방을 떠나는 소년은 무척 낙담한 듯보였다. 딱 한 번만 있을 기회의 문이 서서히 닫혀가는 순간이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중에서

떼지 못하는 발걸음은 미련이요, 축 늘어진 어깨는 좌절이었다. 지금 이대로 나간다면,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어린 날개가 뿌리째 뜯긴 채, 먹다 버린 피자와 빈 음료수통이 어지럽게 나뒹구는 코벤트가든 뒷골목의 (어둠이 내려 차갑게 얼어가는) 어느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파르르 턱을 떨어대는 가여운 신세가 되고 말 것이었다. 석탄 먼지 뒤집어쓰고서, 가난과 편견의 굴레를 영영 벗지 못한 채, 두고두고 날개 환상통에 아파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Can I just ask you, Billy?"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데, 빌리)


무대의 어둠은 순간적으로 소년의 가녀린 어깨를 붙잡아 돌려세우려는 목소리를 또렷이 전달하였다.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 스톨(Stall, 1층) L열에 앉은 나(우리)는 숨을 쉬지 못했고, 귓전에서는 느닷없이 종소리가 울렸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이 지척이었다.




혼자서 둘이서 넷이서 런던을 참 많이도 다녔다. 런던아이 버킹엄궁전 대영박물관 런던타워 웨스트민스터사원 빅벤 타워브리지, 그리고 트라팔가광장과 피카딜리서커스를 오가는 다양한 인종에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늘 매혹되곤 하였다.


피카딜리서커스

이 도시를 알아갈수록, 피카딜리서커스의 휘황찬란한 옥외광고판에서 시작하여 쉴 새 없이 오가는 블랙캡과 빨간 이층버스를 지나 낡은 햇빛과 빛바랜 전구빛을 반사하는 샤프츠베리 애비뉴를 따라서 라이온킹의 라이시엄(Lyceum) 극장, 레미제라블의 손드하임(Sondheim) 극장, 그리고 (더는 빌리 엘리어트를 올리지 않는) 빅토리아 팰리스(Victoria Palace) 극장을 쭉 거쳐가는 일이야 말로 최고의 압권이었다. 크게 웨스트엔드라고 불리는 그곳에서는 날마다 온갖 인종의 관광객과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을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엔터테인먼트의 대사원(大寺院)으로 불러 모아서는 기상천외하고 화려한 마법으로 홀리는 뮤지컬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곳 극장 깊숙이 앉아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전율에 몸을 떠는 매 순간들이 마치 마디마디 이어 붙인 실타래처럼 과거와 현재를 한 묶음의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였다. 거기서는 막간에 맥주 한 잔 사다 마시며 아바타 삶의 질주에 쉽게 취할 수도 있었다.



라이시엄 극장의 로열 서클 열한 번째 열에 앉아 라이온 킹을 볼 때엔 나는 야생의 아프리카 초원 위를 멋 모르고 뛰어노는 심바를 바라보는 아빠 사자 무파사이고자 하였다. 두려워하는 것이 있을 리 없지 않냐는 심바의 질문에 "너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라고 무심하게 쏟아내는 무파사의 부정(父情)에 그만 절로 낯이 붉어졌다. 그 순간 작은아이는 화려한 무대, 번뜩이는 재치의 분장과 율동에도 불구하고, 앉은키보다 더 높은 의자에 기대어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빌리 엘리어트를 볼 때엔 괴상하게도 난 열한 살 소년이 되고 말았다. 세상을 일찍 떠난 미운 엄마의 편지가 어두운 무대를 국지적으로 옅게 밝히는 호롱불에 실려 '이미 너에겐 멀어진 기억으로 남은 엄마일지도 모르겠구나...'라고 시작되면, 자식을 둘이나 둔 아빠라도 영락없는 아들 빌리여야만 했다. '난 항상 너와 함께 있단다. 늘 영원토록...' 엄마가 남긴 편지의 끝맺음의 말은 당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었다. 곁에 앉힌 작은아이의 두 눈은 이번에는 희한하게도 무대 위에 내리 찍히는 스포트라이트 조명빛처럼 말똥말똥하였다.




소년을 돌려세운 목소리가 질문을 던졌다.


"What does it feel like when you're dancing?" (빌리, 춤을 출 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귓가에 음악이 흐르는 것 같아요. 듣고 또 듣고 그러다가 난 사라지고 말아요. 그 순간, 불타오르는 마음을 느껴요, 터져 나올 것 같은 또 다른 내 모습을 느껴요. 그러다 갑자기 날아요, 새처럼 날아요. 마치 내 몸 안에 전기(일렉트리시티)가 흐르는 것 같이 불꽃이 튀어요. 그래서 나는 자유로워요."

 

뭐라고 답할지 망설이던 소년은 갑자기 욕망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침내 공중으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소년이 무대 바닥을 힘껏 구르고 날갯짓을 하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묶음의 실타래로 이어 붙이고 있었다. 나 또한 전기에 감전이 되어 눈알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비이성적 욕망과 광기에 휩싸여 무엇이 목적인지 알지 못하는 내 인생의 기사회생을 꿈꾸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돌아서는 내 등뒤로 한 번만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하는, 아니 "저기요", "잠깐만요", 그런 것이라도 좋으니 나를 멈춰 세워 주었으면 하는 순간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기억에 내 등뒤로 그런 부름은 결코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그건 "이게 진짜 끝이야?", "너 두고 볼 거야!"와 같은 원망과 저주였겠고 차라리 불러 세우지 않았으면 한 순간뿐이었다.


소년이 이제 날개 환상통에 아파할 일은 없으리란 안도감에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극장을 떠나며, 도버해협을 건너며, 아이들은 목청껏 노래하였다. "일.렉.트리.시티, 일.렉.트리.시티" 나도 "일.렉.트리.시티"를 따라 불렀다. 그 가사와 그 멜로디는 아마도 평생을 날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특히나 미련과 좌절의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면 더욱 선명해질 거라 믿었다.




10월 1일 임시공휴일 늦은 오후 인천공항 제1 터미널 지상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광팬인 아이가 9월 28일 레스터시티와의 경기를 직관하겠노라며 홀연히 런던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 혼자서는 항공권 구매도 호텔 예약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 홀로 런던행이라... 별일 있을까 싶어 내버려 두었었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아스널 홈구장)

차에 올라탄 아이는 아스널이 경기시간 90분이 지나 극적인 두 골을 얻어 레스터시티를 4-2로 격파한 경기를 레전드라 칭송하며 여전히 흥분 상태를 유지하였다. 어찌나 소리를 질렀던지 목에서는 아직도 약간의 쇳소리가 나는 듯했다. 옆자리에 앉히고선 수시로 깨어 있는지를 점검해야 했던 아이가 언제 이만큼 자랐는지 새삼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스널 축구경기가 유일한 기쁨일 줄 알았더니, 그새 뮤지컬 두 편이나 보고 왔다고 했다. 빌리 엘리어트는 더는 공연을 하지 않는지라, 라이온 킹과 레미제라블을 보았단다. 아이는 추억을 더듬고 싶었던 것이다.


라이온 킹의 라이시엄 극장

어렸을 적 보았던 라이온 킹이 기억나던지를 물었다. 분명 절반 가량은 자고 있었건만 전부 다 기억이 나더란다. 아빠 사자 무파사를 바라보며 우리 아빠도 저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레미제라블의 어느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를 재차 물었다. 팡틴이 아픈 딸 코제트를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생니를 뽑아 팔며,


"나는 꿈이 있었어요, 내 인생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옥과는 아주 다를 거란 꿈이 있었어요. 지금 내 삶은 내가 꿈꾸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요. 이제는 삶이 내가 꿨던 꿈을 무너뜨렸어요." 


'I Dreamed a Dream'(나는 꿈을 꾸었네)를 노래할 때 슬픔이 밀려 오더란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에서

장발장이 코제트에게 편지를 건네며 숨을 거둘 때 너무 가슴이 아프더란다.


"이 종이에 내 마지막 고백을 써내려 갔단다. 내가 죽고 나면 그때 읽어다오. 널 언제나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네 어머니는 널 위해 일생을 바쳤고, 널 내 곁에 맡겨두고 가셨지."


옆자리에 앉아 막간에 얘기를 나누던 프랑스 아저씨가 그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더란다. 그 얘기는 저도 울었다는 얘기일 게다.


레미제라블 커튼콜

사춘기를 피해 가지 못하고 툭하면 화를 내던 아이가 이젠 기쁠 때 기뻐하는 것 못잖게 슬플 때 슬퍼할 줄 알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구나 싶었다. 이제 저 나름대로 주체성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빌리의 엄마는 가져보지 못한) 귀한 행운이 아닐까 싶었다. 지난 주말 웨스트엔드 샤프츠베리 애비뉴 극장가에서는 분명 작은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아이 엄마는 한술 더 떠서는 아이가 속박되어 사느니 그냥 자유롭게 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저 가고 싶은 데를 가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독백처럼 내뱉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빌리 엘리어트 무대와 '일.렉.트리.시티' 노래와 발레가 인생의 꿈이었던 탄광촌 소년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던 장면을 기억하였다.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 순 없어!” 탄광촌 사람들의 하나같은 소망을 기억하였다.

 

‘빌리 엘리어트’는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首相)이 석탄 등 국가산업을 구조조정하던 1980년대 중반 영국 북부 더럼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의 성장기를 그렸다. 폐광 위기에 처한 광부들은 끝없는 투쟁을 벌이고, 파업을 지지하는 아버지와 형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던 빌리에게 어느 날 발레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빌리의 재능을 알아본 발레 선생이 런던 로열발레학교에 진학시키려 하지만 아버지와 형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이루지 못할 꿈에 분노한 빌리가 격정적인 춤을 추는 모습을 목격한 다음부터 가족들은 빌리의 꿈을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빌리에겐 로열발레학교 입학 오디션이란 일생에 단 한 번만 주어진 기회였다.
이전 08화 바다와 언덕과 그림과 시. 그리고 그 곁의 네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